손동우 논설위원 사람은 누구나 외부의 속박이나 제약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자유인이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온갖 인간관계와 이해관계 등 촘촘한 그물망 속에서 그러한 소망을 이루기는 참으로 어렵다. 평범한 생활인으로서 잠시나마 자유인이 되고 싶다면 아무런 사전계획이나 준비 없이 무작정 여행을 떠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우선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것 자체가 해방감과 여유를 안겨줄 것이다. 여행이 주는 특유의 흥분과 기대감도 소중한 소득이 될 것이다. 발길 닿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다니면서 풍광과 사람들을 접하다 보면 문득 자유인이 되어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영화 에서 친구 앤디를 만나기 위해 가석방 규정을 어긴 채 국경을 넘어 멕시코의 태평양 연안..
정희진 여성학 강사 나경원 전 의원의 남편 김재호 판사의 기소청탁 문제는 선거에 묻혀 ‘사회적 미해결’ 사건으로 남은 듯하다. “아내를 욕한 네티즌을 혼내 달라”가 남편의 범법 논란 요지인데, 여론은 이를 사법권력 남용 차원에서 비판했다. 하지만 나는 만일 누리꾼의 불법행위가 명백했다면, 피해자가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사법부 종사자가 지나친 비판을 받는 것은 당사자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건을 접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저 부부는 금실이 좋은가 보다’였다. 내가 대한민국 판검사의 권력에 무지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이해가지 않은 부분은 ‘전도유망’한 법조인이 자기 경력을 망칠 수도 있는 일을 그렇게 ‘쉽게’ 할까였다. 나라면 불법 여지가 있고 잘못될 경우 평생 쌓아온 직업 경력이..
이영미 | 대중문화평론가 이번 총선에는 유달리 비속어와 막말이 시종 문젯거리가 되었다. 몇 년 전 선거에서도 노인 비하 발언이 문제가 되었지만, 이번 양상은 좀 달랐다. 선거운동 중의 발언이 아니라, 몇 년 전에 했던 비속한 말이 들춰진 것이다. 선거에서 막말 폭로가 강력한 힘을 발휘함을 다 알아서인지, 더 자극적이고 강한 수위의 표현이 선택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방송 시간을 옮기자는 김종훈 후보의 황당한 발언 정도는, 몇 년 전 김용민 후보가 인터넷 방송에서, 혹은 몇 년 전 새누리당 의원들이 마당극 에서 한 욕설 대사에 밀려 그야말로 ‘깜도 안되는’ 수준이 되어 버렸다. 두말할 것도 없이 욕설과 비속한 표현은 일종의 언어폭력이다. 그런데 욕설을 비롯한 모든 폭력은 종종 쾌감을 동반한다. 인간은 타인..
박래용 디지털뉴스 편집장 독일의 게슈타포는 히틀러의 사찰기구였다. 정식 명칭은 비밀국가경찰(Geheime Staatspolizei)이다. 그 약어가 ‘게슈타포’이다. 게슈타포의 임무는 나치 정권의 반대세력을 적발하는 것이었다. 좌익·지식인·유대인·노동운동가·자유주의자·성직자들을 감시하고 체포하고 고문하고 처형했다. “게슈타포는 어디에나 있다.” 게슈타포 대장 하인리히 뮐러의 구호는 사람들을 숨죽이게 했다. 1933년부터 1945년까지 게슈타포 본부가 있는 베를린의 프린츠알브레히트슈트라세 8번지는 독일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주소였다. 사람들은 “앞으로는 코에서 이빨을 뽑게 될 거야. 왜냐면 아무도 입을 벌리지 않을 테니까”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서울 종로구 창성동 117번지에 있..
김진호 논설위원 여기서도 “심판”, 저기서도 “심판”이다. 심판이라는 단어가 유독 흘러넘쳤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벌인 유세전의 열쇳말을 꼽으라면 단연 심판일 게다. 어차피 선거는 투표로 심판하는 행위다. 하지만 이번엔 유독 풍성했던 심판 담론 탓에 좌판 위에 널린 ‘심판’ 중에서 골라잡기가 된 듯 하다. 유세과정에서 분출한 ‘심판’의 지적재산권은 정권심판론을 내세운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등 야권에 있다. 야권은 한국 민주주의를 퇴화시킨 이명박 정부 4년의 실정을 심판 대상으로 했다. 4대강 사업은 물론 참여정부에서 수태했지만 기형아로 태어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 강정 해군기지도 심판 대상에 꼽혔다. 당연히 그 과정에 동참·지지·묵인해온 거대여당, 새누리당(옛 한나라당)도 포함됐..
이현 | 동화작가 지난주 금요일 밤, 텔레비전 리모컨을 들고서 잠시 고민에 빠졌다. 총선을 주제로 한 정치 토론 프로그램을 볼 것인가, 목소리 하나로 승부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볼 것인가. 결국 오디션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방송을 보고 있자니 과연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그저 노래했다. 학벌도, 외모도, 지역도 따지지 않고 목청껏 노래했다. 성공의 확률을 계산하지도 현실적 가능성 앞에서 지레 무릎꿇지도 않았다. 그 단순하고도 순수한 열정에 홀려 방송국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투표까지 했다. 투표의 기준은 간단명료했다. (내 마음을 움직인 목소리. 오디션 프로그램에 문자 투표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나와 같을 것이다.) 내 마음을 움직인 목소리에 한 표를. 일등을 할 만한 후보를 고르지도, ..
김철웅 논설실장 이념적으로 박정희의 삶은 범인으로선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현란한 궤적을 그었다. 일제 때 창씨개명도 두 차례나 했다는 설이 있다. 1940년 만주군관학교 시절 그의 창씨명은 다카기 마사오(高木正雄)였는데, 일본 육사에 편입할 때는 완전히 일본 사람 같은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로 바꿨다고 한다. 만주군으로 복무하다 일제 패망 후 국군으로 변신해 남로당에 비밀 가입했다. 1948년 여순반란 사건 때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지만 알고 있는 좌익 명단을 군 특무대에 실토해 살아남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군에 복귀해 장군이 됐고 1961년 쿠데타를 일으킨다. 18년5개월간 집권하면서 철저한 반공주의와 친일외교를 폈다. 박정희의 변신이 특출나 보이는 이유는 친일과 반공 사이에 좌익활동까지 끼어있다..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청와대 지시로 민간인 불법사찰의 증거를 인멸했다”고 폭로한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그의 고백을 처음 접했을 때 반신반의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라면 몰라도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는 아니잖습니까. 그런데 충격적인 폭로가 계속됐습니다. 청와대·총리실·고용노동부 등에서 그의 입을 막기 위해 1억원이 넘는 돈을 건넨 사실까지 드러났습니다. 장씨에게 컴퓨터 하드디스크 파기를 지시한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과 부하였던 최종석 전 행정관은 구속됐습니다. 지난달 말에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국회의원에서 산부인과 원장까지 전방위 사찰을 자행했음을 보여주는 문건들이 공개됐습니다. 방송인 김제동·김미화씨는 국가정보원의 사찰을 받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4·11 총선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