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격주로 정치칼럼을 쓰고 있는 김호기 교수가 두 주에 걸쳐 ‘문재인의 운명과 안철수의 선택’이라는 글을 통해 두 유력 대권주자를 다루었다. 나 역시 김 교수의 화두를 이어받아 이들을 다뤄보고자 한다. ‘문재인 바람’이 서서히 불기 시작했던 6개월 전 나는 한 칼럼에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인기는 거품이 아니라 상당히 지속될 것이며 문재인 카드는 손학규 카드 등과 비교할 수 없는 파괴력을 가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한국의 지역주의가 1997년과 2002년 대선을 거치면서 “우리가 남이가”류의 ‘정서적 지역주의’에서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서는 누가 전략적으로 유리한 후보인가 라는 ‘전략적 지역주의’로 고도화됐기 때문이다. 97년 신한국당 경선에서 영남은 지역 출신인 이수성 대신 충청의 ..
류점석 비교문학자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격의 얼토당토않은 일들을 자꾸 접하다 보면 정신이 멀쩡한 사람도 흰소리를 하게 되는가 보다. 요즘처럼 검찰이 채신머리없이 좌충우돌하는 꼴을 볼라 치면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 한 자락 떠올라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일곱 살이 되던 해 설날이었다. 세배를 마치고 두둑해진 호주머니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아이들이 마을회관 마당 양지 바른 곳에서 팽이치기를 하고, 동전 따먹기를 하던 오전이었을 게다. 나는 그날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싸움을 해야만 했다. 설빔으로 일 년에 한 번 입을 수 있는 새 옷을 입고 주먹질을 하고 심하면 상대와 뒤엉켜 흙바닥에 뒹굴어야 하는데, 타고난 싸움꾼이 아닌 이상 정초부터 드잡이를 즐길 꼬맹이가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촌놈 자존심이 ..
민주통합당이 잘나가고 있다. 지지도가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을 앞서고 있다. 정책 면에서도 좌클릭을 통해 새누리당의 동반 좌클릭을 이끌어 내는 등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다. 게다가 잠재적 대권주자들인 박원순 서울시장, 김두관 경남지사도 조만간 입당을 할 것으로 알려져 민주통합당의 상승세는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통합당의 전신인 민주당과 자유주의 세력이 지지도에서 이명박 정부 시절 내내 새누리당과 보수세력에 밀려온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른 양극화의 결과로, 다시 말해 분배의 실패로 민심이 돌아서, 민주당은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대패를 했다. 그럼에도 이후 출범한 정세균체제는 뉴민주당 플랜이라는 이름 아래 민주당이 분배만이 아니라 ..
선학태 | 전남대 교수·정치학 최근 통합진보당이 이번 총선에서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공동공약으로 하자”고 민주통합당에 제안했다. 민주통합당이 정책을 ‘좌클릭’해 가는 바람에 통합진보당의 존재감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터라 의미 있는 제안으로 여겨진다.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은 연일 공천혁명을 다짐한다. 물론 인적 쇄신은 정치혁신의 한 해법이다. 하지만 한국 정치의 치명적 아킬레스건은 인물이 아니라 구조이다. 정치구조에 칼을 대지 않은 채 제 아무리 정교한 상향식 시스템 공천을 통해 천하의 인재로 ‘바꿔 봐야 그놈이 그놈’이라는 게 성난 일반 국민의 정서일 것이다. 선거 때마다 세계 유례가 없는 ‘물갈이’ 공천이 되곤 했으나 하면 할수록 옛 모습을 꼭 빼 닮아가는 한국 정치판이 아니던가. ‘87년 체..
이현우 | 서평가 필명 ‘로쟈’ 새해를 맞아 조선사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다. ‘조선을 지배한 엘리트, 선비의 두 얼굴’을 다시 보자고 제안하는 계승범 교수의 를 읽은 것이 계기다. 알다시피 1392년에 개국한 조선은 200년 뒤인 1592년 최대의 국난을 맞이한다. 임진왜란이다. 일본의 갑작스러운 침입으로 시작된 전쟁이지만 아무런 대응태세도 갖추지 못한 조선의 문제는 무엇이었던가. 국사시간에 미처 배우지 못한, 혹시나 배웠더라도 지금은 다 잊은 조선의 군역제에 대해서 다시 배운다. 조선 초인 15세기만 하더라도 군역은 의무인 동시에 권리였다고 한다. 군역에 종사하는 장정들에게 국가에서 일정한 반대급부를 지급했기 때문이다. 일부 토지도 지급하고 보인(保人)도 붙여서 군역에 따른 경비를 지원했다. 이 때문..
[여적]합창의 마법 김민아 논설위원 나문희가 지휘하고 김윤진이 열창하는 가 있었다. ‘넬라 판타지아’는 박칼린의 손끝에서 배다해와 선우의 청아한 목소리로 재탄생했다. 여든네 살 노강진 할머니는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를 차분하게 불렀다. 김천소년교도소 아이들은 ‘거위의 꿈’을 합창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북공삘하모니’가 있다. 서울북공업고등학교는 1990년대 ‘문화대통령’으로 불린 가수 서태지의 모교이다. 하지만 음악과는 거리가 멀었다. 학생들에겐 음악 따위에 관심을 기울일 만한 에너지가 없었다. 인문계 고교 진학을 포기한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담배 피우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지난해 7월 이 학교에서 ‘무모한’ 도전이 시작됐다. 합창단 ‘북공삘하모니’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단원 40여명을 ..
[경향의 눈]박영선, 이정희, 심상정 김민아 논설위원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대표로 선출됐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 제1야당 지도자를 모두 여성이 맡게 됐다. 한국 정치사 초유의 사건이다. 호사가들은 여의도에 ‘여성 시대’가 열렸다고 말한다. 나 역시 한국 정치에 ‘여풍’이 불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다만 바람을 감지하는 방향이 다를 뿐이다. 내가 주목하는 ‘그녀들’은 박영선 민주통합당 최고위원과 이정희·심상정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다. 박영선은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의 ‘숨은 승자’다. 후보 등록 마감 몇 시간 전에야 출마를 결정하고, 별다른 조직의 뒷받침이 없었는데도 당당히 3위에 올랐다. 2위(문성근)와의 차이는 0.94%에 불과하다. 모바일 투표 중 39세 ..
[여적]아이폰과 클래식 김민아 | 논설위원 “생방송에 출연했는데, 휴대전화 벨소리가 들리지 뭐예요…. 누구 건가 싶어 둘러보니 내 전화더라고요. 전화를 끄거나 진동으로 전환하는 법을 못 익힌 상태여서 당황했지요. 어쩔 수 없이 두르고 있던 스카프로 감싸서 위기를 넘겼어요.” 스마트폰이 국내에 출시된 지 얼마 안됐을 때, 한 여성 명사가 들려준 얘기다. 운 좋은 이 한국 여성과 달리 지지리도 운 없는 미국 남성이 있다. 며칠 전 뉴욕 링컨센터의 에이버리피셔홀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이다. 뉴욕 필하모닉이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9번 마지막 부분을 연주할 즈음 그의 아이폰이 울렸다. 지휘자가 객석을 노려봤지만 벨소리는 계속됐다. 결국 지휘자는 연주를 멈췄다. 뒤늦게 휴대전화 주인이 벨을 끄면서 공연은 재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