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파문이 확산되면서 여권 내에서조차 이명박 대통령의 하야론이 불거졌다. 이상돈 새누리당 비대위원은 어제 한 방송에 출연해 이번 사건을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 사건에 비유하며 “이 대통령이 사전 인지에 책임질 만한 일을 한 것이 밝혀진다면 사과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하야까지 요구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는 사회자의 지적에 “그런 해석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새누리당은 즉각 ‘개인 생각’이라며 입막음에 나섰으나 그런 생각을 가진 당내 인사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미 제기된 야당 원죄론에서 대통령 하야론에 이르는 180도의 부채꼴 스펙트럼이 혼란스러운 여당의 현주소를 대변하는 것 같다. 4·11 총선에 임하는 새누리당의 전략·전술 측면에서만 본..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사찰 문건의 80%가 노무현 정부 시절의 사찰 문건’이라는 청와대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났다. 엊그제 경찰청은 2619건의 문건을 USB에 보관해 오던 김기현 경정을 조사한 뒤 “2005년 2월부터 2008년 3월까지 작성된 문건 2200여건은 경찰관 비위에 대한 감찰보고서 등 경찰 내부문서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같은 편’이 물타기 시도를 정면으로 부정한 격이니, 청와대로서는 얼굴을 들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최금락 청와대 홍보수석은 KBS 새노조가 민간인 불법사찰 문건을 폭로한 지 이틀 뒤 “사찰 사례의 80% 이상이 노무현 정부 시절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선거를 앞두고 있더라도 사실관계를 왜곡해 정치공세를 하는 행위는 즉각 중단하라”며 야당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기..
양권모 | 정치·국제에디터 온갖 사건과 의제가 난분분한 총선 판에서 완벽히 잊혀진 것이 있다. 핵의 문제다. 고리원전 1호기의 전기 공급이 끊겨 가동을 멈춘 중대사고가 난 것이 얼마 전이다. 이중 삼중으로 마련했다는 안전장치, 비상발전기들은 소용없었다. 핵발전소는 전원이 끊기면 냉각이 안되면서 온도가 치솟아 원자로가 폭발하게 된다.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한 것도 비상발전기가 침수돼 전기를 공급하지 못한 게 직접 원인이었다. 핵발전소는 전원이 차단되면 원자폭탄으로 변하는 것이다. 고리 1호기가 ‘원자폭탄’이 되어 터질 수도 있는 사고가 발생했고, 그것을 한달여 은폐한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핵발전의 문제는 이번 총선에서 잊혀졌다. 한 해 전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태 때도 그랬다. 가공할 핵 위험을 ..
서의동 도쿄 특파원 올해 93세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 총리는 요즘도 언론에 등장해 정국 현안에 대해 왕성하게 발언한다. 신문기자를 거쳐 30여년간 정치평론가로 일해온 82세의 미야케 히사유키(三宅久之)는 올해 들어서야 TV토론 프로그램에서 은퇴했다. 79세의 극우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는 도중에 그만두지 않는 한 81세까지 지사직을 수행하게 된다. 도쿄 도심 오피스가로 향하는 아침 전철에서는 정장을 빼입은 세련된 노신사들과 마주치는 일이 많다. 정년이 65세까지 늘어난 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들르는 동네 편의점에는 머리가 희끗한 노인 점장이 건강한 목소리로 ‘이랏샤이마세(어서오세요)’를 외치며 분위기를 돋운다. 기업에선 후배에게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손동우 논설위원 어떤 제품의 선점효과가 크거나 성능이 탁월해 대중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될 경우 그 특정 브랜드는 유사한 기능을 지닌 상품 전반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로 바뀌게 된다. 요컨대 압도적인 특수성은 때때로 보편성을 획득하게 된다는 뜻이다. 지금은 소주의 종류가 다양해져 애주가들은 저마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술을 선택하지만 진로소주가 천하를 호령하던 시절 진로는 곧 소주였다. 일제시대 한반도에 상륙한 일본의 화학조미료 ‘아지노모도(味の素)’는 삽시간에 조선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아지노모도는 1950년대 중반 최초의 국산 조미료인 ‘미원’이 출시된 이후에도 한동안 화학조미료를 뜻하는 일반명사로 군림했다. 1960년 선보인 세계 최초의 건식 복사기 ‘제록스’는 본사가 있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을..
우석훈 | 타이거 픽쳐스 자문·경제학 박사 honortomeadows@gmail.com 김제동, 김미화 등이 ‘좌파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청와대의 지시에 의해서 사찰을 받았다. 청와대가 흥신소나 연예기획사처럼 국민들의 삶을 낱낱이 뒤져보는 정권, 이게 2012년 우리의 현주소다. 일단, 기분은 더럽다. 자, 청와대라고 해서 이렇게 아무렇게나 마구 사찰해도 좋은 것일까? 대통령의 행위에 관한 것이니, 헌법을 좀 살펴보자. 헌법 제17조는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건 공무원이라고 해서 함부로 감청하거나, 함부로 사생활을 낱낱이 엿보아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기본적으로는 과도한 공무원 사찰도 일단은 잘못된 것이다. 공무원은 국민이 아니야? 이어지는 제18조는 ..
정치권이 총선공천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의 인권문제를 근본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사건들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그것은 중국의 탈북자 강제송환, 지난 주말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희망텐트와 희망광장, 그리고 제주도에서 해군기지 건설에 저항해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강정마을이다. 탈북자들의 경우 강제송환 시 생명이 위협받는 등 엄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인권이 심각하게 우려되고 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해결을 위해 진행됐던 희망버스에 이어 쌍용차 등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열린 희망텐트와 희망광장은 신자유주의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인권의 현주소를 증언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강정마을은 동북아의 무력경쟁과 거대한 국가의 공권력에 맞서 자신들의..
염화시중의 미소. 정치적 선택에 대한 언론의 추궁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답으로 보여주고 있는 부드러운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나까지 정치를 해야 하나 모르겠다”는 그의 답 또한 그러하다. 이는 정치 참여에 대한 그의 부정적 생각을 표현한 것으로 들린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면, 자신까지 정치를 하도록 몰아가고 있는 한국 정치에 대한 비판과 한국 정치에 계속 문제가 많을 경우 싫어도 할 수 없이 출사표를 던지는 결단을 내릴 수도 있다는 의지를 시사하고 있다.정치적 언행에 관한 자료가 없는 안 원장에 대해 논평을 쓴다는 것은 당혹스러운 과제이다. 그럼에도 ‘안철수 현상’과 그의 선택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안철수 현상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세 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