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선수가 되길 바라는 운동부 학생이 꼭 교실에 들어가야 되는가?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수업을 따라가기도 어렵고, 그래서 아마 책상에 엎어져 잠을 자는 수가 많을 텐데 굳이 교실에? 이렇게 또 반문해도 내 대답은 마찬가지다. 그렇기는 해도 일단 교실에 ‘들어가야만’ 한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현행의 학교 또 교실이 어떤 풍경인가를. 이른바 전인교육은 찾아보기 어렵고 결국은 바늘끝만 한 입시 지옥만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곳, 그래서 꽤 많은 학생들이 정규 수업을 따라가지 못한 채 잠을 자는 수가 많고 심지어 학업 능력이 뛰어난 학생들도 부분적으로는 학원에서 맹진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다들 교실에는 들어간다. 운동하는 학생이라고 해서 교실 밖을..
체육계 성폭력 문제로 체육계는 물론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대통령까지 나서 근절 의지를 강력히 천명했지만 정작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헛발질로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이번 기회에 올림픽 메달 연금과 소년체전을 폐지하고, 대한체육회에서 대한올림픽위원회(KOC)를 분리하겠다는 문체부의 발표 이후 체육계 분위기는 엉망진창이 됐다. 이 문제들은 이미 십수 년 전부터 논의되어 온 체육계의 뜨거운 쟁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우선 선수들의 인권 회복에 집중하고 그 후에 지혜와 여론을 모아 서서히 풀어가야 할 사안들이다. 그러나 정부의 안이한 대책은 앞으로 제2, 제3의 심석희가 나타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고 말았다. 엘리트 체육을 퇴보시킬 수 있는 정부의 섣부른 대책에 체육계는 한목소리로 반발하고 있다. ..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무리의 중심에 있는 사람을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인싸(인사이더)’라고 한다. 언론의 조명을 받고, 팬들을 몰고 다니며, 거액 연봉을 받는 스포츠 스타도 ‘인싸’라면 ‘인싸’일 것이다. 그러나 ‘인싸’가 주류와 동의어는 아니다. 주류에 진입하려면 인기 외에 다른 조건들도 충족돼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피부색이다. 콜린 캐퍼닉 사건은 검은 피부의 ‘인싸’가 주류의 심기를 건드릴 경우 삶이 고달파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미국프로풋볼(NFL)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쿼터백이었던 캐퍼닉은 2016년 경찰이 유색인종을 폭력 진압하자 이에 항의하는 의미로 경기 전 국가 연주 때 무릎을 꿇었다. 국가 연주 시 기립 자세를 규범으로 여기는 미국에서 캐퍼닉의 행동은 스포츠계 안팎..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님, 안녕하신지요. 1년여 전 스포츠 전문 방송에서 대화를 나눈 적 있지요. 그날 방송에서 위원님은 IOC 선수위원의 임무를 강조한 바 있습니다. ‘올림픽 헌장’을 준수하는 것과 선수 권익의 신장과 보호였지요. 사실 이 둘은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올림픽 헌장’은, 마치 헌법처럼, 회원국의 모든 임원, 지도자, 선수들이 일체의 타협이나 양보 없이 반드시 지켜야 할 근본 이념이지요. 그 맨 앞에 ‘올림픽 이념의 기본 원칙’이 천명되어 있습니다. 1항을 보면 올림픽 이념은 ‘인간의 신체, 의지, 정신을 전체적 균형과 조화 속에서 고취’시키는 것입니다. 신체만이 아니라 의지도 정신도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선수들이 ‘운동 기계’가 아니라 전인적인 성장을 해야 함을 강조..
1972년 6월16일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제1회 전국스포츠소년대회가 개최됐다. 앞서 소년체육대회는 전국체육대회의 중등부에 포함돼 실시됐으나 이해 들어 전국스포츠소년대회로 독립했다. 학교 엘리트 체육의 서곡이었다. 유망주를 조기에 발굴하고 국가대표로 육성해 스포츠를 통해 국위를 선양하자는 게 목적이었다. 이후 전국 초·중등학교에서는 운동부 신설이 붐을 이뤘다. 전국스포츠소년대회는 국가주의 체육의 시작이었다. 대회 주최자는 민간기구인 대한체육회였지만, 행사의 기획과 진행은 사실상 국가가 주도했다. 대회 슬로건은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나라도 튼튼’이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첫 대회 개회식에서 선수들에게 “조국을 위해 충성스러운 국민이 되고 나라, 겨레, 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한 단일팀 논란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 문재인 대통령은 진천선수촌을 전격 방문한다.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설득하려는 취지였다. 올림픽 직전이라 당시 진천에서 훈련을 하고 있던 국가대표선수들을 모아 격려하는 자리를 만들었고 한국 쇼트트랙의 간판 심석희 선수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처음엔 감기몸살이라고 둘러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14년 ‘은사’(고마운 스승이라는 뜻이다)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의 폭행으로 선수촌을 이탈(실상 탈출에 가깝다)한 사실이 알려졌다. 기록이 오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수촌 내 골방에서 무차별 폭행이 가해졌고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스포츠 선수들에게 꿈의 무대인 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선..
체육계에서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가 확산되고 있다. 전 유도선수 신모씨가 고교 재학 중이던 2011년부터 졸업 후인 2015년까지 당시 코치 손모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14일 폭로했다. 신씨는 손씨를 고소했으나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한겨레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밝혔다. 그는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의 ‘조재범 성폭행’ 고발을 보고 용기를 냈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깝다. 언제까지 피해 당사자들의 용기에만 의존해야 하나. 그들이 인생을 걸고 세상에 나설 때까지 법과 제도와 시스템은 뭘 하고 있었던 건가. 신씨에 따르면, 손씨는 신씨의 임신 여부를 확인하겠다며 산부인과 진료를 받도록 강요하는가 하면 ‘성관계 사실을 부인하라’며 돈을 주려 했다고 한다. 금품으로 회유하려는 데 분노한 ..
성적지상주의가 악마를 낳았고, 희생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겼다. 국민을 충격과 분노로 몰아넣은 조재범 전 국가대표 쇼트트랙 코치의 선수 상습 성폭행 사건은 체육계에 널리 퍼져 있는 성적제일주의에서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결과만을 최고로 여기는 환경이 현장의 부조리를 눈감아주고,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9일 노태강 제2차관의 긴급 브리핑을 통해 체육계 성폭력 비위 근절을 위한 각종 대책을 발표하고 재발 방지 노력을 약속했다. 선수 성폭행 사건이 알려진 뒤 문체부 전 직원이 출근해 밤새 브리핑 자료를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문체부는 먼저 자신들의 문제점을 돌아봐야 한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과도한 목표를 설정하고 현장에 강요한 이들이 정부였기 때문이다. 박근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