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책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일본에는 엄청난 분량의 한국 책이 있다. 천리대학의 책이 좋은 예다. 2006년 천리대학을 방문해 도서관 서고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방대한 분량의 한국 책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경성제국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조선학’을 연구했던 이마니시 류(今西龍)의 수집본을 중심으로 한 것이다. 도서관 측에서는 우리 방문객들에게 미리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말해 보라고 했지만, 정작 우리 측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책을 신청하는 바람에 귀중본은 보지 못했다. 이 도서관에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도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여 달랬더니, 보여준단다. 유리장 안에 얌전히 놓여 있는 ‘몽유도원도’를 보고 있자니, 옆에서 설명이 따른다. 원본은 아니고 복제본이란다. 다만 이 복제본도..
는 정말 방대한 주제를 건드리고 있다. 다른 곳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자료가 허다한 것이다. 예를 들자면, , 은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동양의 포르노그래피 곧 춘화에 대한 귀중한 자료를 담고 있다. 전자는 남녀의 성행위 조각상인 ‘춘의(春意)’가 인조 때 처음 조선에 수입되었다는 사실, 후자는 북경에서 수입된 춘화를 사대부들이 즐겨 감상한다는 사실 등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성리학에 기반을 둬 윤리를 제일의적 가치로 삼았던 조선 사족사회의 이면(아니 지배계급의 리얼리티)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말이 나온 김에 한 걸음 더 나아가자면, 조선 지식인들이 접했을 가장 노골적인 소설인 의 수입에 관한 자료도 이 책의 이 유일하다. 약간 소개하자면 왕세정(王世貞)이 의 작가로 알려져 ..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지식인, 국어학자였던 권보상(權輔相)은 광교 근처에서 군밤을 사다가 포장지를 유심히 보았다. 뭔가 한자가 빽빽이 적혀 있었다. 심상한 종이쪽이 아닌 것 같았다. 군밤장수에게 돈을 치르고 포장지를 모두 사서 당시 조선의 고전을 간행하던 광문회(光文會)로 가져갔다. 광문회는 1910년 최남선이 민족의 고전을 수집하여 간행하고 염가로 보급하기 위해서 세운 단체였다. 당연히 광문회에는 고전에 해박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검토한 결과 군밤 포장지가 이규경의 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책의 상당 부분은 이미 망실되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 귀중한 책은 광문회에 보관되어 있다가 광문회 해산 때 최남선의 차지가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의 가치를 알아본 경성제국대학 도서관 쪽에서 한 벌..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책을 이야기했는데, 사라질 뻔했다가 다시 살아난 책도 있다. 가 그런 책이다. 먼저 책 제목부터 보자. 이 책 제목은 오주, 연문, 장전, 산고로 읽어야 한다. ‘오주’란 사람이 연문하여, 즉 문장을 부연하여, 장전, 곧 긴 부전지(附箋紙, 쪽지)를 붙인, 산고, 곧 이런저런 글이란 뜻이다. 내친김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아는 도 읽어보자. 이건 ‘왕, 오천축국, 전’이다. 다섯 천축국에 간 기록이란 뜻이다. 각설하고, 그렇다면 ‘오주’는 누구인가.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이다. 이규경이라면 대부분 모를 터이다. 하지만 이덕무(李德懋)의 손자라면 알 것이다. 이덕무는 요즘 ‘책 읽는 바보’로 잘 알려져 초등학생도 다 안다. 이덕무는 알다시피 18세기 후반의 인물로 박지원..
젊은 날 공부하는 친구들과 술자리를 벌이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야기가 사라진 책에 미쳤다. 이름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책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런 책은 존재했으되 존재하지 않았던 책이다. 정작 사람을 더 애달프게 하는 것은, 이름만 남기고 사라진 책이다. 에코의 에 나오는, 사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수도원에만 비장되어 있는 그 책, 아리스토텔레스의 을 둘러싸고 얼마나 흥미진진한 사건이 벌어졌던가. 이야기는 우리나라 역사에 이름만 남기고 사라진 책으로 번졌다. 만약 그런 책이 다시 나타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그 책을 소유하게 되었다면? 그런 책으로 어떤 책이 있는가? 그중 누구나 동의하는 책은 신라시대 때 향가를 모은 이었다. 알다시피 신라시대의 문학은 남은 것이 별로 많지 ..
조희룡의 문집 이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앞서 했다. 문집이 있으면 작가 개인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조희룡 문집의 소재처가 늘 궁금했다. 그런데 이상한 인연이 이어졌다. 나수연 후손 집에서 책과 서화를 보고 있는데, 희한한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손바닥만 한 불과 10페이지의 작은 시집이다. 제목은 다. 열어보니, 첫 페이지에 ‘철적도인(鐵笛道人)’이란 저자명이 보인다. 철적도인은 ‘조희룡’의 호다. 내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의 저자가 아닌가. 또 글씨를 보니 조희룡이 직접 쓴 것이 분명하다. 이 사라졌기에 이제까지 조희룡의 한시를 묶은 시집은 발견된 적이 없다. 흥분을 누르고 와 함께 빌려 달라 하니, 선선히 그렇게 하라며 큰 서류 봉투에 넣어 줬다. 가져와 당..
박사학위 논문을 쓸 무렵이다. 앞서 말했듯 논문 주제는 조선후기 기술직중인과 경아전의 한문학이었다. 기술직중인은 의원이나 역관, 계사, 화원 등 주로 조선의 관료체계에서 특정한 전문분야의 관료직을 수행하는 신분층이고, 경아전은 서울의 관청에서 하급 행정실무를 맡는 축들이다. 양반 사족 아래고, 보통 백성보다는 위에 위치한다. 어떤 경우 이들을 싸잡아 중인이라 하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다. 대개 서울사람이고 또 사족이 아닌 ‘시정(市井)’의 사람이란 뜻에서 여항인(閭巷人)이라 부른다. 시정의 뜻으로 옛날에는 ‘여항’이란 문자를 썼던 것이다. 서울의 양반관료가 아닌 ‘시정의 사람’이란 뜻이 되겠다. 서울에는 중앙관청이 밀집해 있었던 만큼 양반 벼슬아치가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그 아래 양반이 하지 않은 벼슬들..
나는 여러 문헌을 통해 서울의 큰 양반집의 겸인, 곧 청지기가 중앙관서의 서리가 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구체적인 경우만을 접했을 뿐, 그것이 관례화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찾지 못해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정교의 에서 정말 내가 원하는, 더할 수 없이 정확한 자료가 나왔다. 말하자면 꼭 맞는 열쇠를 찾은 셈이었다. 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1957년 한국사사료총서의 하나로 간행한 책이다. 구한말의 정계와 사회에 대한 자세한 보고서다. 하지만 그 시대를 연구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굳이 볼 필요가 없는 책이고 나 역시 관심을 두지 않을 책이었다(지금은 번역본도 나와 있다). 그 책의 한 모퉁이, 그것도 주석 부분에 내가 필요한 자료가 있는 줄 어떻게 알 수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