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열 | 연세대 교수·국제정치학 미국 언론은 이번 미·중 정상회담을 ‘초강대국 정치(superpower politics)’로 불렀다. 미국은 중국에 초강대국에 걸맞은 대접을 해주었다. 대신 경제·군사·안보·인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이 초강대국에 걸맞게 책임있는 행동을 취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과 중국이 과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표현처럼 “협력의 정신과 우호적 경쟁”을 펼쳐 지구촌의 공생과 번영을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인가. 美·中, 경제·군사 패권 경쟁 가열 지난 한 해 양국은 남중국해와 센카쿠 도서분쟁,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대만에 대한 무기 수출 등을 둘러싸고 많은 긴장과 갈등을 겪었다. 중국은 자국의 부상을 저지하려는 미국의 포위·봉쇄 전략이라 비난한 반면, 미국은 중국이 자국을 동아시..
조명래 | 단국대 교수·도시계획학 7년간 3조5000억원이 투자될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 지난해 국회 날치기 때 통과됐다. 법에 의하면 과학벨트의 위치는 과학기술위원회 주관으로 정하도록 되어 있다. 청와대 담당자는 전국이 입지 후보지라고 했고 여당의 유력인사는 정치적 입김을 줄이고 정부에 선정을 맡기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과학벨트 문제는 ‘제2 세종시 사태’로 치닫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과학벨트가 충청권에 들어설 것으로 알고 있다. 대통령이 ‘충청권 입지’ 약속은 물론 유령도시가 될 세종시를 구할 처방으로 일찍이 제안했기 때문이다. 세종시 수정안은 부결됐지만, 그래서 충청권 약속을 지킬 것이란 게 보통사람들의 기대였다. 그러나 세종시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듯이 현 정부는..
양권모│경향신문 정치부장 그가 무도한 정권에 의해, 국가의 폭력으로 사법살인된 지 반세기하고도 2년이 지났다. 그 무참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세상은 여전히 그가 지향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여전히 냉전의 기운 속에서 전쟁마저 운위되고, 서민의 기본적 생활권을 확보하는 복지의 문제를 놓고도 오도된 이념의 시비가 횡행하고, 진보의 정치는 분열과 기득권의 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때에 그의 죽음이 정적을 죽이려는, 이 땅의 진보정치 싹을 자르려는, 부패한 보수 독재권력에 의한 정치살인이었음을 확인하는 대법원의 재심 판결이 나왔다. 진보당 중앙위원장 죽산 조봉암 선생이 서대문형무소에서 국가보안법의 간첩죄로 사형당한 지 반세기가 넘은 2011년에서야 그때의 사형 판결이 잘못된 것으로 바로잡힌 것이다...
박미라 | 전 이프 편집장 중·고등학교 시절 체육시간에 우리는 종종 운동장에서 달리기나 토끼뜀을 했는데, 그때 뒤처진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처벌은 꼴찌 그룹을 면할 때까지 운동장을 더 뛰는 것이었다. 햇볕 뜨거운 여름날, 이를 악문 채 몇 번이고 운동장을 돌아야 했던 아이들이 느꼈던 모욕감, 수치심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면 한 명이라도 더 제쳐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달리기를 하게 된다. 속된 말로 군기가 잡히는 것이다. 대학교 때는 연극반에서 활동했는데, 그때 연출을 맡았던 한 선배는 연기연습을 하기 전 한도 끝도 없이 체력훈련을 시켰다. 토끼뜀,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등은 기본이고, 바닥에서 개구리헤엄치기, 김밥 말기 등 주로 모욕감을 느끼게 하는 것들 위주로 운동을 ..
황대권('야생초 편지' 저자) 몇 달 전 일본의 한 시민단체가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방문해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던 중 갑자기 원자력발전소를보고 싶다고 하기에 지역의 시민감시단에 있는 친구를 불러내 함께 찾아간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오랫동안 반핵운동을 해온 경력을 살려 일본인 방문객들에게 친절하고 자상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원래 외국인 방문객이 찾아오면 홍보담당 직원이 안내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날은 우리가 가이드를 달고 왔으므로 홍보직원은 뒷전에서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만 볼 뿐이었다. 이윽고 방문이 끝나 막 나가려 하자 담당 직원이 배웅인사 겸 홍보성 발언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그러자 다혈질인 우리 측 가이드와 직원 사이에 최근의 지역현안을 두고 말싸움이 벌어졌다. “뭐, 파워 업그레이드? 지역민들..
김호기/연세대교수·사회학 한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21세기 첫 번째 10년을 말한다. 누구는 2000년부터 새 시대를 얘기하지만, 새로운 세기의 출발이 2001년부터라면 바로 오늘이 21세기 첫 번째 10년을 마감하는 날이다. 세계사적으로 지난 10년은 신자유주의의 종언을 알리는 시대로 기록될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와 피로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한 신자유주의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결정적 위기를 맞이했다. 1950~70년대 ‘진보의 시대’에 뒤이어 1980년대에 등장한 ‘보수의 시대’가 신자유주의의 위기와 더불어 새로운 전환점에 위태롭게 서 있다. ‘포스트 신자유주의’ 불안한 전환점 문제는 이 ‘포스트(post) 신자유주의’ 국면이 상당히 불분명하다는 데 있다. 여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세계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개최된 G20 서울정상회의 이후 정부의 각종 보도자료나 홍보물에서는 G20개최국에 걸맞는 ‘국격’이란 표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아예 정부차원에서 국격 제고 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이와 함께 ‘녹색성장’과 ‘공정사회’도 이명박 정부의 국정이념을 상징하는 용어로 활용되고 있다. 경제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환경적인 측면, 사회통합적인 측면을 아우르는 이 세 단어는 어느 정권이나 정당이든 부정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국회의 여당 단독 예산안 강행 처리,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으로 촉발된 국가의 안보위기, 행복도시 수정안의 졸속 입안과 폐기, 민간인과 정치인에 대한 불법 사찰과 국가인권위원회의 파행 등 올 한 해 동안의 굵직한..
정태인/ 경제평론가 인간이 자의적으로 유장한 시간의 흐름을 토막낸 탓에, 이즈음이면 흔히 이런 질문을 듣게 된다. “내년 경제, 어떨 거 같아요?” 2007년말부터 내 대답은 같았다. “빚 갚으세요. 집이나 주식이 있다면 파시는 게 나을 거에요.”(실제로 나는 금년 초에 집을 팔았다) 매년 똑같은 답을 했으니 자기 생계 하나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내 무능함을 여실히 증명한 셈이다. 그러나 금년에도 내가 할 수 있는 답은 마찬가지이다. 내 ‘예측’(?)이 비껴 나간 걸 굳이 변명하자면 2008년말부터 2009년초까지 전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동시에 돈을 풀고, 또 확대 재정정책을 썼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역사상 최초의 사건이다. 넘쳐나는 유동성은 패닉을 막았고 정부의 지출은 성장률을 높였다. 그러나 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