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이 유임됐다. 현 상황에서 달리 대안이 없다. 월드컵에 비해 내년 1월 호주에서 개최되는 아시안컵 대회가 관심이 덜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비중으로 보자면 월드컵 다음으로 중요한 대회이며 어떤 점에서는, 특히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대표팀의 환골탈태를 도모할 수 있는 중요한 대회다. 이영표 해설위원의 말대로 아시안컵은 ‘경험’을 쌓는 대회가 아니다. 홍 감독을 경질하면 한 달 가까이 후임자를 물색해야 하고 어렵사리 초빙된 후임자가 선수들을 파악해 자기 철학에 맞는 팀을 구축해야 하는데, 아무리 빨리 잡아도 늦가을에나 가능하다. 현재로서는 유임이 타당하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절차는 타당했는가, 향후 대표팀 발전 계획을 조직적으로 구상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는 결국 협회 기술위원회의..
“잘츠부르크의 소금광산 깊은 곳에 잎이 떨어진 나뭇가지를 던져 넣어두고 몇 달 뒤에 꺼내보면 나뭇가지는 간데없고 온통 반짝이는 소금결정으로 덮여 수정처럼 아름답게 빛난다.” 스탕달의 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결정 작용’이다. 연애에 빠지면 곰보자국도 다이아몬드처럼 보이고, 처가의 말뚝만 보고도 절하게 된다는데, 축구? 그렇다. 우리 선수의 태클은 절묘한 기술이지만, 상대편 반칙은 퇴장감으로만 보이며 말이 ‘응원’이지 민족주의의 이기적 유전자들의 ‘결정 작용’을 넘어섰다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지 모른다. 며칠 동안 조심스러웠지만 월드컵에 빠지고 싶었다. 정치, 경제, 사회 어느 것 하나 시원한 소식이 없었기에 브라주카 한 방에서 위안을 얻으려고 정반대 시차임에도 새벽 출근길 거리로 나섰고 TV 앞에 모여 ..
반전은 없었다. 마지막까지 기대했던 브라질의 기적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2014 브라질월드컵 한국 대표팀은 어제 열린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0-1로 졌다. 벨기에에 수적 우위를 점하고도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한국은 열심히 벨기에를 몰아붙였으나 골 결정력이 부족했다. 새벽잠을 설치며 응원한 국민들은 실망했고, 마지막 투혼을 불사른 선수들은 운동장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이로써 한국은 1무2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H조 최하위에 그치며 쓸쓸한 귀국길에 오르게 됐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무승’의 치욕을 당한 건 1998년 프랑스 대회 이후 16년 만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진출과 2010년 남아공월드컵 16강 진출 등을 통해 쌓아올린 축구 강국의 위상은 브라..
국제스포츠대회를 장밋빛으로만 보던 시대는 지났다. 경기장과 인프라에 수십조원을 투자하고도 기대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결국 빚더미에 앉는 개최도시의 사례도 늘고 있다. 1976년 몬트리올,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경우 대회를 잘 치르고도 과도한 시설 투자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재정적자의 늪에 빠져들었다. 세계대학스포츠 축제인 유니버시아드를 준비하면서 이들 실패한 도시들의 전철을 밟지 않는 것이 최대의 과제였다. 2008년 대회 유치부터 ‘저비용 고효율의 흑자대회 실현’, ‘시민에게 빚을 남기지 않는 대회 개최’라는 목표를 내세운 이유이기도 하다. 유니버시아드는 규모가 날로 커져 2015년 광주대회에는 170개국 2만여명의 참가가 예상된다. 그만큼 준비도 복잡해졌고 모든 준비과정에 국제기구의 승인을 얻..
“일본을 이기지 못하면 현해탄에 빠져 죽겠습니다.” 1954년 한국 축구계 대표들이 대통령 앞에서 약속 아닌 약속을 했다. 전설처럼 전해오는 이야기지만 이런 비장한 맹세가 없었으면 한국의 사상 첫 월드컵 진출은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다. 일본과 홈 앤드 어웨이로 예선을 치러야 하는데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 선수들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아 한국 기권으로 처리될 뻔했기 때문이다. 이때 축구계는 두 경기 모두 어웨이로 치르겠다는 결심을 했고, 대통령 앞에서 필승의 각오를 다지면서 현해탄을 건넌 것이다. 결국 일본을 꺾고 본선 티켓을 따냈지만 그라운드를 밟기까지는 멀고도 험한 여정을 거쳐야 했다. 양복을 외상으로 맞춰입고 장도에 오른 한국팀은 미군 군용기를 타고 일본 하네다 공항으로 갔다고 한다. 거기 가면 유럽 ..
“너무 많은 사람들, 너무 많은 사람들, 싫다. 나는 여기 있겠다.” 2006년의 일이다. 독일의 고도 바이마르. 만난 지 10분 만에 축구와 월드컵으로 친구가 된, 어느 식당 주인 얘기다. 그는 테아테르 광장 한쪽에서 작은 식당을 하고 있었다. 그날, 독일 대표팀의 경기가 있었기 때문에 식당은 한산했다. 며칠째 고속도로 휴게소의 소시지 음식에 질렸던 나는 모처럼 한가로운 식당에 앉아 따스하고 부드러운 음식을 먹고 싶었다. 조치훈이 반상을 내려다보듯 신중하게 선택을 했는데, 이번에도 소시지 볶음이었다. 그래도 휴게소보다는 맛있었다. 우리는 독일 월드컵 얘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월드컵 때문에 관광객이 많이 모여들어 좋겠다고 물었다. 그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관광객이 적다는 건지 많이 모여드는 게 싫다는 ..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중계를 보면 더러 경기 전에 누군가를 추모하며 묵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넬슨 만델라 같은 위인을 추모하기도 하고 경기장 관리를 해온 직원을 추모하기도 한다. 리버풀을 비롯한 수많은 클럽들이 해마다 4월 중순이면 1989년의 ‘힐스보로 참사’로 인해 사망한 96명의 축구팬들을 위한 추모식을 갖는다. 참사 이후 영국 정부에서 비참하게 죽은 축구팬들을 모욕한 일도 있어서 그 어떤 추모보다 엄숙하게 거행된다. 놀라운 예외가 있었다. 2013년 4월,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사망했을 때다. 무조건 출세만 하면 위인 취급을 하는 한국에서는 일찌감치 대처가 어린이 위인전집에 포함될 정도였지만 영국 현지 반응은 극단적이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숱한 개혁을 통해 부강한 나라를 만들었..
벌써 8년 전, 이맘때 일이다. 2006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각 방송사에서는 야심찬 기획물을 내보이는 한편 독일 현지 중계를 위한 인적 구성을 하고 있었다. 어느 방송사에서 그와 관련된 논의를 마치고 몇몇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던 중에 내가 이런 말을 했다. “축구공 무게가 450g 정도 되는데, 축구에 관한 프로그램은 공보다 너무 가볍다.” 일행 중에 누군가가 어느 정도는 동의하면서도 이렇게 반문했다. “축구는, 아니 월드컵은 이미 엔터테인먼트가 된 거 아닌가?” 그 말은, 그 무렵 어느 대통령의 말처럼, 축구가 이미 오래전에 시장의 머니 게임 종목이 되었음을 확인시켜준 것이었다. 축구가, 그리고 월드컵이 단순한 스포츠 종목을 넘어서 거대한 시장이 되었음은 새삼 반복할 필요도 없다. 국제축구연맹(FIF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