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혁 | 서천군농민회 교육부장 얼음을 뚫고 나와 ‘날 잡아 잡수’하고 엎드렸다는 겨울 잉어와 더불어 천하의 효자나 구할 수 있었던 눈밭의 딸기는 이제 겨울이 제철입니다. 부모님들도 더 이상 딸기 정도로 효자를 시험하지는 않으십니다. 그래도 유난히 추운 이번 겨울, 곱이나 더 들어가는 기름을 쳐다보며 새벽마다 하우스로 나가 온도를 점검하고 마음 졸이는 심정을, 딸기를 잡수시는 분들은 좀 알아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자연을 극복해야 얻어지는 맛이니 얼마나 욕보겠습니까. 농한기라고 한가한 농민은 별로 없습니다. 농사일이 없으면 김 양식장에 취업을 하거나 집 짓고 창고 짓는 데에 날일이라도 다닙니다. 연세 드신 분들은 동네 한 바퀴씩 걸으며 운동도 하고 회관에 모여 윷도 노십니다만, 노는 사람도 그렇게 편해 보..
한상봉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나는 기억하기 위하여 태어났다. 그러므로 이 기억이 죄다 휘발되기 전에, 글씨를 쓴다. 이 모든 비속하고 정답고 지겨운 것들을, 하찮고 애절하고 시시하고 또 시시해서 끝도 없이 사랑스럽고 그리운 것들을.” 서른을 갓 넘긴 글쟁이 김현진은 이라는 책을 쓰게 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그는 도시에서 산다는 건 누구에게나 그렇듯, 고단하고 막막하다고 전했다. 도시에서 넓고 깨끗하게 구획되는 거리는 좁다랗고 아무렇지도 않고 후줄근하고 또 정다운 골목을 쾌속으로 말살하고, 그 골목에서 마주치던 수많은 사람들을 감쪽같이 증발시켰다고 말한다. 김현진은 그 사라져버릴 골목 갈피마다 품고 있었을 사람과 사연을 기억하고 싶어 했다. “사랑하고 증오하고 끝내 미워하면서도 또 사랑했던..
김별아 | 소설가 몇 해 전 ‘한·러 문학의 밤’에 참석하기 위해 러시아에 갔다가 모스크바 남쪽 멜리호보에 있는 ‘체호프 기념관’을 찾았다. ‘가장 러시아적인 작가’로 일컬어지는 안톤 체호프가 대표작 를 집필하며 뜨거운 한 시절을 살았던 장소임에도, 그곳은 초라하리만큼 소박한 공간이었다. 작가들의 기념관은 아무리 화려하게 치장하려 해도 딱히 채울 게 없다. 낡은 책상, 닳은 펜, 손때 묻은 책이 고작인 유품들은 영혼의 부(富)와 대비되는 일상의 빈곤과 고독을 전시한다. 체호프 기념관 역시 작가이면서 의사였던 삶을 증명하는 주사기와 진찰도구 몇 점을 제외하면 별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그때 맞닥뜨렸던 쓸쓸한 풍경은 기지와 통찰이 번득이는 그의 작품들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해주었다. 체호프의 유머는 독하다...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기차를 처음 탄 것은 동대구역에서였다. 방학이면 무조건 거창의 큰댁으로 가서 뛰놀았던 나는 부산~거창을 오고갈 때, 천일여객의 시외버스를 주로 이용했다. 어느 해 여름 한철을 보내고 고향을 떠날 때, 버스표를 구하지 못해 대구를 거쳐 부산으로 갔다. 내 기억에 그때 아마 처음으로 기차를 탔던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 언저리의 일이다. 그러고 기차를 여러 번 탔다. 가장 길게 탔던 것은 고등학교 졸업식 마치고 대학교 본고사 시험 치러 서울 갈 때였다. 그때 나는 검정 교복을 입고 검은 모자를 쓰고 검은 책가방을 들고 소위 상경이라는 것을 했다. 선생님 인솔하에 대학교 시험 치러 가는 친구들과 단체로 기차를 탄 것이다. 서울이 무슨 고원지대도 아닐 텐데 왜 상경(上京)한다고 했을까..
최용혁 | 서천군 농민회 교육부장 sinpo9085@hanmail.net 가을걷이가 끝난 빈 들판을 더 좋아하는 것은 꼭 게을러서만은 아닙니다. 뭐라고 딱 정해서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빈 들판 앞에 선다는 것은 지금 하고 있는 걱정보다는 좀 더 근본적인 물음에 맞서는 것입니다. ‘이삭거름을 얼마 더 줄까’가 아니라 ‘올 한 해 얼마를 벌었나’에 답해야 하는 것이고, ‘삽질 해서 뭐하나’보다는 ‘농사 지어 뭐하나’에 답해야 하는 것이며, ‘농협 빚은 다 갚았나’가 아니라 ‘10년 후에 어떻게 살 거냐’는 물음에 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근본적인 물음이라는 것은 실제로는 더욱 실존적인 물음이기도 합니다. 너른 들판을 보며 민주대연합을 이야기한 어떤 시인의 상상력도 그럴듯하지만, 와서 보면, 눈으로 보..
이갑수 | 도서출판 궁리 대표 “한때 나를 뻑가게 만든 카수의 공연. 시간된다면 표 6장 끊으마.” 친구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마침 올해의 꽃산행도 거의 파장 무렵이라 주말이 좀 한가해졌다. 공연소식을 뒤졌더니 노래는 알 법했지만 낯선 가수였다. 내가 둔한 놈이었다. 내가 미처 이름을 몰랐을 뿐 그의 노래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번 공연도 가수의 팬카페에서 힘을 모아 여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노래를 들어보면 아, 그 노래가 그 가수야! 하고 알아차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11월 셋째 토요일,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 가수는 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노래를 불렀다. 우울한 1980년대를 통과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노래들이었다. 주로 기타를 이용한 반주였지만 웅장하고 활달한 느낌이었다. 총 3..
한상봉|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이라는 제목의 소설집과 이라는 장편소설을 지었던 한강. 40대 초반의 그녀가 지난 2007년에 자신이 지은 곡을 직접 부른 CD와 노래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한강, 이름이 먼저 가슴을 서늘하게 스치고 지나갔고, CD에 담긴 그녀의 음색에 이내 젖어들어갔다. 최소한 반주 사이로 생 목소리가 귀청을 훑으며 내려와 가슴 깊은 곳에 박혔다. 이 노래의 음반작업을 지휘한 작곡가 한정림씨는 그녀에게 “절대로 노래를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불러요”라고 주문했다. 한강은 “그냥 있는 그대로라니… 그 말이 더 무서웠다”고 전한다. “눈물도 얼어붙네/ 너의 뺨에 살얼음이// 내 손으로 녹여서 따스하게 해줄게/ 내 손으로 녹여서 강물되게 해줄게// 눈물도 얼어붙는/ 12..
최용혁 | 서천군 농민회 교육부장 영화 에서처럼 튀밥이 눈이 되어 내리는 느낌까지야 아니지만 읍내에서 여우고개를 넘어 오거나, 금강하구의 너른 들판을 질러 국립생태원이 들어선 길을 따라오다 보면 한적한 시골 마을에 “어! 이런 곳에?”라고 할 만한 아담한 도서관이 있습니다. 차로 15분 정도 걸리는 초등학교의 전교생이 70명 남짓이니 근방의 아이들이라고 해 봐야 몇 되지 않습니다. 옆 마을 친구집이라고 해도 아이들이 걸어서 가기에는 난감합니다. 초초고령사회인 농촌에서 마을 정책은 대부분 어르신들에게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더 절실했나 봅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정말 멋져서 그렇게 어른들을 설득해 나갔습니다. 엄마들의 진심과 의지에 마을 분들은 누룽지 공장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