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지방법원이 15일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한 인터넷사이트 ‘배드파더스(Bad Fathers·나쁜 아빠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초상권이나 명예훼손보다 양육비를 아이들의 생존권 문제라고 한 사이트 운영자 손을 들어준 것이다. 배드파더스는 미혼모나 이혼한 싱글맘이 제보한 합의서·판결문을 토대로 양육비 약속을 어긴 부모의 얼굴 사진과 이름·거주지·직업 등을 게재하고 있다. 2018년 개설된 사이트엔 수백명의 신상정보와 ‘113건이 해결됐다’는 공지가 떠 있다. 이 재판은 지난해 5월 검찰이 벌금 300만원에 약식기소한 뒤 재판부가 “일반적 명예훼손 사건과 다르다”며 정식 재판에 회부하고, 국민참여재판이 열려 화제가 됐다. 지난해 2월엔 방송통신심의위에도 ‘사이트 폐쇄’ 요구가 접수..
요즘은 새해 인사보다 “2020년이 되면 자동차가 날아다닐 줄 알았는데” 하는 진부한 실망을 더 많이 듣는다. 나는 ‘자동차가 날아다닌다는 발상 자체가 완전 과거형 아닌가? 날아다니는데 굳이 무겁고 바퀴 달린 자동차 모양일 필요가 없잖아’라는 말을 속으로 삼키고 “그러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더 진부한 인사를 하고 만다.비록 2020년의 풍경이 어릴 적에 그렸던 상상화나 과학 엑스포 전시관에서 봤던 모습은 아니지만, 나는 유튜브 ‘맞춤동영상’ 때문에 내가 충분히 미래에 살고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동시에 미래는 별로 좋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죽을 때까지 돈을 쓰지 않고 모아도 집을 살 수 없다고 저주받은 세대의 청년답게 아침 출근길에 부동산 대책을 브리핑하는 유튜브 영상 하나를 본다...
지질학자 토끼를 따라가는 샛강 어귀나 노출된 사암층 어디. 산길을 따라 걷다보면 오슬오슬 춥다. 토끼털처럼 따스한 옷을 챙겨 입고 나서야 한다. 토끼 똥이 보이면 근처에 분명히 토끼굴이 있을 거다. 토끼를 뒤에서 부르면 휙 돌아보는 까닭은 눈이 뒤에 없기 때문. 시시한 수수께끼.시베리아 하고도 바이칼 호수에 얼음이 땡땡 얼었겠다. 용기가 대단한 토끼는 앙가라강 얼음강을 건너기도 한다. 시베리아 사람들은 얼음호수를 내다보면서 꼭 토끼굴처럼 생긴 조그만 사우나 공간에 들어가 ‘바냐’를 즐긴다. 나도 러시아에 가면 종종 바냐를 해보곤 한다. 자작나무 잎사귀로 등때기와 허벅지를 자근자근 때리면서 더운 물을 뿌린다. 바냐란 러시아식 전통 사우나. 한 집에서 자작나무를 쪼개 불을 때고 바냐에 초대를 하면 주민들이 ..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커피를 마시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수만 잔의 커피를 마셨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도 커피를 좋아하는 분이 많을 것이다. 이제 그동안 마신 커피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자. 어쩌면 생애 처음 마신 커피였을 달달한 믹스 커피, 시험공부를 하다가 도서관에서 마신 자판기 커피, 추운 겨울에 손을 녹일 요량으로 마시던 캔 커피, 인상적이었던 카페, 함께 마신 사람들… 내 머릿속에 있는지도 몰랐던 기억들이 하나씩 둘씩 떠오르지 않는가?우리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수십에서 수천의 장소를 지나고, 수백가지 음식을 먹고, 온갖 사람을 만나 갖가지 사건을 경험했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항상 떠올리며 살아가지는 않지만, 이 중 많은 것들에 대한 기억이 뇌 속에 남아있다. 이 ..
출연 중인 방송 프로그램의 ‘막내작가’ ㄱ씨를 보면 흰 토끼가 떠오른다. 통통한 하얀 볼, 늘 미소를 머금은 입가에 도드라진 앞니 두 개. 그런데 그날은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를 찾을 수 없었다. 흡사 억울한 토끼 같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전해들은 사연은 이렇다. ㄱ씨는 하나의 집이었던 것을 여러 원룸으로 쪼갠 다가구주택에서 월세로 살았다. 단열·방음 등에 문제 있음은 당연했고, 기타 수리 가능한 문제도 건물 주인이 제때 고쳐주지 않아 불편했다. 그렇다고 전문가를 불러 수리한 뒤 영수증과 함께 비용을 청구하는 방식은 허락되지 않았다. 계약기간 동안 버틸 따름이었고, 기한이 만료되자 쾌재를 부르며 모든 짐과 함께 탈출했다.나온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 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