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되지 않은 언어가 사회를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 막말은 지위의 높고 낮음,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회 구석구석에서 터져 나온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2일 고양시 일산서구청에서 열린 신년회에서 일부 참가자가 고양시를 망쳤다고 여러 차례 항의하자 “동네 물이 많이 나빠졌네”라며 자질을 의심케 하는 발언을 했다. 또 15일에는 이문수 경기북부경찰청장이 탈모로 삭발한 직원에게 “왜 빡빡이로 밀었어? 혐오스럽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최근 기무사 문건으로 확인된 세월호 참사에 대한 해경 간부들의 ‘세월호는 목돈 벌 좋은 기회’라는 폭언과 차명진 전 자유한국당 의원의 “세월호 유가족들.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처먹고, 찜 쪄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먹고 진짜 ..
2005년 영화 을 보러간 관객은 소리도 영상도 없는 검은 스크린을 수분간 견딘 뒤에야 본편을 볼 수 있었다. 대통령 박정희의 마지막 하루를 그린 이 영화에 대해 아들 박지만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법원이 이를 일부 받아들여 특정 장면의 삭제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재판부가 문제 삼은 것은 영화의 프롤로그인 1979년 10월 부마항쟁 자료화면, 에필로그인 박정희의 장례식 자료화면이었다. 재판부는 을 열고 닫는 다큐멘터리 화면 때문에 관객이 영화 전체를 픽션이 아니라 논픽션으로 오인할 수 있다고 봤다. 백윤식이 김재규, 송재호가 박정희, 김윤아가 심수봉을 연기하는데도 “실제라는 인식을 심어줄 소지가 있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보수세력의 비난은 더욱 극심했다. 마치 이 신성모독이라도 저지..
어느 고등학교에서 ‘우리는 왜 공부를 하는가?’라는 질문에 손을 번쩍 든 학생의 답은 간단명료했다.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의 대답을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줄기차게 달리는 이유가 이토록 명백하다는 것을, 지구상에서 가장 복잡한 유전자를 가졌다는 인간의 목표가 이토록 단순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부끄럽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사실이니까. 대한민국에서는 더 나아가 서울 한복판에서 점심시간에 목에 사원증을 걸고 테이크아웃 커피 컵을 들고 다니는 걸 ‘꿈’이라고 한다. 용케 꿈을 이룬 이들은 행복할까? 10년간 대기업에서 충실하게 일한 이는 어느 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회사에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어린 시절 신기하게 여겼던 시계를 직접 만들어보기로 마음먹고, 주말마다 종로에 있는 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의 이론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위험사회란 위험이 사회의 중심 현상이 되는 사회를 말한다. 벡은 위험사회의 특징을 다섯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위험은 전염성이 강하다. 둘째, 위험은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 셋째, 과학의 발전에 비례해 위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다. 넷째, ‘안전’의 가치가 ‘평등’의 가치보다 중요해진다. 다섯째, 시민들의 불안이 증가함에 따라 안전은 물이나 전기처럼 공적으로 생산되는 소비재가 된다.위험사회론이 이전 시대보다 현대사회가 더 위험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벡이 전하려는 것은 우리 인류가 직면한 위험의 현재적 성격이 과거와 다르다는 점이다. 현대사회 이전의 오래된 위험은 자연재해와 전쟁 등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오늘날 인류가 마주한 새로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늘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다. “올해 사업이 잘되었다지?” “건강이 더 좋아졌다면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축하하는 덕담을 건네기도 한다. 말하는 데에 돈 드는 것 아니니 부담 없이 하게 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더욱 간편하게 전할 수 있다. 주는 것 없이 받으라 하고, 받은 것 없어도 기분 좋은 것이 덕담이다.사실 복은 사람이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축복(祝福)과 신(神)의 한자에 제단(祭壇)의 모양을 본뜬 기(示)가 공통으로 들어간 데에서 알 수 있듯이, 복은 본디 초자연적 존재와 연관된다. 한 해 내내 반복되어 온 일상의 고리를 잠시나마 끊고, 새해에는 사람의 의지만으로 잘 안되던 일들까지 술술 풀리기를 바라는 소망으로 건네는 말이 덕담..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비상벨이 전국을 덮고 있다. 지난 20일 우한에서 무증상으로 입국한 국내 4번째 확진자도 172명을 접촉했다는 보건당국 역학조사 결과가 28일 나왔다. 서울 강남·한강변·일산 등지의 병원·식당·카페에서 74명을 접촉한 3번째 확진자처럼 증상 발현 후 타인과 접촉한 환자가 또 확인된 것이다. 한국도 지역사회 2차 감염자가 나올 수 있는 중대 고비를 맞은 셈이다. 중국에선 하루 새 우한이 위치한 후베이성에서만 확진자 1000명이 늘고 전체 사망자도 100명을 돌파했다는 걱정스러운 속보가 이어지고 있다. 춘제(春節) 연휴 때 귀향했던 국내 중국인 유학생이나 중국동포의 귀국길도 보건당국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국인이 많이 찾는 면세점이나 관광지에선 ..
방탈출카페는 숨겨진 단서를 찾고 추리해 문제를 풀어, 문이 잠긴 방에서 탈출하는 게임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빠져나오면 성공이다. 시간 기록 깨는 재미도 쏠쏠하고, 함께 협력하며 스릴을 즐길 수 있어 친구, 연인, 가족단위로 많이 찾는다. 꽤 부담스러운 가격에도, 주말과 휴일엔 몇주 후까지 예약이 밀려 있을 정도다. 2015년 서울 홍대 앞에 국내 첫 업소가 생긴 후 지난해 말에는 전국에 약 400곳이 성업 중이라고 한다. 유럽과 북미,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유행하고 있는데, 이를 소재로 한 영화()까지 나올 만큼 인기를 몰고 있다.그런데 방탈출카페는 유사시엔 위험한 곳이 될 수도 있다. 인화성 물질이 가득하고, 구조는 미로처럼 복잡하다. 방이 닫힌 상태인 데다, 내부사진 유출 문제 때문에 휴대폰 소지도 ..
“어린 시절부터 이탈리아에 가는 꿈을 얼마나 많이 꾸었는지 모릅니다.” 도스토옙스키는 1861년 시인 폴론스키에게 유럽 여행의 포부를 털어놓았고, 1862년 6월7일부터 시작한 유럽 여행의 감상을 ‘유럽 인상기’라는 제목으로 한 잡지에 연재했다. 유럽을 동경했기에 그곳으로 갔는데, 정작 ‘유럽 인상기’의 최종 결론은 조국 러시아의 재발견으로 그를 이끌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세계지리부도를 펼치면 신났고, 지구본을 보면 알 수 없는 흥분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애거사 크리스티 추리소설 중 을 제일 좋아했고, 비행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재난 영화의 원조 격인 가 심야 텔레비전 명화극장에서 방영되면 졸음을 참아가면서도 꼭 챙겨보았고, 크루즈선에서 일어나는 일을 소재로 한 미국 드라마 역시 빼놓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