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절이 있다가 사라져 버린 곳을 폐사지나 절터라고 한다. 그 자리에 다시 절이 들어선 곳도 있고 그냥 빈터로 남아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현존하는 절터의 수는 나라 안에 어느 정도가 있는지조차 정확하게 알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중 경주의 황룡사지나 익산의 미륵사지처럼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어서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들도 있지만 국보나 보물 같은 석조유물 하나조차 품고 있지 못하여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곳들이 대다수다.나는 하필 그런 욕망이 스러진 곳들을 좋아했다. 지금은 그나마 번듯하게 손을 댄 곳들도 많지만 처음 그곳으로 드나들기 시작한 1987년 당시만 하더라도 그저 폐허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겨우 석조유물 곁으로 가는 길만 다듬고 매만져 출입이 가능했을 뿐 웃자란 덤불에 유물이 덮여 있기도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고향’이라는 이름으로 중동 지역의 현대미술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진행 중이다. 전시는 역사적 대변동이 어떻게 개인과 공동체에 트라우마를 남겼으며, 그 영향이 어떻게 현재까지 미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도록 기획해 놓았다. 일반적으로 복잡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중동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는 사람보다 ‘난민’ ‘테러’ 보도의 영향으로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 같은 부정적 감정을 보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가보지도 않은 국가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일까. 중동 지역 아티스트들의 작품은 우리가 얼마나 잘못된 상상에 지배되어 살아가고 있는지와, 그 지배적인 상상이 만연해 분열과 혐오로 번지게 된 과정을 성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표면적으로 보았..
“입학식이 따로 없다고요?” 내가 되물었더니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네. 초등학교 들어갈 때 입학식이 없어요.” 내가 재차 캐물었다. “입학식만 없는 거겠지요.” 돌아온 그의 답이 더 놀라웠다. “자기 생일날 학교에 갑니다.” 아이들마다 입학 날짜가 다 다르다는 것이다. 지난해 여름 뉴질랜드에 갔다가 현지 교민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여덟 살이 되던 그해 3월 초, 코흘리개 또래들과 함께 왼쪽 가슴에 흰 손수건을 매달고 줄 맞춰 서 있던 기억이 생생한 내게 뉴질랜드 어린이들의 ‘개별 입학’은 낯설다 못해 불편하기까지 했다. 교민분께 우리나라와 같은 입학식이 왜 없는 것이냐고 물었지만 그분도 거기까지는 잘 모른다고 말했다. 전체보다 개인을 우선하는 이쪽 문화가 녹아든 것이라고 넘겨짚..
하루는 글쓰기 수업에서 과제를 걷은 뒤 제목 옆에 적힌 아이들의 이름을 가려보았다. 그리고 과제를 마구 섞어버렸다. 그러자 글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기 어려워졌다. 이름 없는 여러 편의 글들을 칠판에 붙이고 아이들에게 제안했다. 각각 누가 쓴 것인지 맞혀보자고.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단번에 글의 주인을 찾아냈다. 같은 종이에 동일한 폰트와 형식으로 적혀있지만 모든 글이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어서다. 글쓰기 수업에 같이 다닌 몇 달 사이 서로가 쓰는 문장의 습관을 알아챈 것이다.이를테면 이런 첫 문장이 있다. “지금부터 내가 비겁했던 순간에 대해 써보겠다. 난 비겁했던 적이 많아서 다 기억나지는 않기 때문에 아주 잘 생각나는 것만 쓸 것이다.” 이것이 열두 살 주현이의 문장임을 아이들..
이 세상에 숨길 수 없는 세 가지는 기침, 사랑, 가난이라는 말이 있다. 그중에 가난은 주거형태로 드러나는가 보다.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함께 짓는 어느 소셜믹스 아파트에서 두 주택 사이에 장벽을 세우고 비상계단을 막아서 주민 갈등이 심해졌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LH 공사에서 지은 아파트에 살면 ‘엘사’, 휴먼시아 아파트에 살면 ‘휴거’, 빌라에 살면 ‘빌거지’라며 놀린다고 한다. 물질만능주의, 책임의 개인화 사회에서 돈에 따른 차별은 정당한 것이며 가난은 개인의 능력 부족이나 게으름 탓이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가난의 원인을 개인의 게으름으로 답한 학생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사람을 주거형태로 구분하고 그룹화하여 인지하는 것은 ‘우리’와 ‘그들’의 이분법에서 비롯한 집단주의적 사고를 나..
“손이 시려워 꽁, 발이 시려워 꽁”으로 시작하는 노랫말이 무척 정겨운 동요가 있다. 하지만 귀에 익은 노랫말과 달리 사람의 손과 발은 절대 ‘시려울’ 수가 없다. ‘시려워’ 꼴의 글자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다.‘시려워’라는 말을 쓰려면, 그 말의 기본형이 ‘시렵다’가 돼야 한다. 낱말의 기본형에 반드시 ‘ㅂ’ 받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가렵다’가 ‘가려워’가 되고, ‘반갑다’가 ‘반가워’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추위를 느낄 정도로 차다”를 뜻하는 말은 ‘시렵다’가 아니라 ‘시리다’다. 애인이 없는 사람들이 ‘옆구리가 시리다’라고 할 때 쓰는 그 ‘시리다’가 기본형이다. 이 ‘시리다’를 활용하면 ‘시려워’가 아니라 ‘시려’가 된다. “날콩이나 물고기 따위에서 나는 냄새”를 가리키는 말인 ..
쌍용자동차 해직자 26명의 2009~2013년을 담은 르포르타주, ‘그의 슬픔과 기쁨’은 2013년 6월7일 모터쇼 장면으로 시작한다. 모터쇼라니. 해직자들이 쌍용차의 신차발표회에 가서 부당해고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나보다 싶었는데 아니었다.“그 모터쇼의 이름은 H-20000이었다. ‘20000’은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 개수를 가리키고, ‘H’는 HEART 혹은 HOPE 혹은 사다리를 뜻한다고 들었다. 그 모터쇼에 나온 차는 달랑 한 대였다. 그 차를 만든 사람들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었다. 해고된 지 5년째에 접어들자 노동자들은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가 제일 하고 싶은 것은 뭐였지?’ ‘왜 우리는 매일 투쟁만 하고 있는 거지?’ ‘맞아, 우리 원래 자동차를 만들던 사람이었잖아.’ ”해직자들은 중..
1918년 봄 스페인에서 다수의 독감환자가 발생했다. 1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났던 노동자들이 귀국하면서 독감을 퍼뜨린 것이다.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를 포함해 많은 각료들도 감염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독성이 약했기 때문에 ‘스패니시 레이디’라고 불렸다. 당시 언론통제가 약했던 스페인에서 집중적으로 독감문제가 다뤄졌기 때문에 스페인 독감으로 세계에 이름이 알려졌다.스페인 독감은 8월이 지나 돌연변이를 일으키면서 강력해졌다. 숙녀가 괴물로 바뀐 것이다. 전염지역도 아프리카와 유럽뿐 아니라 인도, 중국, 한국에까지 확산됐다. 이른바 판데믹(대유행)으로 순식간에 세계를 휩쓸었다. 가장 타격을 입은 국가는 남부 유럽과 동남아시아였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1919년 1월 당시 매일신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