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에서 발생한 전주환의 끔찍한 살인사건으로 대한민국 국민은 스토킹 범죄에 몸서리치고 있다. 지난 12일 국회에서 ‘스토킹 범죄 피해자 실효성 있는 보호 방안은?’을 주제로 국회의원 23분이 공동으로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바쁜 국정감사 중에도 스토킹 범죄 피해자 보호를 위해 손발을 걷어붙인 국회 모습은 정말 감사했다. 여기에 토론자로 출석한 법무부 관계자는 반의사불벌조항 삭제, 온라인스토킹 처벌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정부입법안을 마련 중이라고 했다. 다행이다. 당장 시행해주길 바란다. 여기에 두어 가지만 더 보태고 싶다. 현 스토킹처벌법은 ‘스토킹 행위’와 ‘스토킹 범죄’를 구별하고 있다. ‘스토킹 행위’는 “상대방 의사에 반(反)해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위”로..
촉법소년 나이를 낮추자는 이야기가 많다. 여당 의원부터 재촉한다. 김병욱 의원은 2017년 7897건인 촉법소년 범죄 건수가 2021년 1만2502건으로 “4년 새 2배가 늘었다”며 위험을 강조한다. 늘어난 것은 58%인데, 2배 늘었다고 과장한다. 이런 과장도 이상하지만, 문제는 건수가 유독 적은 해와 그렇지 않은 해를 꼽아 보여주면서 일종의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거다. 같은 통계를 보면 2012년 촉법소년 범죄 접수 건수는 1만3339건이었다. 2021년에 1만2502건이었으니, 기준을 지난 10년으로 잡으면, 범죄는 완만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도 특정 연도를 꼽아 인용하며 범죄가 급증한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촉법소년에 대해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곳은 언론이다. 자극적인 기사가 넘쳐난다..
말놀이 하나 해볼까 한다. 말을 배울 때, 격하고 짜릿한 것부터 입에 올린다. 골목에서 잘 놀다가도 투닥투닥 싸우는 건 흔한 일이었다. 혼자 분풀이하면서 등신이란 단어를 동원하여 속살거리고 나면 욕이 주는 후련함이 있었다. ‘저런 등신 같은 놈’을 한때 손안의 장난감처럼 입안에 데리고 다녔던 것이다. 김동리의 소설 을 읽은 건 교과서에서였다. 경건함에 대한 동경은 있었지만 나라는 인간은 주인공과 너무나 결이 다르다는 건 그때 알아버렸다. 입시에 내몰렸던 기간, 이렇게 말씀하시는 선생님도 있었다. 연습장을 너희들 키만큼 등신같이 쓰라, 그러면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 그리 오래지 않은 전전전전 대통령 시절, 일본과의 마찰에서 그 어떤 대응을 두고 등신외교란 폄훼로 정치판이 시끄러웠다. 최근에는 ..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나는 그동안 밀양 송전탑, 삼척 석탄발전소 반대 집회 등에서 ‘외부세력’이란 말을 수없이 들어왔다. 그렇게 수도권에 산다는 이유로 ‘외부세력’이 되는 특권을 누렸던 내가 졸지에 내부자가 되었다. 내가 자리 잡은 마포구에 신규 소각장이 들어온다는 소식이다. 사실 나는 소각장 문제를 내 문제로 여긴 적이 없었다. 마포구청장, 서울시장 선거를 치를 때도 일회용 장갑에 반대해 주방 고무장갑을 끼고 투표했지만, 정작 선거에서 왜 쓰레기 문제가 이토록 쓰레기 취급을 받는지는 묻지 않았다. 현재 서울에 있는 소각장은 강남·노원·마포·양천구 4곳이다. 이들 소각장을 다 합쳐 하루 2200t의 생활폐기물을 소각하는데, 서울에서는 매일 생활폐기물 3200t이 쏟아진다. 나머지 1000t은 ..
단속과정서 인권 보호하겠다는 말은 참 허망하기 그지없다 불법에 대한 이런 단속이 내게는 인간이 인간에, 생명이 생명에게 저지르는 거대 범죄의 일부 같다 또 계절이 온 모양이다. 지난 5일 법무부는 두 달 동안 불법체류자 집중단속을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법무부, 경찰청,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해양경찰청 등이 모두 나서 범정부 차원에서 합동단속을 벌인다고 한다. 몇 줄 안 되는 보도자료라서 그런지 더욱 결기가 느껴진다. 흡사 범죄와의 전쟁 선언 같다. 하지만 단속 대상은 흉악범들이 아니라 비자기간을 넘긴 외국인들이다. 불법이라고는 했지만 사법적 처벌이 아니라 행정조치의 대상들이다. 불법을 단속하겠다는데 무슨 시빗거리가 되나 싶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법무부는 이번 조치가 “국익에 도움이 되는 유연한 외국인..
(41) 미아리 고개 길이 있다 떠나는 자들이 있어 길이 있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사인 오랑캐가 ‘다시 넘어왔다’는 되너미 고개 일제 강점기, 조선인 시체가 ‘공동묘지’로 향하던 길 한국전쟁에서 철사 줄로 두 손이 묶인 채로 인민군에게 끌려갔던 길 서울의 유일한 북쪽 외곽 길 떠난 자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한(恨) 많은 미아리고개 떠나는 자들은 발걸음이 무겁다 빈손으로 떠나는 자들을 가파르게 붙잡는 건 산 자들이 아니다 떠날 자들의 혼령이다 창자를 끊어내는 억울함에 이승을 맨발로 절며절며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단장(斷腸)의 미아리고개 님이 가신 이별 고개 넘어가면 그만인데 산 자들은 앞길이 궁금하다 서울에 도심 재개발로 쫓겨난 시각장애인 역술인들이 1966년부터 미아리고개에 하나, 둘 모여들어 산..
얼마 전 국가적 차원에서 살림살이의 두 축인 정부의 세제개편안과 2023년 예산안이 발표된 이후 부자 감세와 취약계층 복지예산 축소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졌다. 언론과 시민사회, 그리고 많은 전문가들이 이를 다루었지만 결국 이를 심의하고 최종 결정하는 것은 국회의 몫이다. 다시 한 번 국정감사 이후 국회의 역할에 기대를 걸고 맡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판단과 선택은 국민들이 해야 할 일이다. 물론 세제개편안과 내년도 예산안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삶을 안정시키기 위해 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안전망을 개혁하는 것이다. 이미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면서 광범위한 사각지대와 충분치 않은 보장 수준의 한계를 지닌 우리 사회안전망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현재 우리 사회안전망으로는 가속화되는 인구·가..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9월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차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 행사장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다. 뉴욕ㅣ연합뉴스 미국이 대외관계에서 스텝이 꼬이는 경우가 있는데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018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 배후로 지목된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며 비판했지만, 대통령이 된 뒤 ‘실용외교’ 차원에서 그를 만났다. 그런데 사우디가 최근 원유 감산을 늦춰달라는 미국의 요청을 거부하며 바이든이 곤혹스러워졌다. 바이든은 다시 대사우디 관계에서 인권을 앞세우는 ‘가치외교’를 할 가능성이 있다. ‘가치외교’가 국내에 본격 소개된 것은 2006년 11월 아소 다로 일본 외무상의 정책 연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