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지난달 도시 한복판에서 여성 역무원이 남자 동료에게 스토킹당하다 결국 무참히 살해당했다. 현 여성가족부 장관은 극구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이 범죄는 명백히 젠더 관련 폭력이며 여성혐오와 무관하지 않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정말 살아남은 여성들은 운이 좋았을 뿐인가. 현재까지도 우리 사회의 많은 여성들은 집 밖에서 불안에 떨며 조심조심 보통의 하루를 살아간다. 거리에서 일터에서 지하철에서 마음 졸인 여자들이 어디 한둘인가. 그럼 집 안은 안전한가. 그럴 리가! 일상에서 은밀하게 친밀하게 폭력이 자행되는 닫힌 공간, 집 그리고 여성의 공포. 그래서 수많은 문학 작품에서 집 안에 갇혀 미치거나 자살하는 여자들이 등장하는 것일까. 샬럿 브론테의 의 ‘다락방의 미친 여..
더불어민주당이 기초연금을 두고 윤석열 정부와 맞붙을 조짐이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이재명·심상정 후보 모두 기초연금 30만원을 40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약속했고, 정부가 ‘현행 70% 노인 40만원’을 국정과제로 확정하면서 대략 기초연금 윤곽이 잡힌 듯했다. 그런데 지난달 과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모든 노인’ 대상 기초연금 카드를 꺼내면서 전선이 생긴 것이다. 사실 지난 대선에서도 민주당은 투표 9일 전에 기초연금 40만원 공약을 내놓아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이미 발표한 대선 공약집에 없는 정책이었으나, 상대 후보들이 40만원을 공약집에 명시하자 급박하게 추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모든 노인’ 기초연금도 민주당의 연금정책 기조에서 보면 뜻밖의 제안이다. 민주당이 지금까지 말해온 기초연금 대..
나이를 지긋이 드신 분을 외국말로 ‘시니어’라 하는데, 내 마음 같아선 ‘신(god)이여’. 거의 하나님 천주님급. 최근 재밌는 책을 선물받았는데, . 11명의 시니어가 펼치는 삐뚤빼뚤 고민상담 들어주기. 노자 왈 맹자 왈 깨달은 도사들의 답변이 아니어서 반가웠다. ‘신이여’들은 식사 후에 믹스 커피를 즐기는 특징. ‘재미없고 무기력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 친구들하고 자주 만나라’, ‘행복하게 나이 들고 싶어요. 방법이 있을까요? 답: 행복하게 살려면 1. 건강하게 산다 2. 마음을 비운다. 3. 남과 잘 소통한다’, ‘침대에서 나오기 너무 힘들어요. 답: 그대로 자라’, ‘남자친구가 왜 안 생길까요? 답: 눈을 딱 뜨고 계속 찾아라’. 요즘 나를 만나는 사람마다 “젊어졌다, 어려졌다, 연애하..
여행감독으로서 ‘어른의 여행’ 코스를 짤 때 꼭 넣으려고 하는 아이템이 온천이다. 비유하자면 온천에 가는 일은 그들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가 거실을 가로질러 곧장 욕실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들의 삶을, 그들이 삶을 대하는 자세를, 그들이 느끼는 행복의 순간을 바로 관찰할 수 있다. 여행의 맛 중 하나가 관찰인데 온천은 최고의 관찰 소재다. 사람들은 행복을 위한 조건을 만들어내기 위해 일상을 살아가지만 여행에서는 하나하나의 행위가 바로 행복의 쟁취다. 현지인들이 느끼는 행복의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 것이 여행인데 온천욕은 가장 맛있는 반찬을 집는 일이다. 탕에 몸을 담그고 혹은 사우나에서 몸을 달구며 무한한 행복을 느끼는 현지인들 사이에 앉는 일은 최고의 행복 나눔 방식이다. 정상회담을 하는 국가수반 중에는 ..
윤석열 대통령이 부쩍 자주 ‘인구’를 거론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국무회의에서는 “인구문제는 미래에 다가올 이슈가 아니라 현재 이슈”라며 “모든 분야의 정책을 총동원하라”고 지시했다. 문제는 내놓는 정책마다 퇴행적이라는 점이다. #1. 여가부 폐지로 인구 늘린다? 정부가 지난 6일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하며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보건복지부 내 차관급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방점은 인구문제에 찍혔다. 합계출산율 0.75명(2분기)까지 내려온 한국의 ‘이례적인 저출생’ 현상은 세계적인 연구 주제다. 한국 출산율을 주제로 한 논문을 연달아 발표한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선임연구원 인터뷰가 최근 국내 언론(한국일보 9월29일)에 실렸다. 그는 “한국 저출생 위기의 근본 원인은..
“한마디로 나 자신의 인류학자가 될 것.”() 아니 에르노의 문장을 빌려 그녀의 문학을 소개하라면 이렇게 요약될 수 있을까. 감정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스스로를 임상 해부하듯 냉철하게 분석하는 치열한 글쓰기. 디디에 에리봉의 말을 빌리면 “나를 발명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나를 분리”해낸 귀한 결실이다. 그 문학적 자기 발명을 높이 산 한림원은 며칠 전 그녀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하는 이유로 ‘사적인 기억의 근원을 파헤치는 용기와 예리함’을 꼽았다. 임신중단이나 기혼 남성과의 사랑 등 실제 경험을 다룬 자전적 이야기라는 사실과 함께 자주 인용되는 이 문장도 에르노가 여성의 욕망을 여과없이 드러냈다는 이해를 덧대왔다. “이런 이야기를 숨김없이 털어놓는 것을 나는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단호..
과활동성 주의력 결핍장애(ADHD)는 산만함, 과잉행동, 충동성을 특징으로 하는 질환이다. 최근 모 TV프로그램을 통해 ADHD를 가진 아이들의 행동문제와 부모들의 고통, 학교 친구들과 교사들이 겪는 어려움이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좋은교사운동’이라는 단체가 지난해 12월에 교사 2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만나는 정서행동위기학생 중 가장 많은 위기학생 유형은 ADHD 증상(79.6%)이라고 한다. 필자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제공하는 보건의료빅데이터 개방시스템 자료를 살펴본 결과 지난해 ADHD환자 중 5~19세 소아청소년 환자는 7만1469명으로 2020년 6만299명 대비 18.5%가 증가했다. 2017년 4만9501명과 비교하면 44.4%가 증가한 것이다..
#“애들도 다 컸고 우리 부부 쓸 만큼만 벌면 되는데 밤에 뭐 하러 다녀요. 코로나 이후 식당도 늦게까지 영업을 안 해서 밥 먹을 데도 없다니까요,”(65세 개인택시 운전기사) 한 달 전쯤. 회사 앞에서 택시를 탔을 때다. “손님만 내려주고 나도 그만 들어가야겠다.” 기사가 혼잣말을 했다. 한창 손님 태우고 다닐 시간인데, “왜 벌써 들어가냐”고 물었다. 그는 돈은 좀 적게 벌더라도 건강하게 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난 콜 안 받아요. 길에서 손 흔드는 사람 무조건 태워요. 호출받아 봐야 귀찮기만 하고. 정부가 호출료 올려주겠다고 하던데 어차피 우리한테는 오지도 않아요. 손님들이 비싸다고 택시 안 타면 우리만 더 힘들어질 텐데….”(52세 법인택시 운전기사) 지난 주말, 종로에서 택시를 호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