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11월7일, ‘제국신문’에는 여학교 교육에 관한 흥미로운 논설이 실렸다. 사람은 모두 평등하기 때문에 조선의 계급 간의 차별, 남녀 차별이 없어져야 할 악습이라는 비판으로 시작하는 이 논설이 실제 주장하는 바는 여학생들의 입학 조건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1898년 가을에 일어났던 일들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1898년 가을은 북촌 벌열가의 부인들, 외국인, 귀화인, 기생, 평민, 과부 등 다양한 배경의 여성들이 모여 만든 찬양회라는 여성단체가 형성되어 정치, 교육, 문화 등 다방면에서 운동을 시작하던 시기였다. 찬양회는 , 즉 여성의 교육권, 정치권, 경제권을 명시한 ‘여학교 설시 통문’을 발표한 뒤 연명 상소를 올리는 등 관립 여학교 설립을 위해 적극적인 정치활..
어른은 공자가 늘 곱씹었던 화두였다. 살다 보면 자연스레 나이를 먹게 되어 도달하는 생물학적 어른이 아니라 ‘어른다운 어른’, 곧 사회적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어른다움에 대하여 줄곧 관심을 기울였다. 나름 알려진 “나이 서른에는 스스로 섰고 마흔엔 미혹되지 않았으며 쉰에는 천명을 알았다. 예순에는 들음의 평정을 얻었고 일흔에는 마음 가는 대로 행해도 법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언급 외에도, 공자는 “나이 마흔, 쉰이 되어서도 그 이름이 칭해지지 않는” 어른은 두려워할 만하지 못하다고 잘라 말했고, “장성해서는 남들에게서 일컬어지는 게 없고 늙어서는 죽지 않고 있으니 이는 도적일 뿐”이라며 친구 원양을 호되게 몰아붙이기도 했다. 들고 있던 지팡이로 원양의 정강이를 때리기까지 했다. 평생 임금은 ..
‘사일로’는 ‘곡식을 저장하는 구덩이를 뜻하는 그리스어인 시로스(siros)’에서 유래한 단어로 독립된 형태의 저장용 구조물을 의미한다. 하지만 오늘날 조직 경영에 있어 사일로는 서로 중요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거나 협업 자체를 꺼리는 현상으로 그 의미가 변모되어, 분업화와 수직적인 보고·성과체계가 도입되고 운영되는 과정에서 과도한 부서 간 경쟁, 조직 이기주의 등에 따라 발생하는 ‘원치 않는 부산물’로 이해되고 있다. 과거 이러한 사일로 현상이 단순 조직 내 소통을 저해하는 골칫거리 수준에 그쳤다면,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촉발된 디지털 대전환이라는 시대적 대격변의 흐름이 코로나19로 가속화되어 전 세계를 덮치고 있는 현시점, 특히 데이터 분야의 사일로 현상은 개인·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로 언..
“민주주의에서 정치인을 비판하는 것은 우리 자신들을 비판하는 것과 같다는 점을 기억하자. 우리의 수준이 곧 우리 정치인들의 수준이다.”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말이다. 내심 이 말에 동의할 사람들은 많겠지만, 동의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할 사람은 드물 게다. 매우 위험한 말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는 주장을 떠올려 보시기 바란다. 삼성 회장 이건희가 27년 전에 한 말이다. 이 발언이 당시 김영삼 정권을 화나게 만들어 삼성이 한동안 바짝 긴장하기도 했다는 말이 돌기도 했지만, 일반 시민들 중엔 동의하는 이들이 많았다. 아마 지금 물어봐도 동의하는 사람들이 다수가 아닐까 싶다. 일반 시민이나 언론인이나 지식인이 “정치는 4류”라고 말하는 건 전혀 위험하지 않다. 정치가..
2022년 3월10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승리 직후 “모두 하나가 되자”고 했다. 5월10일 대통령 취임사에선 “자유는 결코 승자독식이 아니다” 했고, 6일 뒤 국회 추경 시정연설에서는 “국정운영 중심은 의회”라며 거야와의 많은 대화를 약속했다. 모두 식언이 됐지만, 대통령이 ‘희망의 나라’와 ‘협치’를 입에 달고 산 봄이었다. 10월25일, 윤 대통령이 예산 시정연설을 하러 다시 찾은 가을 국회는 싸움터였다. 더불어민주당은 본회의장 밖에서, 정의당은 안에서 “이×× 사과하라”고 팻말을 들었다. 여당만 박수치는 휑한 연설에 이목이 쏠릴 리 만무했다. 파국이었다. ‘대장동 특검’은 국회에 넘기더라도, 대화 물꼬를 트기 위해서라도, 적어도 욕설엔 대통령이 야당과 국민에게 사과했어야 하지 않을까. 대..
지난해 영국에서 인도 독립 75주년을 앞두고 마하트마 간디를 기리는 5파운드 기념주화가 만들어졌다. 힌두교 명절 디왈리에 즈음해 공개된 이 동전에는 연꽃 그림과 ‘내 삶이 곧 메시지’라는 간디의 책 제목이 새겨졌다. 힌두교는 영국에서 1~2%에 불과한 소수종교이고, 인도계 이민자 역시 인구의 2~3%를 차지하는 소수인종이다. 기념주화 제조를 주도한 사람은 당시 재무장관이던 리시 수낵이다. 수낵은 25일 찰스 3세 국왕의 임명을 받아 57대 총리에 취임했다. 영국 의원내각제 301년 역사상 첫 비백인·비기독교도 총리다. 보수당 소속이지만, 진보 매체 가디언에서도 “다문화, 다종교 사회 영국의 이정표”라는 평가가 나왔다. 수낵의 뿌리가 있는 인도의 시민들은 물론 영국의 인도계 이민자들도 환호했다. 수낵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