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써놓은 글인데 어떡하나. ‘미디어비평’ 마감 날 아침에 일어나니 이태원 압사사고 사태로 세상 참담하다. 써둔 글의 취지가 비판적이라 표현이 뾰족해서 도저히 그대로 내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새로 써야 하는데, 아침에 정신없이 읽고 본 바를 언급할 수도, 안 할 수도 없어 곤혹스럽다. 독자께서는 다음 이어지는 문장들이 이런저런 고민 끝에 서둘러 마감한 꼴이라 그렇다고 양지해주시길 바란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뉴스란 말이냐. 내가 사실만으로 뉴스가 되는 건 아니라고 말할 때 돌아오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해야 할 사람은 정작 뉴스를 만들어 먹고사는 분들이라 해야겠는데, 표준 정의를 따르더라도 기자가 쓴 것이 곧 뉴스이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이렇게 답해야 소용없다. 현대 언론의 문제는 대체로 누가 ..
영국 정치가 수상하다. 지난 20일 리즈 트러스 총리가 취임 44일 만에 사임하고 25일 리시 수낵 신임 총리가 취임했다. 수낵 총리는 인도계 이주민 3세로 영국 역사상 최초의 비백인 출신 총리라는 점에서 주목받는 대상이 됐다. 트러스 전 총리도 영국 역사상 최초의 40대 여성 총리로서 30대 중반부터 12년에 걸쳐 환경장관, 재무차관, 교육장관, 국제통상장관, 법무장관, 외무장관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커다란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트러스 전 총리는 영국 역사상 최단기 총리에다 정책 실패로 인한 사임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2016년 브렉시트 문제로 물러난 캐머런 총리 이후 6년 동안 다섯 번째 총리 교체가 이어져 ‘총리 재임 기간이 양상추 유통기한보다 짧다’는 농담을 현실화한 인물로 거론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너를 데리고 갈 데가 결혼 말고는 없었을까 타오르는 불을 지붕 아래 가두어야 했을까 반복과 상투가 이끼처럼 자라는 사각의 상자 야생의 싱싱한 포효 날마다 자라는 빛나는 털을 다듬어 애완동물처럼 리본을 매달아야 했을까 침대 말고 아이 말고 내 사랑, 장미의 혀 관습이나 서류 말고 아찔한 절벽 흘러내리는 모래 모래 모래시계 미치게 짧아 어지러운 피와 살 무성한 야자수 하늘 향해 두 손 들고 서 있는 모래 모래 모래사막 독수리의 이글거리는 눈망울을 사랑하는 너를 문정희(1947~) 진학, 취업, 결혼 등 인생의 분기점이 있다. 진학이나 취업이 혼자 이뤄야 한다면, 결혼은 상대가 있어야 가능하다. 결혼은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과 사람의 결합이 아닌 집안과 집안, 문화와 문화의 만남이다. 확장된 관계와 이..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 이후 8년 만에 또다시 수많은 때 이른 죽음들을 목격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망자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59명, 146명, 151명. 이태원 참사 소식이 전해지면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먼저 떠올랐고, 그 뒤를 이어 유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세월호 참사, 대구지하철 참사, 산재 유가족들의 얼굴들. 대구지하철 참사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소식을 들으며 오래전 자신이 겪은 참사의 고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숨을 쉴 수가 없었다고 했다. 기이하게도 끔찍한 재난일수록 피해자들에 대한 악의적인 말들이 튀어나온다. 놀러갔다가 죽었다는 말이 무심코 던져지는 사회에서는 일하다 죽었다는 말도 무겁게 다뤄지지 않는다. 생존자는 살아 돌아왔다는 이유로 죄인이 되기도 하고, 구조 ..
수도권에서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시민들은 이제 ‘장차연’(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라는 단체를 모를 수 없다. 지하철 승강장과 차량 안에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시위 때문에’ 운행이 지연된다는 안내방송을 듣기 때문이다. 폭설, 화재, 폭우와 관련한 안내는 빼먹어도 이것만은 결방이 없다. 나에게는 이 방송을 들을 때마다 자동 재생되는 기억이 있다. 2000년대 중반, 사회와 건강 문제를 토론하는 의대 수업시간이었다. ‘장애인이동권연대’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를 시청한 후 한 학생이 질문했다. “근데 이 분들은 왜 꼭 버스를 타려고 할까요?” 매일 본인 승용차로 등교하는 이 학생은 저들의 선택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자가용이나 택시를 타면 되지, 왜 꼭 사람 많은 버스를 고집해서 저렇..
SNS라는 용어는 우리 사회에서 누구든 어디에서나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말 중 하나가 되었다. 요즘 들어서는 이 말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라고 부연 설명하는 방식으로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이 SNS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SNS라는 영어는 정작 영미권에서 통하지 않는다. SNS라고 말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다. 영미권에서는 우리가 말하고 있는 SNS 대신 ‘소셜미디어(social media)’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물론 영미권에서 ‘소셜네트워킹서비스(social networking service)’라고 풀어서 사용하면 그 의미가 어느 정도 통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사실 영미권에서 이 표현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특히 우리가 사용하는 SNS라..
사물화는 타인을 물건 취급하다가 결국엔 자신조차 상품으로 만든다 팔리지 않는 상품 되지 않으려면 대통령은 지금 돌아서야 한다 통치에서 상호공감의 정치로 “헌정사 관행이 무너졌다.” 대통령 말이다.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외면한 야당에 책임 묻기다. 하지만 더 큰 책임은 정치를 실종시킨 그 자신이다. 정치 불신으로 정치에 수갑을 채웠기 때문이다. ‘정치 없는 통치’, 곧 대통령의 시행령 통치와 검찰 통치가 나라를 어지럽힌다. 헌정사 관행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헌정질서 자체가 흔들린다. 정치는 상호 공감과 인정이다. 통치는 일방적 관찰과 감독이다. 무엇이 먼저일까? 사태를 합리적으로 파악하는 인지적 능력은 대통령에게 매우 중요하다. 대통령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공정한 관찰자의 위치를 벗어..
민생보단 정쟁으로 치달았던 국정감사가 끝나고 본격적인 예산심사 기간에 돌입했다. 국회는 지난 28일 내년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소위를 국민의힘 6명과 더불어민주당 9명 등 총 15명으로 구성했다. 그런데 비교섭단체는 제외하고 교섭단체인 거대 양당 의원들로만 소위를 채워 다양한 각도에서 꼼꼼하게 심사해야 할 예산을 두고서도 정쟁으로 치닫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윤석열 정부가 9월2일 국회에 제출한 내년 예산안은 639조원으로 올해(607조7000억원) 대비 5.2%가량 증가했다. 정부는 건전재정이라며 자랑스럽게 내놓았을지 몰라도 최근 6년간 최저 증가율이며, 민생과 관련한 예산들이 상당수 삭감되어 시민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건전재정은 지출 구조조정으로만 접근할 게 아니라 증세와 신세원 발굴을 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