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30일 새벽 6시, 주요국 통화 긴축과 영국발 금융 불안 등 좋지 않은 여건 속에 얼어붙어 있던 우리 국채시장에 낭보가 들려왔다. 세계국채지수(WGBI) 관찰대상국에 한국이 처음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었다. WGBI는 23개 주요 선진국 국채들로 구성된 세계 최대 채권지수로 추종자금 규모만 2조5000억달러로 추정된다. 이날 시장은 큰 폭의 금리 하락으로 관찰대상국 등재 소식을 반겼다. 관찰대상국 지정은 지수 산출 기관인 FTSE 러셀(Russell)이 보기에 향후 한국의 WGBI 편입 가능성이 높아 공식 편입 절차를 개시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종적인 WGBI 편입 여부는 제도 개선 성과와 글로벌 투자자의 평가를 바탕으로 이르면 내년 3월 또는 9월경 이루어질 전망이다. WGBI 편입은 국제..
우리 문 앞에서 서성인다고 여겨졌던 무시무시한 손님이 어느새 조용히 들어와 우리 안방을 차지하고 있다. 이 손님의 정체를 모르면 유령이고, 정체는 알지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면 위험이다. 자본주의를 철저하게 해부하고 비판한 마르크스는 이 손님을 공산주의라는 유령으로 묘사한다. 공산주의에 기반한 중국마저 국가 자본주의를 도입한 마당에 누구도 공산주의라는 유령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정작 우리가 두려워하는 이 손님은 바로 ‘자본주의의 위기’다. 자본주의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21세기의 시대적 문제로 불리는 극단적인 ‘사회 불평등’과 ‘기후 변화’는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두려움이 만연하고 있다. 잘못된 것은 분명한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모를 때 위..
트랜스젠더에 대해 쓴 지난 칼럼을 보고 누가 물었다. 한국에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젠더퀴어)가 적어도 10만명에서 20만명은 있을 것이라 썼더니, ‘그걸 네가 어떻게 아냐’고 한다. 맞다. 나도 잘 모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조사한 적이 없으니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외국의 조사 자료들이라고 아주 정확한 것은 아니겠지만 트랜스젠더 인구수를 추정하는 데 이용할 정도는 되겠다. 이런 외국 자료들, 그리고 내가 실제로 진료실에서 만나고 있는 전국 각지에서 내원한 트랜스젠더들을 만나며 추정한 인구수를 나는 말했을 뿐이다. 트랜스젠더들의 암 발병이 더 많을지 누가 물었다. 외국 자료를 보면 트랜스젠더들의 암 발병이 많은데, 한국에서도 그럴까 질문했다. 암 발병이 트랜스젠더에서 더 많다면, 트랜스젠더들의 건강 ..
“별과 달이 환하고 깨끗하며 은하수가 하늘에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사방에 사람 소리 하나 없고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날 뿐입니다.” 10월의 어느 멋진 밤을 연상하게 하는 고즈넉한 풍경이다. 중국 송나라 때 문장가 구양수가 한밤중에 책을 읽다가 갑자기 너무도 선명하게 들려오는 어떤 소리에 오싹해져서 아이에게 이게 무슨 소리인지 나가 보라고 했다. 그런데 아이가 나가서 본 풍경은 이처럼 인적 없는 맑고 푸른 가을 달밤이었고, 소리라고는 그저 나무 사이에 이는 바람 소리뿐이었다. 고요한 밤, 구양수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들었기에 이렇게 놀란 것일까? 구양수가 들었다고 느낀 소리는 분명히 휘몰아치는 비바람에 높이 솟구쳐 올랐다가 철썩 내려앉는 파도 소리였고, 쇠붙이가 이리저리 부딪치며 철커덩 쟁그랑거리는 소..
정치인이 거짓말에 능한 직업군이기는 하지만 경기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낙관적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근 CNN 인터뷰에서 경기침체에 대비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경기침체가 발생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발생한다면 매우 경미할 것”이라고 답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복합위기인 것은 맞다”면서도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강조한다. 지나친 불안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경제학자와 금융 전문가, 국제기구, 언론 등은 한결같이 경기침체를 가리킨다. 실제 일부 국가는 침체에 빠져 외부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거미줄처럼 연결된 글로벌 경제에서는 한 국가의 위기가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경제난..
언제부턴가 한국 TV에 베트남 축구가 생중계되고 있다. 국내 팬들이 붉은 유니폼의 베트남 대표팀을 한국 못잖게 열렬히 응원하기도 한다. 그가 있어 생겨난 일이다. 베트남 대표팀 사령탑, 박항서 감독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수석코치로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한 그는 한국 4강 신화의 숨은 주역이다. 폴란드와의 1차전에서 황선홍이 첫 골을 쏘고 그에게 달려가 얼싸안는 장면이 지금도 종종 나온다. 박 감독은 훗날 인터뷰에서 “골을 넣으면 벤치에 세리머니를 하라고 농담한 게 전부였다. 내게 안기라는 소리 안 했다”며 허허 웃었다. 베트남 축구는 박항서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나뉜다. 2017년 10월 박 감독 부임 이후 2018년 23세 이하 아시안컵 준우승, 아시안게임 4강, 스즈키컵 우승에 이어 ..
유튜브 채널 ‘승우아빠’의 편집자 구인공고문이 최근 SNS에서 소소한 화제가 됐다. 업계에서 보기 드문 고정급 보장에 상당한 액수가 특히 주목받았지만, 승우아빠의 공고문은 좀 더 특별했다. 급여 수준을 명확하게 밝혀 적었고, 인센티브 기준을 작업물의 조회수가 아니라 개수로 잡았다. 채널 성격에 따라 요구되는 직무능력과 작업조건, 지원서 심사에 걸리는 시간과 그 처리방법을 분명하게 밝혀 적었다. 편집 능력 테스트에 따른 테스트비도 지급한다. 지원자도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 계약방식이나 급여지급일까지 밝혀 적었다. 대부분 기업의 채용공고엔 없는 내용들이다. 기본적인 회사 소개도 없고, ‘내규에 따름’ 따위로 적어 급여 수준도 알 수 없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게 되는지 설명해주는 경우도 드물다. 각종 절차..
자본주의의 기원설화는 어떠할까. 영국 경제인류학자 제이슨 히켈은 조금은 거칠게 설명한다. 자본주의는 태생이 ‘식민주의적’이라고 말이다. 가치를 뽑아내고 그 대가를 온전히 지불하지 않으니 식민주의적인 셈이다. 히켈은 그 대표적 예로 ‘인클로저’를 든다. 농촌 공동체가 공동 관리하며 함께 사용했던 숲, 목초지, 강에 지배층이 울타리를 치고 사유화해버린 사건 말이다. 자본주의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보통 초기 자본 축적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카를 마르크스는 그것이 인클로저처럼 순수한 저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약탈과도 같은 야만적 축적 행위에 의한 것이라 지적했다. 그와 같은 약탈은 자본 축적 이외에 평민에게 ‘굶주림’을 선사하고, 그들이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값싼 임금노동의 굴레에 빠져들게 만든다. 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