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호수에 가보자 해서 산책하다 웰시코기 한 마리가 웃고 따라옴. 영국 웨일스산 귀염둥이 강아지 있잖은가. 오요요 해서 불러보니 다가와 안김. 고놈 참 사람 좋아하네. 내게 개냄새가 나서 그런가. 근데 주인이 안 보여. 데리고 그 자리서 쫌 놀았는데, 헐레벌떡 한 아가씨가 달려오니 개가 돌변하여 나를 향해 으르렁거림. 연기도 잘하데. 주인과 재회해서 천만다행. 주인 말고도 사람이라면 다 좋아하덩만. 우리집 개들도 빨간 헬맷을 쓴 집배원이나 중화요리 배달부 아저씨 빼고는 다 좋아하는 거 같아. 동물만 그런 게 아니고 사람도 사회성이 좋은 이들이 있다. 누구라도 잘 어울려. 타고난 성향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반려견은 어려서부터 사회성 교육을 잘해야 한다. 개통령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수십년 애견인에 나름 ..
검찰은 억울하겠지만 일반인들은 검찰이 승자 편이라고 여긴다. 만약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겼다면 검찰의 입장과 태도는 지금과 사뭇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검찰 수사의 표적이 된 이 대표도 위기지만, 검찰도 심각한 신뢰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부질없는 상상을 해보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같은 평행세계가 있다. 이곳에서는 지난 3월9일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를 0.73%포인트 차로 누르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됐다. 이미 김건희 여사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으로 검찰청 포토라인에서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폭로 같은 것은 애초 존재하지 않는다. 대장동 세력이 검찰의 회유에도 사실을 감추고 인내하며 여전히 자신들만의 의리를 ..
“지옥이란 경이(驚異)를 잃어버린 우리에게 익숙한 모든 것. 경이로움이 내 안에서 죽었을 때, 권력(욕망)이 태어났다.” 아일랜드 시인 브렌던 케널리가 한 이 말을 요즘 자주 생각한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 소위 3고(高) 시대를 맞아 도무지 재미있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 세상에서 그래도 나날의 삶에서 ‘재미’를 추구하고 사는 게 나 같은 보통 시민들이 바라는 소박한 염원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바라는 ‘사는 재미’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소소하고 사소한 것들이다. 친구와 시시껄렁한 대화를 나누고, 연인과 아름다운 추억을 쌓아가고, 가까운 벗들과 ‘불금’이면 우정의 술잔을 나누는 것 같은 사소한 행위들이다. 얼마 전 내가 사는 동네에서 시인 박준과 가수 김필의 공연 (양천문화회관)를 ‘직관’한 것..
나는 경부선 상행 기차를 타면 웃는다. 20년 전 처음 그 기차를 탔을 때 지은 웃음은 드디어 고향을 탈출한다는 승리의 의미였지만, 이제는 그냥 열차에 앉아 있는 승객들의 모습이 웃겨서 웃는다. 부산에서 출발해 대구를 지날 때까진 분위기가 느슨하다. ‘우리가 남이 아니’기 때문일까? 아무튼 동대구역까진 ‘서울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같은 출세지향적 설렘이 있다. 그러다 열차가 대전역에 도착할 즈음 사람들은 시계를 본다. 출발한 지 1시간40분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 대전이라니? 내가 생각보다 서울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음을 깨달으며 피로가 급격히 몰려온다. 충청도의 문이 열리고 말투가 전혀 다른 사람들이 빈자리를 모두 채운다. 객실이 만원이 되면 계절에 상관없이 열기가 차서 숨 쉬기가 어려워..
질문은 대화와 소통의 핵심적 요소이다. 물음표는 질문을 통해서 듣는 사람의 참여와 대화를 적극적으로 요청한다. 쌍방 간에 생성되는 질문과 답은 상호호환적으로 이어지면서 이들의 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질문과 답변을 통해 함께 바라보고 있는 문제상황을 명료화하고, 분석하며, 개선한다. 질문은 의문에서 나온다. ‘의문’이 한 개인이 갖는 의구심이라는 심리적 상태인데 반해서, ‘질문’은 그런 심리적 상태가 대화를 통해 소통의 장으로 진입하는 사회적 행위이며 적극적 행동이다. 또한 의문이 비판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질문은 곧 비판적 행동일 수 있다. 그래서 권위적 사회일수록 질문은 저항의 상징이 되고, 의문을 가지는 것은 도전이 된다. 질문은 제한되고, 미디어에 의해 조작되며, 답변은 이미 정해져 있다..
출판계에서 10월은 노벨상의 계절이었으나 이제는 트렌드서의 계절이라고 바꿔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김난도 교수의 은 9월 하순 예약판매를 시작하였고, 뒤를 이어 10월에만 10종 이상의 트렌드 도서가 줄을 이었는데, 지난해를 돌아보면 대략 30종 이상의 트렌드서가 연말까지 출간될 거라 짐작할 수 있으니, 이 시기 가장 뜨거운 키워드라는 데에 이견이 없겠다. 은 출간 후 요약본이 돌아다닐 정도로 관심도와 열독률이 높은데, 이런 대표작 외에는 어떤 트렌드서가 나오고 있을까. 큰 틀에서 마케팅, 시장, 소비를 중심에 두는 트렌드서와 최근 2, 3년 동안 크게 늘어난 세부 주제별 트렌드서로 나눌 수 있을 텐데, 이 전자라면, 등을 후자로 분류할 수 있겠다. 특히 후자의 세분화와 확장이 눈에 띄는데, 이쯤 되..
‘오트르망’(autrement·다르게)이란 연구자 모임이 있습니다. 대안연구공동체에서 10년 동안 미셸 푸코의 사상을 강의해온 철학자 심세광 선생이 역시 철학 연구자 전혜리 선생과 함께 만든 모임입니다. 푸코의 콜레주드프랑스 강의록을 번역하는 것을 비롯해 푸코와 루이 알튀세르, 질 들뢰즈 등을 중심으로 프랑스 현대 비판철학 전반을 연구해왔지요. 모임은 작지만 이들의 성과는 만만치 않습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오트르망’을 치면 이들이 번역한 책들이 주르르 뜹니다. 등등. 물론 등 각자의 이름으로 번역한 책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최근에는 피에르 다르도와 크리스티앙 라발이라는 학자가 쓴 도 번역하는 등 외연도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들과 짧게, 학문과 번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은..
1859년 찰스 다윈의 (On the Origin of Species)이 처음 세상 빛을 보았을 때, 누군가는 그 주장에 열렬히 옹호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은 그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 것을 넘어 무시하고 반박하고 때로는 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흔히 다윈의 진화론을 둘러싼 대립은 과학계와 종교계의 대립으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과학자들이라 해도 다윈이 찾아낸 방식에 모두 동조한 건 아니었다. 마이바트도 그중 하나였다. 한때 다윈의 지지자로 스스로를 칭했던 마이바트는 1871년에는 다윈의 책에서 단어 하나만 교묘하게 바꾼 책인 (On the Genesis of Species)를 통해 다윈의 진화론을 공격한다. 다윈 진화론의 골자는 생물체에 일어나는 다양한 변이들 중에는 생물체의 생존율과 번식률을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