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마거릿 대처 총리가 복지후퇴를 밀어붙이면서 거칠게 내세웠던 수사가 ‘대안은 없다(TINA: There is no alternative)’이다. 우리 연금개혁 논의에서도 ‘대안은 없다’라는 주장이 과거 그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마음을 잠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연금문제를 빨리 제거해야 할 시한폭탄에 비유하거나, 몇 년생부터는 국민연금을 받을 수 없다는 거칠고 엉뚱한 주장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령화로 인해 대안은 없다. 따라서 적정한 수준의 노후보장은 포기하라’가 쌓이고 쌓이면, 이것이 우리 사회 연금개혁 논의 틀을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매우 좁아진다. 국민연금 급여를 대폭 깎거나 보험료를 대폭 올리거나. 예를 들면 노인 인구수..
강대국에서 태어나면 당장 유복하고 누릴 것이 많겠지만, 그렇다고 약소국에서 태어난 이들이 받는 복이 더 적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기에 따라서는 특별한 복을 받는다. 약소국 사람들과 지도자들은 강대국 세상에서 생존하고 발전하기 위해 궁리하고 노력함으로써 국제정치의 본령을 더 잘 알게 되고 외부세계의 충격에 대처하면서 생존과 번영을 위한 전략적 능력을 더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질서는 기본적으로 강대국 질서이다. 이러한 질서 속에서 약소국의 생존전략의 기본 가치는 ‘자주성’이다. 내 땅과 나라, 역사에 대한 확고한 주인의식을 갖고, 자신과 후손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미래 비전과 목표를 명확히 하면서, 현재를 ‘미래를 품은’ 역동적인 현재로 재구성하여 현실의 난관을 극복하면서 미래의 꿈을 실현해 나가..
하늘이 처음 열린 날을 기리기 위해 단군은 강화도 마니산 정상에 제단을 쌓고 제를 올렸다. 사람이 보금자리를 틀 수 있도록 세상을 열어준 하늘에 감사의 뜻을 전하는 제사이자 축제다. 하늘과 사람이 어우러진 제사 터를 지키는 건 한 그루의 소사나무다. 기록이 없어서 누가 일부러 심어 키운 것인지, 지나는 새들이 씨앗을 물어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제단을 아름답고 풍성하게 꾸미기 위해 자리를 신중히 골라 심은 것처럼 참성단 돌축대 위에 우뚝 서 있는 소사나무 풍광은 볼수록 절묘하다. 주로 서해안과 남해안의 산기슭에 자생하는 소사나무는 강화도 곳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우리의 토종나무다. 흙 한 줌 없는 돌 틈에 뿌리 내리고 150년을 살아온 참성단 소사나무는 나무높이 4.8m, 뿌리 부근 둘레 3m..
언론에 글을 쓰다 보니 가끔 독자로부터 논평을 받는다. 최근 ‘여야의 기이한 복주기 경쟁’(8월23일자)을 쓴 뒤 충격적인 논평을 받았다. 이 글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야당복이 있더니 정권을 내주고 나자 윤석열 정부가 죽을 쑤고 있어 여당복이 있고, 민주당도 여당에 복주기 경쟁을 하고 있으니, 국민 입장에서는 여당복도, 야당복도 없다는 내용이었다. 한 후배 학자가 이를 읽고 보낸 답을 보고 망치로 머리를 두드려 맞은 기분이었다. 그 내용이 “우리는 여당복, 야당복만이 아니라 제3당복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어쩌면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여당복이 없는 것도, 야당복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들을 대체할 만한, 최소한 이들에게 위기의식을 느끼고 정신을 차리게 할 ‘제3당의 복’조차 없는 것인지..
디스토피아 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빽빽이 들어찬 높은 건물 사이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도시의 모습이다. 영화 가 내게 그런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는 이미 망가져 버린 지구의 전경을 비춘다. 망가진 기후로 인해 해가 들지 않는 도시에는 언제나 산성비가 내린다. 빗물과 도시 오물이 뒤섞여 흐르는 질척한 땅바닥. 도시 하층민은 그런 질척한 땅 위에서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산성비를 맞으며 살아간다. 이 글을 써내려가는 지금, 창밖에도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맑다가도 갑자기 내리는 비 때문에 신발과 바지가 젖은 채 들어온 게 여러 번, 통상의 날씨를 피해 비를 뿌리는 범인은 ‘기후위기’다. 1980년대의 상상력이 그린 망가진 기후 속 하층민이 질척한 땅바닥 위의 부랑자라면, 2022년에 마주하는 도시 ..
내가 만든 틀에 갇혀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건 너무 심한 것 같다. 이건 너무 유치해. 이렇게 하면 아무도 안 보겠지? 이렇게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나 스스로 만들어 놓은 수많은 틀 속에서 나는 나가지도 못하고 헤매고 있습니다. 이 틀을 깨뜨려야 더 나아갈 수 있지만, 내가 만든 이 틀은 점점 두꺼워지고 많아져 이제는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다시 아무것도 무서울 것 없었던 처음 그때로 돌아가 보고 싶은 날입니다. 연재 | 생각그림 - 경향신문 295건의 관련기사 연재기사 구독하기 도움말 연재기사를 구독하여 새로운 기사를 메일로 먼저 받아보세요.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검색 초기화 www.khan.co.kr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 교육 분야에서는 변화와 개혁을 위한 정치적 의지와 노력이 잘 보이지 않는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일 뿐 아니라 국민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분야이다. 그런데 현 정부의 교육 분야에 대한 정책적 소홀은 국가 미래를 걱정스럽게 만들고 있다. 첫째, 교육의 때를 놓치고 있다. 교육부 장관은 현재 지명되기는 하였으나 거의 4개월 넘게 공석이었고, 국가교육위원회는 지각 출범을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산적한 많은 교육 현안 추진이 미뤄지거나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올해 해결해야 할 현안들이 내년이나 그 후로 미뤄지고 있다. 교육정책은 그 특성상 한번 결정되면 장기적인 변화와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시기를 놓치면 그만큼 부작용이 크다. 봄에 파종을 못하면 가을에..
지난번 칼럼에 ‘수○자라는 용어를 쓰지 말자’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수○자라는 용어를 쓰지 말자. 용어가 개념을 고착화하고 확대재생산하기 때문이다. 둘째, 수학 교과 내용을 줄이고 쉬운 문제만 출제하는 것으로 학습 부진아와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치열한 입시 경쟁 속에서 수학을 교육하는 환경임을 명심하자. 셋째, 수학은 본질적으로 어려운 과목이다 등이다. 내 글 내용에 동감하고 응원하는 반응을 보여준 사람들이 대다수였지만, 동의하지 않거나 오해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의 글 내용 세 가지만 들면 다음과 같다. 1. 수학에서 학습 부진아가 많은 것은 수학이 원래 어려워 그런 것이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인가? 2. 수학은 어렵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학교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