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막아내야 하는 것은 여성가족부 폐지로 대표되는,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정책 후퇴입니다. 민주당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반대 입장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저지해야 합니다. 당대표가 직접 입장을 밝혀야 합니다.”(남은주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지난 15일 전국 195개 여성·시민·노동·사회단체 주최로 열린 ‘여성가족부 폐지안 규탄 전국 집중 집회’. 타깃은 여가부 폐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었지만, 더불어민주당도 화살을 비켜가진 못했다. 정부가 지난 6일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표한 뒤, 민주당 대응이 미지근한 탓이다. 민주당 지도부의 첫 ‘공식’ 입장이 나온 건 11일이다.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여가부 폐지에 대해 대선 때부터 일관되게 반대해왔다”고 말했다. ‘당론으로 정한 것이..
MBC를 공격하는 ‘국민의힘’의 행태가 도를 넘었다. 애초 국정감사 대상이 아니지만 관행적으로 MBC가 비공개 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여당은 자리를 박차고 나와 기자회견을 열고 MBC를 “민주당의 프로파간다를 위한 ‘찌라시 보급부대’ ”라고 비난했다. 혹여 국민의힘 열렬 지지자들은 환호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이 거친 표현의 칼날이 결국 여당을 향할 것이라고 한탄하지 않을까. 집권 이후 MBC사장 퇴진을 요구하던 여당은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 논란 이후 공세를 강화했다. 미디어세상 필자인 이준웅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음성전문가가 해독할 수도 있고, 대통령이 한 발언이 뭔지 스스로 밝히기만 해도 해소될 수 있는 사안인데 진실 규명은 뒤로한 채 MBC 탓만 하며 굿판을 벌이고 있다. 국정감사를 하던..
망사용료법을 주장하는 통신사들은 국내에 직접 접속하는 외국의 대형 콘텐츠제공자(CP)들에게만 돈을 받기 위한 것이므로 국내기업들과 개인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망사용료법 법조문에 외국CP들에게만 적용된다는 문구는 없다. 당연히 국내CP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애써 외면하지만 2016년부터 망사업자들 사이에서 시행되어온 발신자종량제 때문에 국내 인터넷접속료는 유럽의 8~10배, 미국의 5~7배 수준이 되었다. 이 상황에서 인터넷접속료를 세계 최초로 국내CP들의 법적 의무사항으로 만드니 결국 망사업자들의 엄청난 폭리를 보장해주는 법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망사업자들이 요구한 접속료를 냈어도 액수가 정당하지 않았으면 역시 처벌당할 수 있다. 실제로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와 홍콩·도쿄..
미아보호소에서 데려온 4년 만의 휴가라는 녀석이 이불을 당겨 덮으면 나도 잠시 마음을 놓고 창틀에 와 닿는 가을비 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도시 가득 기계들이 계속 돌아가고 어머니는 프라이팬에 돼지비계를 얹어 기름을 내고 이 순간에도 타인의 손이 가동됩니다 나는 휴가라는 녀석과 놀아주는 방법을 오래전에 잊어버려서 휴가를 깨우지 못한 채 누워 있고 녀석이 일어나면 돼지기름에 바짝 볶은 짜장 소스로 밥을 비벼 늦은 아침을 먹으려 합니다 비가 내리고 있어도 가루세제처럼 살갗이 까슬한 시간 동료의 손이 가동됩니다 신의 정밀한 기계처럼 지구가 오차 없이 돌아갑니다 지구의 얼굴 반쪽은 늘 검은 기름이 묻어 있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엔 손바닥 붉은 목장갑처럼 달이 떠 있습니다 한 손에 달을 낀 지구가 작업을 계속합니다 최..
오랜만에 도시 중학교 진로특강을 하면서 아이들한테 물었다. “요즘 어른들한테 배울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나요?”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대답을 했다. “영어요. 그리고 수학요.” “국어요.” “선생님, 영업도 배울 수 있어요.” “아니 영업이라니요?” “우리 아버지가 자동차 영업 사원인데요. 자동차 많이 팔아서 상도 받았어요.” 아이들은 그 말을 듣고 교실이 떠나도록 웃었다. “어른들한테 배울 수 있는 게 또 없을까요?” “집이나 땅을 사고팔아서 돈 버는 거요.” “주식 투기하다 망하는 거요.” “아무 데서나 막말하고 시치미 떼고 거짓말하는 거요.” “성적이 떨어지면 윽박지르고 겁주는 거요.” “사람 차별하고 무시하는 거요.” “선생님, 똑똑한 어른들한테 배울 게 딱 한 가지 있어요.” “한 가지라? 몹시..
근래 국내외에서 들리는 소식은 전환기의 위기가 본격적인 궤도에 들어섰음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지구 전체가 거대한 화약고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전쟁의 포성이 갈수록 커지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도는 곳이 있다. 백악관이 거둬들이기는 했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의 ‘아마겟돈 전쟁’ 발언은 핵전쟁이 공상의 영역이 아니라 실재하는 위험임을 상기시킨다. 크름대교 피폭 후 러시아가 키이우를 보복 공격했다는 한 줄 속보를 접하자 먼저 머리에 스친 것도 ‘설마 전술핵은…’ 하는 것이었다. 어느덧 핵공포가 나와 같은 평범한 생활인의 잠재의식에도 깃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불안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의 위기는 한반도 남쪽에 사는 사람의 삶에 곧장 체감된다. 기후 위기는 지난 8월 역대급 폭우로 서..
지난 10월5일, tvN 에 출연한 박은빈 배우가 ‘주 52시간 근무제’를 언급했다. 방송 현장의 노동권 주제도 아닌 박은빈 배우의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였다. 촬영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던 상황에서 박 배우의 영향력 덕분에 스케줄이 차질없이 진행되었다는 일화였는데, 주 52시간 준수는 이미 고정값이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것 자체가 뉴스였던 드라마 현장을 돌이켜보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5년 전, 촬영 중 스태프가 다쳤는데도 ‘한국에서는 지킬 것 다 지키면 아무것도 못 찍는다’고 당당하게 말하던 방송업계 고위관계자가 떠오른다. 하지만 업계의 오래된 관행과 ‘슈퍼갑’들의 여러 방해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뒤의 사람을 존중하기 위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방송 스태프의 근로자성..
국정감사와 함께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국정감사는 매년 국회의원들이 정부 부처와 기관들을 대상으로 제대로 국정을 수행하고 있는지 질문하는 자리다. 국감의 대화는 일상적이거나 직관적이지 않다. 일반 시민들이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 용어와 통계 자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바로 그곳에서 시정된 것들이 우리 일상을 쥐락펴락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러므로 시간 내서 국감 영상을 챙겨본다. 우위를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절박한 문제들이 테이블 위에 오른다. 국정감사 영상에서 내가 감지하는 것은 일종의 매너리즘이다. 날 선 어조로 공수를 주고받기는 하나 그들은 이런 자리에 익숙해보인다. 대부분 크게 흔들리지 않는 채로 길고 긴 문답을 이어간다. 그것을 이성과 평정심 혹은 프로 의식이라는 말로 일축할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