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소멸론이 빠르게 번져나가고 있다. 합계출산율, 즉 15세에서 49세까지 가임기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 지표가 1.0이 안 된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단순 인구 재생산조차 어렵다. 2003년 대통령 직속 ‘인구고령사회대책팀’을 설치하고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까지 만들어 온갖 출산장려 정책을 펼쳤다. 2015년에는 하다 하다 지역별 가임기 여성 분포도까지 만들었다. 이전부터 내오던 통계였지만 저출산 위기를 시각화해서 분명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란다. 지난 20여년 동안 저출산 극복을 위해 약 380조원의 재정을 투입했지만, 합계출산율은 계속 떨어져 2022년 현재 0.8 아래다. OECD 평균이 1.59인데 한국이 최하위이니, 사실상 전 세계에서 꼴찌다. 저출..
카카오 서버가 있는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해, 지난 15일부터 카카오톡은 물론 카카오의 대다수 서비스가 24시간 넘게 장애를 겪었고, 티스토리 등 일부 서비스는 만 이틀이 지나도록 정상화되지 못했다. 거의 전 국민이 이용하는 카카오의 서비스 장애가 발생하면서, 데이터센터도 정부의 통신 재난 방지 관리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데 2018년 11월 KT 아현 지사 지하 통신구 화재 사건 이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0년 5월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을 통해 일정 규모 이상의 서버·저장장치 등을 제공하는 데이터센터도 관리 대상에 포함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인터넷 기업들이 ‘지나친 규제’라고 반발했고, 이에 동조한 여야 의원들이 부가통신사업자에 대한 ‘이중 규제’라고 반대해 ..
노벨상의 계절이다. 올해도 상은 한국을 정확하게 비켜갔지만 문학상마저 몇몇 출판사들의 안목을 피해 간 건 아니었다. 출판계 몇 분과 북한산 가는 길에 문학상이 화제에 올랐다. 나는 참으로 같잖게도 저 상으로 연결되는 희미한 끈 하나를 가지고 있다. 못 꿀 꿈 없던 중학생 때 거창한 꿈 하나 있었으니, (풋풋풋 웃으시더라도 감당하겠습니다), 환갑이 지날 즈음에 노벨 문학상을 받거나 최소한 후보로 오르내리자는 것이었다. 그때 당시 인기 있던 월간지인 ‘학원’의 문학상에 입선하였던바, 이에 으쓱한 나머지 야무졌으나 허황된 개꿈으로 확장해 본 것이다. 범어사로 소풍 갔을 때 주제와 얼개도 대강 짜보았다. 기독 신앙의 운동권 학생이 절에 피신했다가 불교에 감화되어 개종하고 산문을 나선다는 이야기. 그건 어려운 일..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그렇지만 한국 역시 농업은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있는 영역이다. 해가 다르게 예상할 수 없는 극단적인 기상현상이 작물 재배를 어렵게 할 뿐 아니라 야외에서의 논밭 일도 힘들어지고 판매도 불안해진다. 날씨가 불리해질수록 농민들은 시설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고 정부가 권하는 스마트팜과 정밀 농업은 더욱 비용이 들기에 소농은 갈수록 설 곳이 없어진다. 유엔과 세계의 농업 연구기관들은 유기농과 소농이 온실가스 감축의 유력한 대안이라고 말하는데 한국의 상황은 반대다. 지난해에 가까운 선배들과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나는 불쑥 질문을 던졌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만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감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느냐고. 놀랍게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아마도 ..
정치 스스로 사라진 게 아니라 국민들이 정치를 버린 수준까지 이르렀다. 정치가 있다면 단 하나,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적대적 공생뿐이다. 윤 대통령 리스크가 이 대표를, 이 대표의 리스크가 윤 대통령을 살리는, 역설의 정치다. ‘윤석열 리스크’의 핵심은 고립이다. 윤 대통령에게 여당은 자기 세력이 아니다. 신화가 있는 정치인도, 가치의 리더도 아니다. 이런 처지라면 핵심세력을 확장하려는 노력이 상식적이다. 그마저도 어렵다면 관료를 조직화했던 역대 대통령의 경로라도 따라야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집권 6개월여 만에 권력기관 1급 관료 상당수를 인사조치했다. 정권 초 권력기관에 파견된 1급 관료들은 각 부처 인재들이다. 이들이 짐을 싸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윤 대통령은 윤핵관 틀..
(42) 남산 안중근 의사 동상 다가오는 10월26일에는 유난히 역사적 사건이 많았다. ‘10·26’ 하면, 흔히 1979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한 사건을 떠올리지만,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첫 촛불집회가 열린 날도 10월26일이었다고 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1597년 이순신 장군이 진도 울돌목에서 왜군에게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둔 명량해전이 벌어진 날도 양력으로 계산하면 10월26일이었다. 이들 외에 10월26일에 일어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사건이 있다. 바로 1909년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대한의 독립 주권을 침탈한 원흉이자 동양 평화의 교란자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일이다. 최근 김훈이 쓴 소설 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
2020년 기준 대한민국 노인 빈곤율은 40%가 넘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우리의 노인 빈곤율 통계가 산출된 이래 줄곧 1위를 고수했다. 우리가 처음 OECD에 가입한 1990년대 중반만 해도 기존 회원들은 대부분 선진국이었다. 이 때문에 각종 통계에서 우리는 좋은 것은 최하위권, 나쁜 것은 최상위권에 놓였다. 이후 결코 선진국이라 보기 어려운 나라들이 대거 가입한 덕에 이제는 많은 항목에서 우리의 순위가 상승했다. 예를 들면 2020년 우리의 1인당 GDP는 통계가 제공된 35개국 중 18위, 딱 중간이다. 근로 연령대 빈곤율은 통계가 제공된 37개국 중 14위이다. 하지만 노인 빈곤율만은 우리가 부동의 1위이다. 우리의 노인 빈곤율이 매우 높은 까닭은 자명하다. 공적연금이 취약하기 때문이..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아동학대 벌어진 선감학원 수용 피해자인 박차복씨가 18일 경기 부천시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 중 자신의 선감 학원 당시 원아대장을 살펴보고 있다. 권도현 기자 국가 권력이 단속·근절·일제소탕 대상으로 삼은 ‘부랑아(浮浪兒)’는 부모나 보호자 곁을 떠난 떠돌이 아이들을 뜻했다. 하지만 집도, 부모도 있고 떠돌이도 아닌 아이들이 마구잡이로 끌려갔다. 누님 댁에 가려고 서울에 왔다가 서울역에서, 할머니와 시장을 보다가 손을 놓치고 길을 잃어서, 장난감 총을 만들려고 길에서 나무젓가락을 줍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가난해서 옷차림이 허름한 죄밖에 없었다. 그렇게 수용소에 끌려간 아이들은 불법 감금 상태에서 강제노역과 가혹행위에 시달렸다. 추위와 허기 속에 낮에는 고되게 일하고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