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두고 후회하는 발언이 있다. 대학 고학년 때 처음으로 본인상 부고를 받았다. 얼굴도 본 적 없는 학과 후배였다. ‘본인상’이라는 단어가 생소해 주변에 물었다. “이거, 그 말 맞지?” 한 질문에 여러 답이 따라왔다. 그 친구는 군에 복무 중이었다고 했다. 평소 내성적인 성격으로, 휴가를 나왔으나 결국 다시 군으로 돌아가지 않을 선택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며칠 뒤 학과 밖의 누군가가 이에 대해 물었다. 나도 모르게 내뱉은 문장은 “원래 성격이 좀 그랬대. 적응을 못했다나 봐”라는 말이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내 발언을 지적해 준 친구에게 아직도 감사한다. 억압적인 군 조직 문화는 개선되어야 마땅하다. 사건을 설명하는 말로 가장 먼저 피해자의 ‘내성적인 성격’을 들어선 안 됐다. 설사 그런 성격을 ..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 점점 더 빠져들 것 같습니다. 가운데 저 깊고 어두운 곳은 어디까지 이어져 있을까요? 무엇이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가 폭발할 것 같기도 합니다. 원래는 노란색 예쁜 꽃을 그리려 했는데, 그리다 보니 점점 더 이상하게 변해 버렸습니다. 멍하니 그림을 보며 다시 꽃으로 그려야 할지, 우주의 중심까지 파고들어야 할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뭐든 계획한 대로 잘 풀리지 않고, 이렇게 새로운 변수 앞에서 또 헤매고 있습니다. 연재 | 생각그림 - 경향신문 298건의 관련기사 연재기사 구독하기 도움말 연재기사를 구독하여 새로운 기사를 메일로 먼저 받아보세요.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검색 초기화 www.khan.co.kr
제빵업계 대표 기업인 SPC그룹의 SPL 평택공장에서 샌드위치 소스 배합기계에 노동자가 빨려 들어가 사망한 것은 지난 15일 새벽 6시20분경이었다. 야간 근무를 하면서 1인 노동을 하다가 기계에 빨려 들어갔다. 회사는 그 사건 다음날에도 사고가 난 기계를 흰 천으로 덮어놓고 동료 노동자가 죽는 걸 목격한 이들에게 작업을 하게 했다. 지적을 받은 뒤에야 회사는 작업을 중단하고, 노동자들에게 유급휴가를 주었다. 그리고 영국 런던에 사업 진출을 했다는 보도자료를 내보냈다. 또 사망자의 장례식장 빈소에 장례 답례품으로 크림빵 두 상자를 보냈다. 사고 6일이 지나서야 허영인 그룹 회장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했다. 요지는 3년 동안 1000억원을 들여 안전 강화 등을 하겠다는 재발방지 대책 약속이었다. 분노한..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교육을 통해 선진국으로 일어섰다고 많은 이들이 말한다. 공교육은 콩나물교실 시절엔 후진국에서 벗어나기 위한 국가 정책에 부응하는 의무 성격이 컸다. 그러나 이제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된 지금은 교육을 개인 성장을 이루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권리로 바라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학생 수 감소를 이유로 유·초·중등 교육에 쓰이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떼어내 대학과 평생교육 예산으로 써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학생 수에 연동해 교육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것은 기획재정부 논리였으나 작금에는 교육부마저 기재부 논리에 포섭되어 모두의 걱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동안 유·초·중·고 교육을 위해 내국세의 일정 부분을 확보해 주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는 교육예산의 보..
단풍이 늦어진다는 것은 나무의 휴면 시작 시기가 늦어진다는 것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무도 수면이 부족하면 다음해 가뭄·폭염·한파에 더욱 취약해질 수 있다 그래서 가을이 늦어지고 봄이 빨리 찾아온다는 건 나무가 잠에 늦게 들고 빨리 일어나는 것이다 나무 수면시간이 준 것은 가을의 기후위기 신호다 그 수면시간 안 돌려주면 찬란한 오색단풍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올해 초 동해안에서 발생한 산불은 한반도를 삼킬 것처럼 기세를 떨쳤다. 그리고 여름이 오자 서울 시내 한복판에 사람의 목숨을 위협할 만큼의 폭우가 내렸다. 봄을 지나 여름까지 기후위기를 몸소 체험한 한 해가 어느덧 중반을 지나 가을이 찾아왔다. 며칠간 이어졌던 반짝 추위도 지나가고 따뜻한 햇살과 적당히 시원한 바람에 오랜만에 날씨가 주는 행복감을 맛..
한국갤럽은 격주로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을 발표한다. 세부 항목에서는 긍정 평가와 부정 평가 이유를 묻는다. 흥미로운 점은 ‘민생 살피지 않음/무능/잘못’의 부정 평가 합계가 3배 가까이 늘어났다. 6월 2주차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민생 살피지 않음/무능/잘못’의 부정 평가 합계가 10%였다. 10월 3주차 조사에서는 28%로 늘어났다. 즉 윤석열 정부를 ‘경제에 무능한’ 보수 정부라고 생각하는 국민 비율이 약 3배 늘어났다. 윤석열 정부는 5월10일 임기를 시작했다. 아직 6개월이 되지 않았다. 5개월여간 무슨 일이 있었기에, 국민은 윤석열 정부를 ‘경제에 무능한’ 보수 정부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지난 5개월간, 기억나는 것들을 복기해보자. 첫째,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둘러싼 부실 대응이다..
우리는 바로 이웃과 싸우고 불신하면서도 일상생활에 파묻혀 짐짓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지내지만, 상대방이 계속 화를 가라앉히지 않고 있어서 언제 또 나에게 해코지를 할지 몰라 걱정하면서 지내는 경우가 있다. 상황을 방치해 두면 시간이 흐를수록 관계가 악화되기 십상이고, 이웃과 접촉과 대화가 끊어져 있어서 상대방이 어떤 심리와 이유로 내게 언제 어떤 식으로 어떤 위협을 가할지 알 수가 없다. 요새 남북관계를 위의 경우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의 강화와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위협이 고통스럽고 화가 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군사적 대결, 그것도 핵전쟁 위협을 고조시키는 정책 일변도는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위기 상황의 지속적인 방치도 답이 아님을 안다. 그렇다면, 무엇..
동서고금 꽃을 좋아하는 이는 수없이 많다. 그 이유와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오감을 동원해 색깔이나 모습, 또는 향기를 품평하고, 살아가는 방식을 사람에 비유하며 꽃을 탐닉한다. 한겨울에도 꽃을 찾아 먼 길을 떠나거나 꽃과 호형호제하기도 한다. 그런데 꽃의 자태뿐 아니라 그림자마저도 완상하며 찬탄한 이가 있었으니,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다산 정약용이다. 다산을 흔히 유학자, 실학자로 표현하지만, 그는 문·사·철을 두루 갖추고 법학, 공학, 지리학, 농학, 심지어 의학까지, 그의 시선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꽃에 관해서도 관심이 많아 관련 글이 많다. 특히 국화에 각별한 애정을 가졌다. 그는 “국화는 다양한 품종이 많으므로 48종은 있어야 제법 구색을 갖추었다고 할 만하다”라고 하였다. 꽃에 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