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안타까운 부고가 연이어 날아들었다. 대표적 제빵회사의 공장에서 근로자가 작업 중에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했다. 빵 만드는 곳에서 일하다가 참변을 당할 수 있으리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운용하지 않고 영리만을 추구하는 비인간적 기업경영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한편 모범적 탈북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던 여성이 오래전에 고독사한 채 발견되었다. 아직 정확한 사인규명이 필요하지만 목숨을 걸었던 탈북이 이런 죽음을 예견하고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터이다. 만일 송파나 수원의 세 모녀 사례와 같이 생활고에 따른 죽음이라면 그동안 생사의 사각지대에 내몰린 동료시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논의들이 얼마나 허망한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 것이다. 성공적..
식구들 모이는 날은 콩이나 보리를 넣어 잡곡밥을 주로 하지만 이맘때는 ‘쌀밥주간’이다. 햅쌀밥에 명란을 얹어 먹는 건 나의 호사, 햄구이 한 조각 얹는 것은 아이들의 호사지만 햅쌀의 차진 밥맛에 바치는 헌사로 잠시나마 세대 통일을 이룬다. 수확철을 맞아 자못 다복한 식사 풍경이 연출되었으나 우리 쌀의 처지는 몰릴 대로 몰렸다. 여느 해와 달리 ‘쌀’ 하나로 모든 정치인들과 대통령까지 한마디씩 보태는 중이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는 국민적 관심도 높은 편이 아닌 데다 농어촌에 정치적 기반을 둔 여야 의원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리곤 해서, 대체로 순둥순둥했다. 그런데 국정감사에서는 쌀값을 놓고 여야가 상임위원장의 의사봉을 낚아채려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더불어민주당이 단독 상정해서다. 초과..
자고나면 갓 핀 꽃송이가 감쪽같이 없어지더니 밤새 금잔화 꽃숭어리만 뚝 따먹고 가더니 이 눔이 좀 모자란 놈인가, 시 쓰는 놈 혹시 아닐랑가 서리태 콩잎보다 향기로운 꽃을 좋아하다니 이 눔 낯짝 좀 보자 해도 비 온 뒤 발자국만 남기더니 며칠 집 비운 새, 앞집 어르신이 덫 놓고 널빤지에 친절하게도 써놓은 ‘고랭이 조심’에도 아랑곳없이 밤마다 코밑까지 다녀가더니 주야 맞교대 서로 얼굴 볼 일 없더니 어느 아침 꽃 우북한 데서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꽃향기에 취해 잠이 들었나 놀란 이 꽃도둑 후다닥 논틀밭틀로 뛰어가는데 아 참, 도둑의 눈이 그렇게 맑다니 - 시 ‘꽃도둑의 눈’, 김해자, 시집 중에서 갈색으로 물들어가는 들깨를 베고 있는데, 윗밭 언니가 다리를 절룩거리며 올라오다, “그래 댁의 콩은 괜찮수?..
전쟁의 광기는 세계 경제를 요동치게 하고 문화까지 말살한다. 문화만이 이런 광기를 치유한다는 점에서 이율배반적이다. 히틀러의 전쟁 광기에서 어떻게 벗어날까를 묻는 아인슈타인의 편지에 프로이트는 격조 있는 문화 발전만이 파괴본능을 치유하고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취지로 답장을 썼는데, 그 답은 여전히 유효하다. 얼마 전 푸틴의 영토 확장 야욕의 상징인 크름대교가 폭파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승리를 장담하던 러시아는 전쟁물자 보급통로 단절로 어려움을 겪었다. 눈에 보이는 다리보다 눈에 안 보이는 문화라는 다리 단절의 후유증은 두고두고 치명적이다.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과 6·25전쟁으로 남북이 분단된 데다 문화의 다리마저 사실상 절단되었다. 여기서 문화는 당연히 한자와 서(書)라는 언어와 예술이다. 그 ..
(43) 장충단비 1971년, 2021년 장충단공원 비석.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배호의 노래 ‘안개 낀 장충단공원’으로 잘 알려진 장충단(奬忠壇)은 ‘충성을 장려하는 제단’이란 뜻이다. 고종 32년(1895년)에 일어난 명성황후 시해사건 당시 순국한 신하들의 영령을 기리기 위해 광무 4년(1900년)에 고종 황제의 명으로 지어졌다. 장충단에는 본래 제단과 사전(祀殿), 부속건물 등이 있었는데, 한국전쟁 때 전부 소실되고 지금은 ‘장충단’이라고 새긴 비석만 남아 있다. 사진에 선명한 장충단이라는 글씨는 순종이 황태자 시절에 쓴 것이라 한다. 이 장충단을 장충단공원으로 만든 것은 일제다. 일제는 1919년 이곳을 공원으로 지정하여 벚꽃을 심고 연못, 놀이터 등을 만들었으며 비석도 뽑아버렸다. 일본의 메이지 유..
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이후 중국발 쇼크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이처럼 강력한 시진핑 집권체제가 성립할 줄은 어느 누구도 예측 못했을 것 같다. 중국 핵심 지도부는 리창, 차이치, 왕후닝과 같이 시진핑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을 기준으로 채워졌다. 전문가들은 권력을 강화한 시진핑이 향후 보다 공세적인 대외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미국의 압박에 결코 굴복하지 않고 중국만의 방식으로 발전을 추진하겠다는 언명이나, 군사력의 지속적인 강화, 대만에 대해 비평화적 방식의 통일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주장 등은 이러한 예측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여전히 중용된 시진핑의 책사 왕후닝의 이상이 원(元)나라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한 영감을 안겨주고 있다. 그러나 20차 당 대회의 보고서와 ..
바야흐로 산에는 단풍, 산밑에는 결혼이다. 직원이 좀 쭈뼛거리는 눈치더니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이런 경사스러운 문건은 두 손으로 받아야 하는 게 옳은데 마침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쑥스러운 듯 돌아서는 10월의 신부께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어떤 모임에서 총무 역할을 하던 후배가 흐뭇한 소식을 보내왔다. 마흔이 다 되도록 짝을 찾지 못해 여러 회원들이 를 결성할 정도였다. 하지만 술꾼들이란 술자리의 말을 그냥 술잔 옆에 흘리고 나오기 십상이다. 후배는 ‘총장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마련한 청첩장을 띄운 것이다. 이라고 적혀 있었다. 비록 예식장에는 참석하지 못하지만 예식 준비에 항상 함께했을 양친을 향한 신랑의 마음 씀씀이가 퍽 대견하고 인상적이었다. 30여년..
월 9유로, 한화 1만2500원이면 기차와 버스 자유 이용. 지난 6~8월 3개월 동안 독일 정부가 시행한 근거리 대중교통 할인 정책이다. 물가와 에너지 가격이 치솟자 시민들의 부담을 덜고 탄소배출도 줄이려는 의도였다. 정책의 결과는 놀랍다. 무려 5200만여명이 9유로 티켓을 샀다. 이 나라 성인 모두 한 차례씩 구매한 셈이다. 티켓을 이용한 사람 중 20%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았던 사람들이고, 다른 27%는 버스나 전철을 한 달에 한두 번 타는 게 전부였다. 이용객 절반이 자가용을 놔두고 대중교통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독일 통계청은 이 정책 첫 달인 6월 철도 운송 이동량이 코로나19 이전 같은 시기보다 평균 42% 늘었다고 밝혔다. 반면 같은 시기 중거리 도로 교통량은 6% 줄었다. 덕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