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를 상징하는 구호 중 하나는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이다. 이 말은 용감했지만, 저잣거리에 넘쳐나는 남성문화의 일부이자 30년이 넘은 신자유주의 통치 패러다임일 뿐이다. 물론 ‘구조도 구조적 문제도 없다’는 비현실이다. 우주에서 혼자 사는 것도 증류수 같은 현실도 불가능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러한 사고방식 자체가 사회 구조적 문제다. 구조와 구조주의는 다르다. 구조는 사회의 물리적, 정치경제적, 심리적 관계들을 의미하고 이런 상황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운 개인은 없다. 혼자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있는 개인은 사후에도 성립되지 않는다. 기억되기 때문이다. 반면, 문제의 원인을 개인 몸 외부에서 찾는 사고가 구조주의이다. 성별이든 계급이든 구조적이지 않은 문제는 없지만 구조에 대한 개인의 ..
“집으로 돌아온 이후, 도저히 뉴스를 볼 수가 없어요.” 현장에서 정신없이 심폐소생을 하고 돌아온 20대 여성은 아직도 재난 한복판에서의 자신의 경험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멀리서 복잡한 현장에 접근조차 못했던 응급구조원의 목소리가 쟁쟁했다. “더 세게 하셔야 해요!” 그 여성은 마치 자신의 부실한 심폐소생술로 인해 결국 희생자의 죽음을 초래한 것은 아닌지 자신을 탓하기 시작했다. 미디어를 통해 당시 장면을 보지 못할 뿐 아니라, 대중이 모인 행사장에 다시는 못 갈 것 같은 두려움에 빠진다고 했다. 비극적인 사고의 현장에서 도움을 주려고 했던 이들이 겪는 이러한 정서적이고 인지적인 어려움을 ‘대리외상’(vicarious trauma)이라고 부른다. 여러 전문가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공간에 재난 ..
세상은 온통 이태원 참사로 슬픔에 잠겨 있지만, 국방부와 군은 열흘 전 일로 침잠해 있다.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의 구속이 남긴 충격파가 작지 않아서다. 서 전 장관의 구속이 왜 군을 충격에 빠뜨렸는지, 몇개의 장면을 통해 되짚어보자.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되어가던 지난 7월7일, 합동참모본부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대응 과정에서 군이 군사정보통합처리체계(MIMS·밈스)의 첩보를 삭제했다는 KBS의 보도를 반박했다. 불법 삭제가 아니라 불필요한 첩보의 열람을 막기 위해 배포선을 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군의 이런 주장은 결국 무시됐다. 정부는 국가정보원과 검찰, 감사원을 총동원해 수사한 끝에 지난달 22일 서 전 장관과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을 구속했다. ‘윤석열 정부의 군’의 ..
비상 경제 시국이다. 미 달러당 원화 가격이 지난 9월22일을 기점으로 1400원대를 찍은 후 ‘강달러’는 계속되고 있다. 11월 현재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3.00%다. 이 또한, 미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 속도에 따라 환율과 금리는 요동칠 것이다.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5.6%)을 감안할 때, 전문가들은 이 정도의 상승폭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더해 레고랜드 사태로 경색된 채권시장은 기업의 자금줄을 조이고 있다. 그야말로 기업은 ‘돈맥경화’ 위기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올해 8월 우리나라 경상수지는 30억5000만달러 적자를 나타냈다. 또한 원·달러 환율 방어를 위해 보유 달러를 매도한 결과 9월 말 외화보유액은 한 달 전보다 196억6000만달러 감소했다고 밝혔다. 글로벌..
어떻게든 다른 주제를 잡아 보려 했다. 수천 년 쌓인 고전에는 지혜로운 말, 마음 비추는 글이 무한정 있으니, 마감 시간이 닥치면 뭐라도 잡아서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뉴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며 며칠째 눈과 귀를 온통 메우고 있는 저 참혹한 시공간의 이야기들에 나까지 무언가 더 얹을 만한 이유도, 자신도 없었다. 이 짤막한 글만이라도 그 일과는 전혀 무관한 내용으로 채우고 싶었다. 그게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이 칼럼을 백지로 남겨 둘 수만 있으면 좋으련만. 결국 그렇게 회피하고 싶었던 그 슬픔으로 메울 수밖에 없음을 다시 깨닫는다. 어린 자식 넷을 연달아 잃은 서른 살의 아버지 장유의 애도시를 가져다가, 도무지 쓸 수 없는 글을 힘겹게 채운다. “하늘 아래 이런 일이 ..
소수인종 배려입학 제도(어퍼머티브 액션) 위헌소송 심리가 시작된 3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의 연방대법원 밖에서 제도 유지를 요구하는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1960년대 미국 민권운동의 성과 중 하나가 사회경제적으로 불이익을 받아온 소수계를 우대하는 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의 도입이다. 대표적인 것이 대학 교육의 다양성을 위해 인종을 입학을 결정할 요소 중 하나로 인정하는 소수인종 배려 입학제다. 덕분에 흑인과 원주민, 라틴계와 아시아계 학생들은 명문 대학 입학 때 혜택을 받아왔다. 미국을 지탱하는 유산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백인들에 대한 역차별 논란을 부르면서 미 사법계의 대표적인 논쟁거리가 된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이 정책에 대한 미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세 차례 있었다. 첫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