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자는 얘기는 이제 하기가 싫다. 출판사를 운영하고 책을 팔아서 먹고사는 입장이지만, 듣기 좋은 이야기도 한두 번이지 계몽적인 어조로 책 읽기의 미덕을 자꾸 설파해봐야 꼰대의 잔소리로 들릴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요는, 책 안 읽는 시민에게 문제가 있다기보다 책 읽기 어려운 환경, 책을 읽지 않아도 되는 사회적 기풍이 더 문제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초점을 시민 아닌 당국과 공공기관에 맞추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민이 책을 읽든 안 읽든, 책 읽을 환경을 조성하고 시민 스스로 성장케 할 책무는 정부에 있다. 헌법 제14조에서 22조는 이 정부가 그토록 좋아하는 국민의 ‘자유’를 촘촘히 명시하고 있거니와, 특히 22조는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가 ..
두 인터넷 매체가 10·29 참사 희생자 이름을 공개하고 나서 며칠째 동네가 시끄럽다. 판단은 어렵지 않다. 유족의 동의 없는 희생자 이름 공개는 문제가 있다. 재난 상황에서 언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는 우리 사회의 오랜 고민거리였다. 재난 보도의 규범이 필요하다는 공론은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를 겪으면서 떠올랐는데 ‘재난 보도 준칙’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진 것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경험하고 나서였다. 이 강령에는 지금 우리가 논란하고 있는 ‘피해자 보호’라는 가치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다 아는 바와 같이, 과거에는 ‘재난 보도’가 아니라 ‘보도 재난’이라고 할 일들이 많았다. 피해자의 슬픔을 생생하게 전한답시고 죽음의 현장에서 갓 탈출하여 공포에 떨고 있는 생존자에게..
시골살이에 가장 많이 쓰는 몸은 장딴지와 콧구멍. 일단 잘 걷고 잘 뛰는 날쌘돌이여야 해. 머슴을 살더라도 장딴지 허벅지 근육이 짱이어야 한다. 콧구멍은 왜냐고? 친구 집에 맛난 거 해묵는지 킁킁댈 때 요긴함. 먹을 복이 있는 자는 콧구멍이 예민하게 발달한 종족이지. ‘마라닉’이라는 신종 낱말이 있다. 일본 사람 ‘야마니시 데쓰로’ 교수가 만든 말. ‘마라톤과 피크닉’의 준말이래. 주구장창 달리기만 잘해봐야 뭐해. 가다가 쉬기도 해야지. 등에 가벼운 배낭을 하나 메고 달리다가 경치 좋은 곳을 만나면 일단 멈춤. 이제부턴 피크닉을 즐길 타임이야. 생수와 과일 몇 조각이면 충분하지. 마라톤을 달리다가 뜬금없이 삼겹살을 구워 먹겠는가. 키가 크다고 달리기에서 유리한 건 아냐. 운동선수들의 대화. “너는 다리가..
너무 많은 글과 말이 쏟아지고 있는 요즘, 굳이 말을 더 보태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생각으로 넘어갈 수가 없다. 각자의 위치에서 뭐라도 한마디씩 뱉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10월30일 일요일 오전 6시. 단톡방에서 첫 소식을 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자취하는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답이 없다. 연거푸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는다. 아들이 종종 외국인 친구들과 이태원에서 노는 걸 알기에 이미 심장은 쿵쾅거리고 맥박도 빨라졌다. 아들에게 ‘자고 있었어’라는 답이 올 때까지 30여분간 제정신이 아니었다. 사태를 파악한 아들도 친구들은 괜찮은지 걱정하며 참담하다고 했다. 그날 대한민국의 아침은 전 국민 안부 묻기로 꽤나 분주했다. 20대 자녀를 둔 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노부모들도 ..
단테의 을 둘러싼 의문. 움베르토 에코는 어느 강연에서 “옛날 중세 사람들도 의 ‘천국편’이 재미없었을까” 물었다. 현대인이 보기에 ‘지옥편’은 흥미진진한데 ‘천국편’은 지루하기 때문이다. 물론 “중세 사람들은 ‘천국편’도 재미있었으리라”는 것이 에코 선생의 결론이다. 명색이 중세 학자니 다른 결론을 내기도 어려웠으리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19세기 말 미국에서 온 호레이쇼 뉴턴 앨런은 을 썼다. 당시 지배층 엘리트(우리 식으로 ‘양반’이라 부른다)에게 조선의 볼거리를 소개해달라고 했다. 양반은 ‘학춤’ 공연을 보여주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지루한 시간은 처음이었다”고 앨런은 썼다. 선교사에 의사에 외교관에 브로커까지, 인생이 심심할 틈 없던 앨런이니 학춤 공연이 지루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지금 한국 ..
출발은 ‘자유’였다.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은 표현의 자유에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2월18일 언론 자유를 강조하며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실제 윤 대통령은 입만 열면 ‘자유’를 얘기한다. 취임식, 광복절, 유엔총회 연설에서 수십 차례 ‘자유’라는 낱말을 반복했다. 대학교수 아들인 데다, 서울대 법대를 나왔고, 검사 출신에 정치 경험 없이 단번에 대통령이 된 윤석열. 그가 입에 달고 사는 ‘자유’의 개념은 대체 무엇일까. 윤 대통령 취임 6개월이 지났는데 그 자유가 뭘 말하는지 시간이 흐를수록 잘 모르겠다. 적어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다짐은 말뿐이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고등학생의 정권 풍자 만화가 불편하다고 문화체육관광부를 통해 엄중 경고를 내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과거 발..
대통령 소속으로 2018년 설립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의혹이 제기되는 군인의 사망사고에 대해 진정이 접수되면 이에 대해 조사해 진상을 밝히고 국방부에 필요한 요청을 하는 기구로서 내년 9월13일까지 활동한다. 작년 7월부터 위원회가 직권으로 조사를 개시할 수 있는 권한이 생겼다. 위원회는 남은 활동기간 동안 사건을 잘 조사해 죽음의 진상을 밝히고 유족의 억울함과 망인의 한을 풀어드리고자 한다. 위원회는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군이 제대로 예우하지 않은 안타까운 죽음을 수시로 만나게 된다. 군에서 책임을 져야 하고 순직으로 예우해야 할 죽음이건만 일반사망으로 처리된 분들이다. 그때마다 위원회가 직권조사를 개시하고 있으나, 그 범위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행여 조사 개시만 하고 10개월밖에 남..
숨쉬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최근에 확실히 알았다. 축농증이나 비염을 앓고 있는 것도 아닌데 코가 아니라 자꾸 입으로 숨을 쉬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운동 코치가 내가 숨을 잘 못 쉰다고, 정확하게 말하면 숨, 특히 날숨이 짧다는 지적을 한 적도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세월호 직후 108배와 명상을 할 때도 나는 내 호흡이 짧고 불안정하다고 생각했었다. 아, 나는 왜 숨쉬기조차 제대로 못하는 것일까? 에 나오는 도를 체득한 사람, 진인(眞人)은 잠을 자도 꿈꾸지 않고, 깨어서도 근심이 없다. 그는 먹을 때는 맛있는 것을 구하지 않고, 대신 숨쉴 때는 깊고 고요했다. 거의 숨쉬기만으로도 생명을 유지한다는 이야기인데, 그럴 수 있는 이유가 보통 사람은 목구멍으로 숨을 쉬지만, 진인은 발뒤꿈치로 숨을 쉬기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