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속 10대를, ‘사회적 거리 두기’ 속 20대를 보냈던 청년들은 올해서야 집 밖을 나서기 시작했는데 10·29 참사를 겪으며 또다시 어울림의 두려움을 느꼈다. 교류가 아닌 고독이 생존의 규칙이 되어버렸고, 함께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잊었던 트라우마가 재현됐다. 그 어떤 세대도 반복적으로 경험한 적 없었던 가혹한 가르침이었다. 발길을 잃고 마음이 얼어붙은 또래 다수는 저마다 외로운 소수로 남기를 택했다. 그들은 반복된 죄책감과 분노 속에서 침묵과 고립을 택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이 일방적으로 공개된 문제에 대해 지적하는 목소리에 ‘개인정보보호법상 문제가 없다’며 사법화된 정치적 해명을 마주하고, 이태원 참사 속 여성 희생자가 더 많이 발생한 문제에 대해 지적하는 목소리에 ‘애초에 여성이 ..
나무에 아크릴(32×44㎝) 출처를 알 수 없는 선인장이 하나 있습니다. 관심도 안 가지고 구석에 처박혀 있던 선인장에서 꽃이 피었습니다. 자기 몸보다 더 작은 물도 잘 안 주는 메마른 화분에서 자기 스스로 커서 노랑 예쁜 꽃을 피웠습니다. 무심한 주인은 활짝 핀 꽃을 보고서야 그 선인장의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관심을 주지도 않았는데 자기 스스로 커버린 선인장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과연 내가 관심을 가졌으면 더 잘 컸을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물을 너무 많이 줘서 혹은 햇볕을 찾아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더 못 컸을지도 모릅니다. 적당한 관심과 적당한 무관심의 중심점을 찾기란 참 힘든 것 같습니다. 연재 | 생각그림 - 경향신문 302건의 관련기사 연재기사 구독하기 도움말 ..
첫눈이 내린다는 절기 소설(小雪)이다. 첫눈에는 기다림과 설렘이 있다. 누군가를 만나야 할 것 같은 날, 나에게는 따뜻함을 함께 나누고 싶은 이들이 있다. 건설근로자. 그들의 투명한 근로내역 관리를 위해 도입된 전자카드제가 대폭 확대되면서, 고용복지 개선이 가시화되고 있다. 첫눈처럼 설레고 반가운 일이다. 전자카드제의 근간인 퇴직공제제도는 성수대교 및 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형 사고들을 계기로 1998년 도입되었다. 일용직이 대부분이기에 근로기준법상 퇴직금 혜택에서 소외된 건설근로자들에게도, 퇴직금을 지급해 사기를 높이고 성실 시공을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제도 도입 시 모습을 회고해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일용직도 퇴직 후 목돈이 생긴다는 기대감에 찬 모습, 이름 적힌 퇴직공제수첩을 보며 “이제야 근로자의..
빅 브러더가 지배하던 오세아니아국에서는 ‘신어’를 사용했다. 빅 브러더가 보기에 불순한 이단적인 사고가 “적어도 사고가 말에 의존하는 한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의도에서였다”. 그래서 기존의 언어와는 다른 언어법칙이 만들어지고 계속 새로운 신어사전을 편찬해서 보급했다. “자유로운(FREE)”이란 단어는 ‘정치적 자유’나 ‘지적 자유’와 같은 뜻으로는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언어를 통해서 사고를 통제하려는 시도였다. 시인 나희덕이 정확하게 포착해낸 것처럼 구동독 정보국은 라는 파일을 만들어 관리했다. 시인은 라는 시에서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그가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말을 가졌다는 것/ 마음의 뿌리를 돌보며 살았다는 것” 때문에 “그들은 라는 파일 속에 그를 가두었다”고 말했다. “서정시마저 불온한 ..
작금의 정치권 대치는 무이념의 축제라 반지성적이고 반민중적 국민 생명과 인권 지켜낼 사회적 책임과 권한 공유체계 설계 위해 부정성과 부작용 불구 정치도 이념을 가져야 역사적 경험으로 보면 극심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공통적 대의를 만들어 새 정치사회적 질서를 연 국제적 사례들이 있다 작금의 한국 정치사회가 주목할 지점이 그것이다 광장과 거리에서 또다시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한 측은 윤석열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고, 다른 한 측은 정권 사수를 내세우고 있다. 오늘 글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금의 그와 같은 대치는 반지성적이며 반민중적이다. 왜냐고? ‘무이념의 축제’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열기 위해 사람들의 마음을 묶어낼 가치 규범과 비전과 전략, 그리고 그것을 담고 있는 언어와 실천 프로그램 모두를 결여하고 ..
문재인 정부가 잘한 정책 중에는 신남방 정책이 있다. 한국 외교의 중심축은 오랫동안 대북관계 또는 동북아시아였다. 신남방 정책은 동남아시아+인도를 외교의 중심 축으로 주목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문재인 정부 집권 기간, 동남아시아+인도와의 경제 교류는 대폭 확대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한·아세안 정상회의, 한·미·일 정상회담, G20 정상회의 등에 참석했다.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했다. 한·미·일 정상회담에서는 ‘프놈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 정책’과 윤석열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은 것일까? 먼저 차이점을 살펴보자. 문재인 정부는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표현을 의식적으로 피했다. 신남방 정책은 ‘사람 ..
요새 우리들의 삶이 많이 움츠러들어 있음을 느낀다. 우리는 어떤 민족보다도 흥이 많은 민족인데, 지금 흥은 사라지고 근심 걱정만 남아 있으니 사람이 쪼그라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람과 천지의 기운이 만나서 흥을 일으키고, 사람이 흥겨우면 근심으로 든 병도 낫는다는데, 사람들이 흥을 잃은 요즘 나라와 민족도 나아갈 방향을 잃고 어지러운 세상이 됐다. 이태원 참사로 158명이나 되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부모형제와 작별인사도 못하고 비명횡사했다. 또 고금리와 고물가 등으로 부동산, 주식 등 자산의 거품이 붕괴하고 또 고환율과 세계경제의 불황의 심화로 우리 경제가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 사람들은 ‘국가가 어디 있는지’ ‘정부가 과연 국민의 안전과 민생에 관심이나 있는지’ 묻고 있으나, 대답이 없다. 보통..
폭군의 대명사 연산군. 에는 그의 죄상이 무려 4쪽에 달한다. 즉위 초에는 백성을 보살피고 국방에 주력했으나, 생모 폐비 윤씨 사건으로 온갖 폭정이 시작되었다. 꽃과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천성이었는지, 나라와 백성보다는 자신의 지취(志趣)와 향락이 우선이었다. 그야말로 ‘풍류에 진심’인 왕이었다. 그렇다고 탄핵당한 폭군으로만 치부하긴 아쉽다. 조선시대 원예사와 공연예술에 큰 족적을 남긴 임금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임금이 꽃에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연산군만은 예외였다. 그는 기이한 꽃과 나무를 구해 후원에 심도록 하고, 각종 꽃을 전국 각지에서 바치게 하였다. 또한 철 지난 감귤이라도 ‘가지에 붙어 있는 채’로 올리도록 하거나, 일본철쭉을 “뿌리에 흙을 붙인 채 바치되 뿌리가 상하지 않도록 하라”고 하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