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언론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선을 넘고 있다. 언론의 자유를 선거운동 기간에 강조한 윤석열 대통령의 약속은 이미 사라졌다. 해외 순방에서 발생한 대통령 자신의 발언 책임을 특정 언론에 돌리고, 국익을 훼손한 가짜뉴스, 악의적 보도라고 연일 책임을 추궁하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동남아시아 순방 약 40시간 전에 MBC 취재진의 전용기 탑승을 배제하는 결정을 내렸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일이다. 그런데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갔다. 대통령실에 이어 김상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은 삼성과 여타 기업에 MBC에 광고를 넣지 말 것을 비대위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발언을 했다. 정치 권력이 시장의 힘을 빌려 언론사 광고를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이것뿐만 ..
한국 민주주의의 역동적이고 드라마틱한 성취를 내심 부러워하던 일본 정치가 한국 정치를 우습게 생각하기 시작한 정확한 시점이 있다. 바로 한국 검찰이 2014년 일본 산케이 신문의 가토 당시 한국지국장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한 때다. 세월호 사건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가토의 칼럼, 가 문제였다. 애당초 일본 극우민족주의를 대변하면서 독도 문제 등에 있어서 가장 반한(反韓)적인 논조를 취해온 산케이 신문이, 현직 대통령의 “애정행각” 운운한 내용은 즉각 독도사랑 등의 시민단체에 의해 고발되었고, 검찰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를 기소, 이듬해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하였다. 해당 재판에 대한 일본 및 해외 언론들의 뜨거운 관심에 비해, 국내 언론이 특별한 입장을..
나를 한 장 넘겼더니 살은 다 발라 먹고 뼈만 남은 날이었다 당신이 나뭇가지에 매달렸던 나의 마지막 외침을 흔들어 버리면 새가 떨어진 침묵을 쪼아 올리는 것이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텅 빈 하늘 아래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목소리는 누구인가 깊고 깊어서 부스러기도 없이 뼈만 앙상하게 만져지는 기억들 미처 사랑해 주지 못했던 사랑처럼 남겨진 몇 개는 그냥 두기로 했다 오래된 노래처럼 내 귓속에서 흥얼거리며 살도록 이영옥(1960~ ) 11월 달력을 떼어내자 12월 한 장만 남는다. 벽에 걸 때만 해도 곳간에 그득한 양식 같던 한 해가 어느새 다 지나갔다는 회한에 젖는다. 회한은 반성과 자책으로 이어진다. 연초에 세운 목표는 달성했는지, 잘못한 거나 아쉬웠던 건 없는지 생각이 꼬리를 문다. 11월은 거울 앞에 선..
6~7년 전쯤 온라인 관련 부서에서 일할 때 사무실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1980년대에 이름이 꽤 알려졌던 사람인데 자신이 관련된 ‘사건 기사’를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사건 이후 20여년이 흘러 자식들이 결혼할 때가 됐는데 그런 기사가 남아있어서 부끄럽다는 것이 이유였다. 해당 기사를 찾아봤더니 전화한 당사자뿐만 아니라 관련된 사람들의 실명이 모두 공개되어 있었다. 이름과 나이는 물론 살고 있는 집의 주소까지 나온 관련자도 있었다. 내부 회의를 거쳐 기사를 삭제하지는 않고, ‘현재 기준’에 맞게 이름과 주소를 모두 보이지 않게 처리했다. 당사자도 만족했는지 그 이후에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수십년 전에는 흔한 기사였다. 사건이 일어나면 관련된 사람의 실명..
한국에 머무는 외국인이 지난 9월 기준 217만명을 넘어섰다. 2019년 250만명으로 가장 많았다가 코로나19로 감소한 이후 올해부터 다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 정부도 내년 외국인노동자 입국 허가 인원을 역대 최대인 11만 명으로 결정했다. 2025년이면 국내 체류 외국인 숫자가 250만명을 넘어 역대 최고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이주배경 인구가 전체 인구의 5%를 넘으면 공식적으로 다인종 국가로 분류되는데 한국도 정말 머지않았다. 국경을 오가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 출입국 행정이다. 외국인이 한국에 입국하려면 법무부 장관이 발급한 사증(비자)이 있어야 한다. 실무적으로는 법무부 장관의 위임을 받은 각 나라의 영사가 비자 발급 권한을 가지..
나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런 내가 종교기관을 상대로 한두 건의 재판을 대리한 것은 아직 좀 어색한 일이다. 한 사건은 2019년 감리회 소속 이동환 목사가 제2회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축복식을 진행하였다는 이유로 징계절차에 회부된 교회재판이다. 목사로서 성소수자를 축복한 것이 감리회 교리와 장정에서 징계사유로 규정한 ‘동성애 찬성·동조’에 해당한다는 것이 기소 이유였다. 3년간의 긴 재판을 거쳐 지난 10월 감리회 총회 재판위원회는 이동환 목사에게 정직 2년의 징계를 내렸다. 다른 한 사건은 2018년 5월17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에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학생들이 무지개색 옷을 입고 채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사건이다. 학교 측은 학칙을 무리하게 적용해 학생들을 징계했고, 징계무..
원인과 책임을 밝히기는커녕 오리무중 만드는 한국증후군 얼마나 많은 생명을 잃은 후에야 이 증후군을 치료할 수 있을까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삼각지 근처로 이사한 지 4년이 되었다. 삼각지가 속한 용산구는 서울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어쩐지 어설픈 느낌이었는데, 몇년 전부터 새로운 도심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대통령실마저 이곳으로 이전했다. 위압적이고 비밀스러운 느낌의 청와대를 떠나려는 의지는 수긍할 수 있다. 의지를 보인 여러 대통령들이 못한 것을 윤석열 대통령이 과단성 있게 실행한 점도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하루라도 청와대에 있다가는 큰일 날 것 같은 태도로 부랴부랴 이전한 것은 이상했다. 도무지 다른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 어렵고 그저 결단이라기에는 기이했기에 주술적인 사연이 있으리라는 온..
지난여름 수해 참사가 일어난 신림동, 노부부는 젖은 세간살이를 겨우 말린 그 집에서 여전히 살고 있다. 서울시와 정부는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노부부에게 가장 유효한 대책인 공공임대주택은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 이들에게까지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다. 최소한 다시 여름이 오기 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갈급한 마음과 달리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이라는 난센스를 내밀었다. 예산 삭감을 막기 위해 국회 앞에 차린 농성장 ‘내놔라 공공임대’가 최근 첫 관문을 넘었다. 지난 1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예결소위가 삭감된 공공임대 관련 예산을 예년 수준으로 복구하기로 했다. 예결특위와 본회의가 남아 있고, 증액은 정부와의 협의가 필요해 아직 앞날은 불투명하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예결소위 의결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