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한복판에서 갑자기 156명의 목숨이 사라졌다. 희생자 중 10~20대가 116명이다. 세월호 참사와 그것이 남겼던 과제를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다. 지난 8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던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던 다짐과 노력은 어디로 갔을까. 말로 다 못할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느낀다. 삶을 누리지도 못한 너무 젊은 희생 앞에서 ‘명복을 빈다’고 말하지 못한다. 거대한 사태에는 복합적이고 다기한 원인들이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는 국가와 사회 그리고 미래의 주인인 젊은이들이 살아갈 이 체제 자체에 대해 다시 진단하고 실천해야 한다. ‘국뽕’ ‘선진국’ 같은 허위의식 따위는 버리고 말이다. 이태원에는 온갖 인종과 국적의 사람들이 오가고 또 그만한 문화적 축적이 있다. 이주민 중에서도 소수에 속하는 무..
이태원 참사 이후, 하루에도 몇 번씩 그날을 떠올린다. 그사이 이태원과 서울광장에는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가 설치되었는데, 이름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사고’와 ‘사망자’는 책임을 미루고 지우는 단어다. 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을 가리키는데, 이는 뜻밖에 일어났기에 손쓸 수 없었음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사망자 또한 “죽은 사람”이라는 의미를 통해 죽음을 단순화시킨다. 그러나 사고가 아닌 참사다. 사망자가 아닌 희생자다.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다. 애통하다. 참담하다. 참사 당시, 국가는 대체 어디에 있었는가. 국가는 왜 책임을 다하지 않았는가. 희생자들의 분향소가 마련되기도 전, 대대적인 온라인 여론전이 이루어졌다. 핼러윈은 외국 전통이 상업적으로 변질돼 청춘의 방종을 ..
복 중의 복은 오래 사는 복이라덩만. 모르겠어. 얼마나 살아야 오래 사는 건지는. 누군 자유 자유 해쌌던데, 제 명에 못 살고 ‘일찍 죽을 자유’ 말고는 없는 거 같은 요즘 세상이야. 한 유랑자 객승이 있었는데, 제자에게 다음 두 가지 가르침을 명심하라 했대. “1. 절대 길에서 죽지 말 것 2. 길에서 죽지 말라는 1의 가르침을 절대 잊지 말 것.” 그렇다고 명줄이 하늘에 달렸는데, 제 뜻대로 될 것이냐만. 목사가 전기의자에 앉은 사형수에게 마지막 소원이 뭐냐 물었어. 사형수는 “죽을 때 외로우니 제 손을 꽉 잡아주세요”. 순진한 목사가 “그 정도 소원이야 당연히 들어줄 수 있죠”. 그리곤 둘이 하늘나라로 갔다는 얘기. 이승이나 저승이나 혼자는 외로워. 저번날 동네 어르신들이랑 같이 생선토막 놓고 조촐..
“어린아이를 혼내기 위해 경찰서에 데려 오시면 아이 마음에 상처만 남습니다. 아이의 입장에서 묻고, 듣고, 답해주는 인내의 시간보다 더 나은 훈육은 없습니다.” 최근 어느 경찰서가 내걸어 화제가 된 현수막의 문구다. 자녀 또는 손주가 말썽을 피우는데 혼내도 말을 듣지 않으면 경찰서에 아이를 데려오는 부모나 조부모들이 종종 있어서 난감하다고 한다. 훈육의 어려움이 적지 않음을 짐작하게 한다. 자녀의 수가 줄어들었는데 부모 노릇은 왜 이렇게 버거워졌을까?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부모 이외에 여러 어른과 관계를 맺으며 자라났다. 이모나 삼촌 등의 친척이 함께 살거나 자주 집을 찾아왔고, 동네에서는 이웃의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늘 마주쳤다. 그들은 아이를 함께 보살피면서 잘못하면 꾸지람도 해주었고, 그렇..
이태원 핼러윈 참사 소식을 접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이랬다. 죽음을 정쟁 소재로 삼아서는 안 된다. 당분간 애도기간을 갖자는 여권 인사들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없이 생을 마감한 희생자와 가족들의 상실감, 사회를 짓누르는 슬픔의 공기를 생각하면 조용히 명복을 비는 것이 도리라고 여겼다. “이태원 참사는 청와대 이전 때문에 일어난 인재”라는 민주연구원 부원장이나, 세월호 사태에 빗대려는 일각의 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여겼다. 치유되지 않은 세월호를 정치적 의도로 헤집는 데 동의할 수 없었다. 난잡한 정치판에도 금도는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경찰 녹취록이 사고 3일 만에 공개되면서 국면이 바뀌었다. 녹취록에 따르면 사고 발생 약 4시간 전부터 “난리가 났다” “압사당할 것 같다”는 112신고가 ..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던 시절부터 아무개는 소금을 캐러 다녔다. 서쪽 하늘에 초승달이 보이는 시기에 길을 떠나, 야크들을 몰고 잿빛 땅뿐인 세상을 가로질렀다. 밤하늘에 보름달이 나타날 즈음이면 긴 여정이 끝났다. 호수를 뒤덮은 신의 은총이 달빛에 하얗게 반짝이는 것을 오래 바라보곤 했다. 두 번째 소금 길에서는 먼저 호수로 출발하여 자루 100개에 소금을 채워둘 네 사람으로 뽑혔다. 짐승을 돌보며 뒤따르는 일은 노련한 어른들이 맡았다. 선발대가 떠나기 전날 밤, 마을의 촌장이 힘 좋고 걸음 빠른 네 젊은이를 불러 모았다. 그리고 반짝이는 하얀 조각을 하나씩 입에 넣어 주었다. 태어나서 처음 경험한 맛, 가라앉지 않는 허기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맛이었다. - 보리를 소금으로 바꿔 간 이에게 얻은 설탕이다...
1997년 2월15일 MBC 에서 밴드 삐삐롱스타킹은 한국 방송 역사상 손꼽히는 사고이자 대중음악 역사상 기억될 만한 이벤트를 만들었다. ‘바보버스’를 부르면서 보컬 고구마가 카메라에 손가락욕을 했고, 기타리스트 박현준은 침을 뱉었다. MBC는 곧바로 이들을 출연정지시켰지만, 밴드가 곧 해산했기에 출연정지 조치는 별 의미가 없었다. 멤버들은 각자 다른 밴드를 결성하거나 영화음악을 작곡하며 유유히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유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 있는 가사(“잘난 척 하지마 똑바로 살아봐 첨으로 돌아가 단추를 풀어봐 … 주위를 둘러봐 빗자루 한마리 쓰레기 두마리 짜증날 것 같아요”), 경기 들린 듯한 무대 매너는 이날의 사고가 ‘의도된 파국’이었음을 암시한다. 지금보다 연예계에 미치는 지상파 방송사의 권력이..
2019년 첫째가 태어나며 출산지원금을 지역화폐를 통해 지원받은 이후 재난지원금 사용 및 현금 충전으로 정말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는 지역화폐는 나의 소비생활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결제수단이 되었다. 지역화폐를 이용하는 주된 이유는 현금 충전 시, 부여되는 인센티브로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물건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인데 지자체별로 또한 기간에 따라 다르지만 충전금액의 5~10% 수준에서 부여되는 인센티브는 신용카드사 포인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큰 혜택이다. 단, 발행목적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곳이 거주지역에만 한정되며 사행성 업소나 백화점, 대형마트 및 지정 매출액 이상인 상점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는 제한이 있다. 이 제한은 인센티브 혜택을 통해 지역화폐 거래량을 늘려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