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치 이미지 안에는 아직도 전근대적 절대권력의 망령이 서려 있다. 정치인들은 국가를 오직 권력으로만 이해하며, 통치자는 그 위에 군림하는 군주쯤으로 여긴다. 그 부인을 국모라고 말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신을 비판하는 모든 세력을 악의 축으로 여긴다. 또한 재벌과 결탁하며 사회를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어간다. 여기에 검찰과 경찰을 장악함으로써 일찍이 알투세가 말한 ‘억압적 국가장치’를 완성한다. 그런 정치에게도 언론은 늘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이다. 이번 MBC 사태는 윤석열 정부의 언론관이 잘못되었거나 ‘속이 좁아서’ 생긴 일이라기보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서의 언론을 적극적으로 길들이고자 하는 현 정부의 다급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일이라고 본다. 혹은 현 정부가 권력과 국가..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경북 구미에서 김천으로 가다 보면 굽은 길을 정면으로 품고 있는 작은 산 하나를 만난다. 아빠는 정확한 위치도 이름도 모르는 그 평범한 야산을 지날 때마다 ‘저 산의 능선이 꼭 박정희 대통령이 누워 계신 모습 같다’고 하며 산등성이를 손가락으로 이어 눈, 코, 입을 그린다. 아빠의 애절한 충성심은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기로 한 대통령의 결단과 카리스마에 대한 예찬으로 이어지고 육영수 여사의 생가가 있는 충북 옥천 부근에선 서글픈 애도가 된다. 그렇게 눈물을 훔친 아빠는 목적지인 서울까지 가는 동안 망해가는 조국의 미래를 염려한다. 나는 아빠의 입에서 ‘네가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아서 모른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그 찬양과 비관을 밀어낸다. 결말이 없는 이야기는 언제나 ‘정치 이야기만 안..
수염, 장발, 도복, 도사들로 혼탁한 세상. 트레이드 마크 턱수염을 깎고 긴 머리도 싹둑 잘라 버렸다. 너무 단정해서 목사님 같다고들(?) 그런다. 마음 같아선 스님처럼 삭발도 해보고파. 예전에 절밭을 지나가면 허수아비도 승복을 입고 서 있곤 그랬다. “풀 쪼던 호미 그대로 두고 스님 밥 지으러 간 사이 허수아비 혼자 콩밭을 지킵니다. 떡 벌어진 허수아비 스님을 닮진 않았지만 모자와 저고리만은 스님 걸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별이 된 초등교사 임길택 샘 시는 누구 말마따나 가을날 들꽃처럼 가난해서 참 좋아. 여기서 퀴즈. 허수아비 아들이 누구게? 허수지 누구야. 허수는 어딜 가고 아비 혼자 밭을 지키누. 허수의 고독과 설움, 책무의 무거움까지 마음 쓰인다. 김장철이니 산밭도 텅텅 비어가. 고구마가 먼저..
‘사람의 자리’가 몹시 위태롭다. 안전하게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나와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생물학적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태원 참사는 사람과의 연결을 피하고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생각을 더 확산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된다. 이런 시대에 생활의 리듬을 바꾸고자 고민하고, 기후 위기 시대 생명을 생각하며 존엄한 시민으로 산다는 것은 차라리 사치에 가까울 것이다. 소위 먹고사니즘이 압도하는 사회는 절대 좋은 사회가 아니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 등 3고(高) 위기는 특히 저소득 시민들의 삶을 덮쳤다. 소득이 낮을수록 식비 지출 비중이 커졌다는 11월21일 통계청 발표는 이번 겨울이 ‘불만의 계절’(존 스타인벡)이 될 수 있음을 알리는 경고음처럼 들린..
책을 읽는 방법과 속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본 지가 오래되었다. 그런데 영상 시청에서는 보는 방법과 속도를 둘러싼 이야기가 꾸준히, 점점 크게 들려온다. 방법으로는 영화관에 직접 가서, TV로, 비디오나 DVD로 보던 시대가 저물고 OTT 서비스를 활용하게 되었고, 속도에서는 유튜브 등에서 제공하는 재생 속도 조정 기능을 활용하여 0.25에서 2.0까지 상황에 맞춰 적정 속도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극명한 변화를 두고 경험과 분석 두 방향 모두에서 이야기가 지속되는 상황이겠다. 얼마 전 번역 출간된 일본 칼럼니스트 이나다 도요시의 은 이런 세태를 빠르게 포착한 책인데, 빨리 감기와 건너뛰기 기능을 적극 활용하여 영상을 보는 이들의 목소리를 다양하게 전하고 있어 최근 콘텐츠 소비 성향 이해에 도움을 ..
‘대장동 3인방’ 가운데 한 명인 남욱 변호사의 폭로가 장안에 화제다. 1년 전에 남씨는 말했다. “A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라고. 그런데 이제 와서 남씨는 말을 완전히 뒤집었다. “A는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 그땐 A가 대통령이 될지 몰라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고. A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지난 21일 구속기간 만료로 풀려난 남씨는 법정에 출석해 증언을 쏟아냈다. “2015년 2월부터 천화동인 1호 지분이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실 지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김만배씨에게서 들어서 알았다”는 것이다. 2013년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게 전달한 3억5200만원에 대해 남씨는 “(유 전 본부장이) 본인이 쓸 돈이 아니고 높은 분들한테 드려야 하는 돈이라고 얘기했다”고 했다. ‘높은..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모처럼 마음은 먹어도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모릅니다. 먼지 쌓인 책장의 책을 꺼내 들었다가 머잖아 원래 생활로 되돌아갑니다. 이런 이들에게 외국어 공부를 추천하며 자신도 그렇게 해온 사람이 있습니다. 삶에서 매일 공부하기를 꿈꾸며 이를 생활화한 여성 번역가입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뒤 공공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방송대 일본어과, 중국어과, 프랑스어과를 졸업했다고 하는군요. 우리 말 번역이 나오지 않은 영문 원서를 읽다 우연히 번역가가 된 뒤에는 독일어, 에스페란토어, 베트남어도 맛을 봤다고 합니다. 그가 말하는 외국어 공부의 장점은 많습니다. 다른 일이나 다른 공부를 하면서도 할 수 있고 자신의 생활에 맞춰 강도를 조절할 수도 있..
자리에 눕는다. 스마트폰을 든다. 그래도 세상 돌아가는 건 알아야지. 포털 뉴스 창을 연다. 급변하는 세계 정세도 궁금하고, 요즘 논란이라는 채권 관련 소식도 알아야 할 것 같다. 엄지로 기사를 스크롤하는데,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문해력이 떨어진 걸까. 그러고보니 요즘 책을 잘 안 읽는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은 출근할 때 책을 한 권 들고 가야지 생각하며 뉴스 창을 닫는다. 자기 전에 머리를 가볍게 해야 할 것 같다. 유튜브 앱을 연다. 짧은 쇼츠 영상이 눈에 띈다. 아하, 요즘엔 이런 것들이 유행이군. 영상이 쓱쓱 넘어간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런 젠장, 1시간이 훌쩍 지났다. 잘 시간이 부족하다. 아무래도 내일 출근길에 책을 읽기보다는 졸아야겠다, 고 생각한다. - 요즘 기사가 안 읽힌다. 문해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