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에 11분간의 우주 비행을 마치고 귀환한 블루 오리진의 회장인 제프 베이조스가 폭탄 발언을 했다. 자신이 창립한 “아마존 경영에서 손을 떼겠다”는 거다. 마치 이재용 회장이 삼성을 포기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어 그는 “다섯 살 때부터 우주는 나의 꿈이었다”며 인간의 우주 진출을 위한 “블루 오리진 경영에만 전념하겠다”고 선언했다. 다섯 살 때 무슨 일이 있었나? 아폴로 우주선을 타고 루이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한 1969년. 어린 시절에 이를 지켜본 아폴로 키즈들은 후에 과수원 벌판에 불과했던 샌프란시스코 근교의 시골 마을을 혁신의 성지인 실리콘 밸리로 변모시켰다. 아폴로 우주선을 운반한 새턴 로켓과 비행제어, 소재, 초기 컴퓨터 기술이 어우러진 우주공학은 실리콘 밸리를 만든 혁신 에너지의 ..
서울 신촌에서 오래도록 방치되어 있던 가난한 이의 죽음이 또다시 발견되었다. 집에는 연체된 고지서와 빈 쌀 포대가 있었다고 한다. 수원 세 모녀의 죽음, 탈북여성의 고독사가 발생하고 그 기억이 채 사라지기 전에 비슷한 사건이 반복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죽음이 다뤄지는 방식이나 파장은 예전 같지 않다. 반복되다 보니 둔감해진 것일까? 이번 일을 바라보며 두 가지 질문을 하게 되었다. 첫째, 배제와 고립에 관한 질문이다. 무엇이 가난한 이들을 타인과의 관계 형성과 사회 참여로부터 물러나게 만드는가? 우리 사회의 미디어와 담론에서 가난은 추상화되고 존중 없이 대상화된다. 가난한 이의 삶은 구체적인 실체로 깊이 다루어지기보다는 모금 캠페인을 위해 가공된 사진으로 자선의 대상으로 동원된다. 21세기 자본..
예천 삼강주막 회화나무 1300리 낙동강 줄기가 스쳐지나는 예천 강변에는 이 땅의 마지막 주막으로 불리는 ‘삼강주막’이 있다. 주모라는 이름의 여인이 지켜온 명실상부한 주막이다. 낙동강 내성천 금천에서 흘러나오는 세 강물이 하나로 만나는 자리여서 삼강(三江)이라 불리는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다. 강 위로 삼강교라는 육중한 다리가 놓이고 옛 나루터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50년 전까지만 해도 삼강나루터는 영남과 한양을 잇는 번화한 나루터였고, 나루터 주막은 영남 지역 보부상들에게 최고의 쉼터였다. 2005년에 주모 유옥연 노인이 돌아가신 뒤, 사람들의 기억을 모아 옛 보부상의 숙소와 주막을 재현하고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한 이 주막거리를 생생하게 살아서 지켜온 나무가 있다. 산림청 보호수로 지정된 ‘예천 ..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입니다.” 1969년 7월20일, 전 세계인들은 흐린 화질로 전해지는 텔레비전 속 한 장면에 이목을 집중한다. 아폴로 11호의 선장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월면에 발을 딛는 순간이었다. 그가 남긴 이 한마디는 인류가 자신들의 활동 영역을 지구에서 우주로 확장했음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달 착륙을 하겠다”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1961년 대중 연설부터 실제 실행까지 10년도 채 걸리지 않아 미국이 ‘일’을 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폴로 계획 덕분이었다. 국가 자원을 하나로 묶은 아폴로 계획이 우직하게 추진되지 않았더라면 인간의 달 착륙은 훨씬 이후의 일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는 아폴로 계획을 추진해야 할..
“같이 살면 굶어 죽진 않을 것 같았어.” 고작해야 24살, 단칸방에 살면서 변변한 기반 없는 아빠랑 왜 결혼했냐는 물음에 나온 엄마의 답이다. “사랑했으니까” 같은 낯부끄러운 대답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멋없는 대답일지는 몰랐다. 사실 사랑만으로 결혼할 수는 없다. 가장 작은 경제공동체이자 생활공동체인 ‘가족’을 남과 꾸리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더군다나 여성 가구주의 빈곤율이 남성 가구주의 빈곤율보다 월등히 높은 이 나라에서, 엄마의 경제적 선택으로서의 결혼 이유는 더 무겁게 다가온다. 엄마의 결혼 이유를 뒷받침하듯 빈곤한 여성 가장들의 죽음은 계속 이어진다. 지난 23일, 신촌에서 생활고를 이유로 두 여성의 삶이 또 스러졌다. 2022년 11월 신촌 모녀, 8월 수원 세 모녀, ..
나무에 아크릴(32×44㎝) 내 마음 나도 모르겠습니다. 아침에는 기분이 좋았는데, 지금은 또 불같이 화를 내고 있습니다. 짜증이 밀려오고, 또 그러다가 고요하고 평온해집니다. 아무 감정 없이 냉정해졌다가, 슬프지도 않은 영화를 보다가 눈물이 찔끔 나기도 합니다. 하루 종일 우울해하다가, 작은 것 하나로 행복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루에 몇십 번씩 바뀌는 나의 감정 때문에 나의 나이테는 점점 더 짙어져만 갑니다. 연재 | 생각그림 - 경향신문 303건의 관련기사 연재기사 구독하기 도움말 연재기사를 구독하여 새로운 기사를 메일로 먼저 받아보세요.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검색 초기화 www.khan.co.kr
2018년, 한국은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5100t에 달하는 쓰레기를 불법 수출했다. ‘합성 플라스틱 조각’으로 신고된 화물이었지만 각종 유해물질과 쓰레기가 섞여 있었다. 그린피스 필리핀과 한국 사무소의 대응으로 쓰레기는 한국으로 반송됐다. 그러나 플라스틱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여전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사용되고 있고, 그 폐기물은 몇몇 동남아시아 국가로 보내지고 있다. 올해 3월에 유엔 회원국들은 케냐에 모여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자는 역사적인 결의안을 채택했다. 플라스틱의 전체 수명주기를 다룰 법적 구속력을 갖는 협정을 2024년까지 만들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첫 번째 정부 간 협상위원회가 28일부터 우루과이에서 열렸다. 그린피스 필리핀사무소에서 캠페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나는 플라..
나는 무엇인가 중요한 판단을 해야 할 경우에는 가능하면 그 판단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세상에 판단해야 할 사안은 수없이 많고 그중에는 판단의 시기가 이를수록 좋은 것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능하면’ 좋은 정보를 모으고 이것저것 따져 본 후에 판단을 내리는 것이 좋다는 원칙을 말하는 것이다. 살다 보면 주변에서 중요한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성급하게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을 흔히 보게 되는데, 우리 사회에는 ‘무엇이든 일찍 하는 게 좋다’는 막연한 인식이 있는 것 같다. 대학 교수들 중에도 입학시험, 장학금 수혜자 선정 등에서 면접이나 서류심사를 할 때, 학생들의 미래에 대한 꿈이 ‘구체적’일수록 높은 점수를 주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특수한 기능을 살려야 하는 분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