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복지분야 예산안에서 노인일자리 사업을 두고 논란이다. 이 사업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공익활동형(공공형)이 올해 61만개에서 내년 55만개로 6만개 줄기 때문이다. 정부는 베이비붐 세대의 다양한 욕구에 맞추어서 공공형을 축소하고 대신 시장형과 사회서비스형에서 일부 늘렸다고 설명하나 벌써부터 동네 노인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공공형에 참여하는 노인들의 평균연령이 77세로 높고 일의 내용도 다른 유형과 구별되는데 정부가 전혀 현실을 모른다고 탄식한다. 현재도 공공형 일자리에 대한 노인의 수요는 높다. 올해 공공형에서 대기하는 노인 수만 거의 10만명이다. 아마도 선정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여 지원하지 않은 단념 노인까지 합치면 실제 대기자는 훨씬 많을 것이다. 올해 전체 노인일자리 참여 희망 노인 대비 실제 ..
일요일 이른 아침, 나는 엄마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잠이 깼다. 엄마는 다짜고짜 다 큰, 아니 중년이 된 딸에게 지금 어디냐고 물으셨다.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아 자식의 생사를 확인한 사람은 우리 엄마만은 아닐 것이다. 그날 밤 대한민국의 어머니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을 것이다. 156명의 꽃다운 청춘들이 피지도 못하고 무참히 꺾여 버렸다. 어떻게 서울 한복판에서 길을 걷다가 죽을 수 있는가. 이 얼마나 황망한 일인가. 너무도 어이없는 이 희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누구라도 갈 수 있었고, 누구라도 당할 수 있었던 평범한 일상 속의 죽음이었다. 정말 아찔하다. 나의 생존은 기적이 아닌가. 아직도 믿을 수가 없다. 하물며 자식을 잃은 부모는, 유가족은 얼마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유엔 193개국 가운데 110개국 외국인들이 국내 거주 중이란다. 이주민은 200만명 정도인데, 그중 절반이 노동자로 일하고 있대. 우리 동네만 하더라도 동남아 이주민들이 꽤 많이 농사일과 공장일을 하면서 지낸다. 무슬림 친구들도 적지 않고 말이지. 그런데 기독교방송에서 ‘이슬람 반대’ 어쩌고 구호를 재채기보다 자주 해. 동성애, 이슬람 반대 어쩌고 차별과 혐오 발언을 일삼아. 일터에선 높은 그분에게 배웠나. ‘이XX’ 퍽 하면 내뱉는 욕설. 이주민 노동자들이 가장 듣기 싫은 욕이라 한다. 작년 겨울엔 캄보디아에서 비전문취업비자로 온 속헹씨가 비닐하우스 가건물에서 그만 동사했어. 포천 일동면이 평균 영하 14.2도였는데, 속헹씨 비닐하우스는 영하 16도였대. 비닐하우스 가건물도 월 15만원씩 내고, 건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임명했다. 현 정부 들어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을 강행한 14번째 고위직 인사다. 현 정부에 더 이상 잘 어울릴 수 없는, ‘완벽한’ 인사다. 지난달 27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전 부처의 산업부화를 주문했다. 보건복지부는 보건복지 관련 서비스 산업부라 봐야 하고, 국방부는 방위산업부, 국토교통부는 건설산업부, 농림축산식품부는 농림산업부,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산업부라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산업 증진과 수출 촉진을 위해 뛴다는 자세”도 당부했다. 교육부에 대해선 이미 지난 6월 “교육부 스스로가 경제부처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던 터다. 각 부처의 존재이유를 배반할 수도 있는, 기막힌 인식이다. 이런 대통령의 장단에 별 ..
애도의 온도, 분노의 탄착점, 2차 희생양. 이태원 핼러윈 참사 뒤에 보여진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이 3개의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납득할 수 없는 참사에 대해 어떤 이들은 ‘애도의 온도’가 적절하지 않다고 탓했고, 어떤 이들은 진실 규명에 앞서 분노의 대상을 지목하는 데 집중했고,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사회적 애도의 희생양이 되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번 참사에 대한 애도의 온도를 읽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다들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애도했다. 그런데 타인의 애도가 나보다 애도의 온도가 낮다고 질책하는 사람이 많았다. 나의 애도 온도가 상대 온도가 아닌 절대 온도라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절대 온도에 도달하지 않는 애도를 질타했다. 이는 MZ세대의 ..
학교가 서둘러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수업시간은 이미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갔고 실외체육활동 때 마스크도 벗었다. 2학기에는 수학여행을 가는 학교들도 있다.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학교는 코로나 이전으로 무작정 돌아가기만 하면 될까?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리의 일상이 완전히 달라진 경험을 했는데 학교는 그 속에서 배운 점은 없었던 것일까? 학교는 팬데믹 기간 동안 학교의 근본적인 기능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멈추는 경험을 했다. 이 과정에서 학교의 본질과 부가적인 것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드러났다. 교육부의 사업, 교육지원청의 역점사업이나 외부기관이 요청해온 미술대회나 행사는 모두 멈추었다. 학교의 교육과정을 운영하는데 온 힘을 집중하였다. 학교는 팬데믹 기간 동안 버린 것도 있지만 새롭게 집중하고..
전북 장수에서 1만평의 사과 농사를 짓는 정지성 농부는 요새 ‘부사’ 수확에 정신이 없다. 며칠 전부터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해 사과를 따고 있다고 했다. “예전에는 마을 어르신들이 농사일을 도와주곤 했는데, 그분들이 80대가 돼 일하실 수 없게 됐거든. 사과를 따려면 이주노동자들을 불러야지.” 양파 수확기와 겹치면서 이주노동자 다수가 양파 농가로 가는 바람에 일손 구하는 데 애를 먹긴 했지만, 코로나19로 이주노동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던 지난해보다는 사정이 나아졌다고 했다. 드는 자리는 표가 나지 않아도 나간 자리는 커보이는 법이다. 정씨는 “코로나19를 계기로 농촌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새삼 느끼게 됐다”고 했다. 사과와 양파뿐이랴, 식탁에 올라오는 국내산 먹거리 대부분이 ..
얼마 전 출간된 시인 앤 카슨의 아름다운 책 를 구성하는 192쪽의 종이는 아코디언처럼 하나로 이어져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오빠를 기억하기 위해 수집한 편지, 사진, 유품은 낱장의 종이로 끊어지지 않고 애도의 이야기에는 끝이 없다는 듯 길게 펼쳐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그 상실을 담은 이야기는 도대체 어떻게 끝날 수 있는 것일까. 에서 H 포터 애벗은 이야기의 끝(ending)과 종결(closure)을 구분한다. 끝이 서사의 결말을 형식적으로 맺는 것이라면, 종결은 서사의 갈등을 내용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따라서 종결은 반드시 서사의 끝에 위치할 필요가 없으며 모든 서사에 반드시 종결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끝은 났지만 종결이 되지 않은 이야기도 있는 것이다. 애벗에 따르면 서사가 종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