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밭갈대들이 차례로 엎드린다바람이 지나가는 중이다 바람도 생각이 있어여기를 가고 있다 거대한 생각의 몸이수많은 말들을 쏟아 놓으며시원스런 걸음으로 지나간다 갈대들은엎드려 그 말들을받아 적고 있다 문효치(1943~)갈대밭에 바람이 지나간다. 갈대들이 몸을 매우 굽히고, 몸을 바닥에 댄다. 바람은 생각을 하면서 갈대밭을 지나가고, 갈대들은 엎드린 채 바람의 생각을 적고 있다. 이 시에서처럼 누군가를 혹은 어떤 대상을 “거대한 생각의 몸”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누군가에게 혹은 그 대상에게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태도를 갖게 된다. 그이를 여러 가능성과 다양성을 지닌 활물(活物)로 보게 된다. “거대한 생각의 몸”이므로 “수많은 말”을 하기도 하지만, 자연(존재)의 보법(步法)은 시원시원하고 큼직큼직하고 당당하다..
나는 슬프지만 10년 이상 가족과 함께 울고 웃던 어느 보이밴드 팬을 그만두고 얼마 전 BTS에 ‘입덕’했다. 작년 말 서울의 BTS 팝업 스토어와 올해 초 런던 BTS 포럼 줄에 서 있는 동안 과거에 대한 슬픔과 미래에 대한 행복감이 교차했다. 백발이 섞인 중년 남성이 어린 팬들의 긴 줄에 서 있는 건 좀 곤혹스럽다. 다행히 한국에서는 아내가 몇 시간의 긴 줄에 동반해주는 덕분에 뼛속까지 파고드는 날씨와 당혹감을 극복할 수 있었다. 촛불 때도 그랬다. 역시 가족이 최고이다. 난 지나치게 가족의 가치를 절하하고 공적 영역만을 강조한 철학자 해나 아렌트에 좀 불만이다. 가족은 의 대사처럼 때로는 서로에게 전환적 기적일 수 있다. 그리고 런던에서 BTS를 사랑하는 학자 ‘아미’들끼리 확대된 가족 공동체의 사..
이른바 ‘윤석열 사단’을 대거 물갈이한 검찰 고위간부 인사 이후 검찰 안팎의 갈등이 좀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당·정·청은 인사 과정에서 보인 윤석열 검찰총장의 태도를 ‘항명’으로 비판하며 전방위로 검찰을 압박하고 나섰다. 자유한국당은 검찰인사가 “수사방해를 위한 보복 인사”라며 추미애 법무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과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에 냈다. 주말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윤석열 수호”와 “윤석열 사퇴”를 주장하는 두 집회가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밤늦게까지 진행됐다. 엄연한 국가기관인 법무부와 검찰 간 갈등이 내부에서 조정되지 못한 채 시민들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은 참으로 우려스럽다. 검찰개혁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다. 그 시작은 검찰 인사부터다. 검찰은 조국 전 장관 수사 이후 보여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