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한문에 눈을 떴다. 한자하고 한문은 또 다른 세계다. 한자는 한 글자가 하나의 정부(政府)다. 하나의 글자에 하나의 뜻만 고정되지 않고 맥락에 따라 여러 의미를 갖는다. 같은 한자에 상반되는 뜻이 들어 있기도 하다. 이인삼각(二人三脚)처럼 뒤뚱뒤뚱 걸어가는 세 글자 이하의 단어에 산술적으로 서너 자 더했을 뿐인데 그 난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도무지 요령부득인 5언절구, 7언율시의 구절들.옥편을 뒤적거리면서 밤하늘을 자주 생각한다. 갈피마다 흩어진 한자는 저 하늘의 반짝거리는 뭇별을 닮았다. 고래(古來)로부터 숱하게 뿌려진 별 몇 개가 연결되어 별자리는 만들어졌다. 북두칠성, 오리온, 큰곰자리, 전갈자리가 다 그렇다. 한자를 연결해서 구체(具體)와 심오(深奧)를 빚어내는 저 성좌(星座)에 이..
2003년 뉴질랜드계 자산운용회사인 소버린과 (주)SK가 경영권 분쟁을 벌인 적이 있다. 이른바 소버린 사태다. 당시 소버린은 SK 주식을 싼 가격에 매집해 14.99%의 지분을 확보했다. 단일주주로는 최대주주로 등극한 소버린은 그해 11월 이사진 총사퇴, 재벌 구조 해체, 최태원 일가의 퇴진 등을 요구했다. SK 측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주식 확보에 나섰다.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경영권 확보에 실패한 소버린은 2005년 7월 SK 주식을 모두 외국 투자기관에 팔았다. 매각차익은 1조원에 가까웠다. 이를 계기로 외국계 투기자본의 ‘먹튀 방지책’으로 차등의결권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됐다.차등의결권이란 ‘1주 1의결권’ 원칙에 예외를 인정하여 경영권을 보유한 대주주의 주식에 보통주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정치는 제도화된 갈등이다. 그리고 갈등에는 전략이 필요하다. 전략 없는 갈등은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우왕좌왕하다가 뒤통수 맞기 십상이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갈등 전략이 필요한 영역 중 하나가 비례정당이다. 자유한국당은 공언했던 대로 비례정당 창당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작년 12월에 이루어진 조사들에 따르면 기존의 정당 지지율을 적용해서 한국당 지지자들이 지역구에서는 한국당 후보를 찍고 정당투표에서는 비례정당을 찍는다고 가정할 경우 한국당의 실질적 의석은 지금보다 10석 이상 늘어나고 1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게임이론의 세계적 석학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토머스 셸링이 쓴 이라는 책을 보자. 어떤 경우에는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누구나 암묵적으로 합의하는 균형점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보자. ..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의 증가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다. 27일 오후 8시30분 현재 중국과 홍콩, 대만 등 중화권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확진자는 2844명, 사망자는 81명으로 집계됐다. 하루 전보다 각각 869명, 25명이 늘었다. 중국 최대 명절 춘제(春節)를 기해 감염증 환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는 현실이 됐다. 춘제 기간 신종 코로나의 확산 속도가 2003년 사스 때를 능가하면서 ‘사스 공포’가 재현될 조짐마저 있다. 한국에서는 감염증 확진자가 설 연휴인 24일과 26, 27일 한 명씩 발생하면서 모두 4명이 됐다. 이 중 세번째와 네번째 감염자는 중국 우한으로부터 입국 당시에는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가 며칠이 지난 뒤에 확진 판정을 받아 2차 감염..
지난 25일 설 당일 저녁 강원도 동해시의 한 펜션에서 가스폭발이 일어나 일가족 6명이 숨지는 등 9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가 일어났다. 이름은 펜션이었지만, 실상은 숙박업소로 등록되지 않은 무허가 영업장이었다. 이 같은 사실을 모른 채 가족과 명절을 보내기 위해 찾은 곳이 관리의 사각 속에 참변의 현장이 된 것이다. 평소 우애가 돈독했던 중장년 자매들과 그 배우자들이 최근 아들을 잃은 형제를 위로한다고 모였다가 사고를 당해 안타까움을 더한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항을 종합하면 허점과 불법이 키운 인재였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문제의 펜션은 원래 냉동공장으로 세워졌다가 20여년 전 2층 일부를 다가구주택으로 변경하며 ‘근린생활시설 및 다가구주택’으로 등록됐고, 10년째 불법 펜션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
새해를 병원에서 맞았다. 병실에는 네 명의 환자와 간병인, 보호자들이 생활을 하고 있다. 앞자리의 아주머니는 중국서 왔는데 식당에서 일하다가 다리가 으깨졌다. 이 때문에 한국 온 지 15년 만에 처음으로 일을 쉬어본다. 그 옆 침대에는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몸으로 들어와 얼굴에 겁이 가득한 할머니가 있다. 자식들은 잘 오지 못한다. “둘째 아들인데, 오늘 오려고 했는데 일이 밀려서 못 온대.” 전화가 올 때마다 간병인이 귀에 대고 소리를 친다. 남의 돌봄을 받는 것이 낯선 할머니는 간병인도 어려워한다. 할머니의 맞은편 침대에 있는 분은 반대로 간호사도 아랫사람 부리듯 호령한다. 위아래 서열이 분명해서 요구사항이 있으면 간호사한테는 ‘지시’하고, 의사한테는 ‘부탁’한다. 돈의 힘이지 싶었는데, 식당 장사로..
설 연휴가 끝났다. 여야 정치인들이 전하는 설 연휴 민심을 요약하면 “경제가 어렵다”는 것이다. 대다수 시민이 느끼고 있는 바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라고 발표했다. 1980년 석유파동, 1998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비견될 정도다. 벌써부터 정부가 제시한 올해 성장 목표인 2.4%를 달성할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 체감 경기가 어렵기만 한 시민들에게 각종 경제지표가 호전되고 있다는 정부 발표는 딴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더불어민주당 수도권의 한 중진의원은 “서민경제, 체감경기는 악화한 것 같다. 중도층의 정치 불신이 심각하다. 불안하다”고 했다. 가족과의 덕담은 잠시, 걱정이 더 많았던 올 설이다. 중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