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철이 다가왔다. 전국 곳곳에서 ‘사랑의 김장 나누기’ 행사도 벌어진다. 마음의 추위가 유난히 심할 것 같다는 올겨울, 맛깔스러운 김장김치가 많은 사람에게 훈훈한 기운을 불어넣어 줬으면 좋겠다. 김장 하면 무엇보다 먼저 ‘젓갈’이 떠오른다. 젓갈은 보통 어패류를 이용해 담그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토끼·사슴·소 등의 육고기로도 담근다. 토해, 녹해, 탐해, 치해, 담해 등이 그것이다. 토해는 토끼고기, 녹해는 사슴고기, 탐해는 소의 어깨살, 치해는 꿩고기, 담해는 돼지고기나 노루고기로 담근 젓갈이다. 이 중 토해와 녹해는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올라 있다. 또 담해는 한국고전용어사전이 “돼지나 노루 고기를 이용해 만든 젓갈”로 설명한 반면 표준국어대사전은 “쇠고기를 썰어 간장에 넣고 조린 반찬”이라..
정치에 대한 기대가 본래 낮았지만, 이건 해도 너무 한다. 온 국민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 참사의 아픔을 나누고 있는 와중에, 정치인들은 그저 권력 유지를 위한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다. 소시오패스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수많은 희생자들 앞에서 불리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감언이설과 책임 회피로만 일관할 수 있을까 싶다. SPC그룹의 청년 노동자가 산재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민 앞에서 표명한 애도가 무색하게, 기업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무력화를 논의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올여름 폭우 속에서 참사를 피하지 못했던 반지하 주택 일가족의 죽음은 이들에게 더 이상 기억조차 되고 있지 않는 듯하다. 기만을 일삼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 국가가 얼마나 무능해질 수 있는..
이따금 친구들의 삶을 생각하면 강한 햇볕이 정수리 위로 쏟아질 때처럼 어지럽다. 얼마나 찬란하거나 눈부신지 알아채는 건 나중 일이다. 우선 나는 이마에 손을 짚으며 놀라기 바쁘다. 너희 정말 이걸 해냈다고? 그럼 친구들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듯이 웃는다. 그들의 삶은 직접 택한 고생들로 가득 차 있다. 친구 중 한 명은 편집자인데 허구한 날 서울과 강원도를 오간다. 전화를 걸면 인제군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졸다가 받곤 하는 것이다. 거기엔 소들이 있다고 한다. 친구를 비롯한 ‘동물해방물결’의 활동가들이 구조한 소들이다. 소를 왜 구조하느냐고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소가 도랑에 빠지기라도 했나? 혹은 작년 여름처럼 홍수를 피해 지붕 위로 올라갔나? 공장식 축산 소를 구조하는 변혁 사실 이 땅의 모든 소는..
국제공항에서 18년간 노숙하며 영화 제작에 영감을 준 이란 남성 메헤란 카리미 나세리가 7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생전에 나세리가 톰 행크스 주연 영화 포스터를 바라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04년 영화 은 동화 같은 드라마다. 로 유명한 배우 톰 행크스가 주인공이다. 극중 가상의 동유럽국 크라코지아 사람인 그가 비행기를 탄 새 일어난 고국의 쿠데타로 인해 미국 뉴욕 JFK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무국적자가 돼 9개월 동안 공항에 머물러 지내는 이야기다. 하루아침에 오갈 데 없는 고립무원의 신세가 되는 상황 설정은 심각한데 영화는 따뜻하다. 그를 응원하는 공항 사람들의 인간미 넘치는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결국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나 집에 가요”라는 행복한 말로 영화가 끝난다. 이..
개그우먼 김민경씨가 ‘오늘부터 운동뚱’ 프로그램에서 샷건 실탄 사격을 하고 있다. 코미디TV 화면 캡처 개그우먼 김민경씨가 태극마크를 달았다. 오는 19일부터 태국에서 100여개국 1600여명이 겨루는 국제사격대회 ‘2022 국제실용사격연맹(IPSC) 핸드건 월드 슛’에 출전한다. 1년 전 샷건을 처음 쥐던 날, 하늘의 나는 과녁까지 백발백중 맞히던 그가 마흔한 살 늦깎이로 국가대표가 된 것이다. 김씨의 천부적 재능은 2020년 ‘먹방’인 의 5주년 기념 건강프로젝트 스핀오프 을 통해 뒤늦게 발견됐다. “운동이 너무너무 싫어서 숨쉬기 말고는 해본 게 없다”던 그는 첫회 만에 ‘로보캅’ 별명을 얻었다. 유도, 권투, 이종격투기, 야구, 축구, 골프까지 배우는 즉시 척척 해내는 그를 두고 “태릉이 빼앗긴 금..
할 말이 많은데 글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냥 겪은 순서대로 적는 것도 한 방법이다. 금요일.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참사에 대한 탄식으로 뉴스는 도배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안타까운 소식이 하나 더 더해졌다. 봉화의 아연광산 매몰사고 현장. 구조대는 동굴에 구멍을 뚫고 음식과 담요와 야광등을 내려보냈다. 내시경과 마이크로 당신들을 잊지 않고 구조하러 간다는 지상의 신호를 방송한 뒤, 혹 응답이 있을까, 청진기처럼 귀에 갖다대기를 반복하였다.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였다. 언젠가 태백의 석탄박물관에서 인상적인 전시자료를 본 적이 있다. 탄광촌에서는 남편이 출근하면 얼른 섬돌의 신발을 집으로 향하게 돌려놓는다. 오늘도 무사히 집으로 귀가하시라는 바람을 그렇게 돛단배 같은 신발에 담아놓는 것이다. 봉화의 가족들도 ..
머릿속이 아득하고 마음이 혼란스럽다. 이태원 참사로 7일 기준으로 156명 사망하고 197명이 부상을 당했다. 지난달 29일 오후 10시15분부터 30일 0시56분까지 119에 도움을 요청한 신고는 100건에 달하며, ‘압사’란 단어를 직접 언급한 신고는 19건이나 된다. 오후 10시15분부터 약 10분 동안 14건의 신고가 들어왔고, 10시21분 이후에 들어온 6건 신고는 글로 옮길 수도 없을 만큼 참혹하다. 그런데 용산경찰서장은 차량이동을 고집하다 오후 10시55분을 넘어 이태원 파출소에 도착했다. 길이 막혀 차량에서 내려 참사 현장으로 오는 서장의 모습은 다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이 아니었다.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걷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뿐 아니다.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 상황관리관의 보고 태만..
이태원에서와 같은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의외로 쉽다. 여태껏 했던 것처럼 하면 된다. 80명 정도의 1개 기동대만 배치해서 행렬의 원활한 흐름만 확보하면 된다. 늘 해오던 일이니 어려울 게 없다. 다만 2022년 10월29일만 예외였다. 한국 경찰은 100만명이 넘는 인파도 안전하게 관리할 실력을 갖추고 있다. 최루탄 한 방 쏘지 않아도 된다. 시민 역시 경찰의 안내를 잘 따라준다. 거친 말이 오가는 집회는 많지만, 폭력집회나 행정안전부 장관이 말하는 ‘소요’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니 이태원 참사 이후 우리에게 남은 숙제는 이례적인 일탈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 까닭을 짚는 게 핵심이다. 이를 위한 열쇳말은 ‘안전’ ‘마약’ ‘경호’다. 안전. 윤석열 정권 출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