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병 뚜껑을 본 적 있나요’라고 물으면 아마 뚜껑에 써진 브랜드나 색을 살필 것이다. 그러나 ‘쓰레기 덕후’들은 병뚜껑 안쪽에 고무나 실리콘이 껴 있는지부터 찾는다. 재활용 4대 원칙은 ‘비행분석’(비우고 헹구고 분리하고 섞지 않는다)인데 이중 소재 병뚜껑은 이미 재질이 섞여 있는 상태라 재활용이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중 병뚜껑을 사용하는 ‘나랑드사이다’에 열렬히 편지를 썼다. 다른 탄산음료처럼 재활용 가능한 병뚜껑으로 교체해달라고 말이다. 며칠 전 동아오츠카는 나랑드사이다를 단일 재질 병뚜껑으로 교체한다고 응답했다. 그런가 하면 ‘카카오임팩트재단’에서는 회의 음료를 주문하면 일회용컵도 딸려 오는데 방법이 없냐고 물었다. 의지가 있어도 대안이 없다니! 우리는 다회용컵과 음료를 싸 들고 회의장에 ..
꽃다운 청춘들이 쓰러졌다. 8년 전 세월호의 아픔이 완전히 아물지도 않았는데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생명들이 또 허망하게 삶을 마감했다. 이번에는 서울 도심 한복판 이태원이었다. 모처럼 즐기러 나간 핼러윈 축제는 ‘악몽’으로 변했다. 숨이 턱 막혔다. 20대와 10대인 두 딸을 키우는 입장에서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가족을 잃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 있을까. “내 딸이 저기에 갔었더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상상이 머리를 스쳤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일어난 지 열흘도 더 지났다. 그러나 정부가 보여준 수습 과정을 살펴보면 부실하기 짝이 없다. ‘도대체 우리 곁에 국가가 있긴 한 걸까.’ 분노가 스멀스멀 치밀어 오른다. 참사 다음날 윤석열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참담하다. 일어나선 안 될..
이태원 참사로부터 10여일이 지났지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참사의 존재를 부인하려는 심리적 기제가 내 안에 있나 싶을 정도다. 처음 이삼일은 기사를 열심히 검색하면서도 제목만 보았을 뿐 본문까지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유족이나 생존자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지난 열흘간 제정신이었던 것은 정부관료들과 보수언론뿐이었던 것 같다. 법적 책임을 모면하고 정치적 위기를 차단하는 데 그야말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작가인 스탕달은 훌륭한 철학자가 되려면 돈 많은 은행가에게 배울 것이 있다고 했다. 바로 사태를 냉정하게 보는 것이다. 어디 철학자만 그럴까. 세상을 살 만하게 바꾸고자 한다면, 아니 세상이 더 나빠지지 않게 만들고 싶다면, 돈을 세는 자에게 뒤지지 않을 정..
(45) 이화여자대학교 앞 거리 1971년, 2022년 이화여대 앞거리.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요즘 서울에서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어디일까? 강남역, 대학로, 압구정동, 홍대 앞을 비롯해 최근에는 서촌, 성수동, 을지로 등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젊은이의 거리라면, 단연 명동과 종로, 그리고 신촌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서강대, 연세대, 이화여대, 홍대가 모여 있는 신촌은 청춘의 집합소였으며, 그중에서도 ‘이대 앞’은 양장점과 구두가게가 늘어서 있고 최신 유행을 선도하는 멋쟁이들이 모여드는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공간이었다. ‘이대 앞’이라고 하면, 보통 이화여자대학교 정문에서 지하철 이대역에 이르는 거리를 가리킨다. 이화여대 정문 앞을 찍은 1971년의 사진을 ..
정부가 정한 국가애도기간은 끝났지만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민적 슬픔과 위로는 여전하고 우리 모두의 마음 깊은 곳에 생긴 상처는 쉽게 아물 수 없을 것 같다. 참사 수습과 더불어 안타까운 사연들이 연일 보도되는 가운데 속속 드러나는 책임 있는 이들의 그날 행적은 우리가 지금 21세기에, 그것도 세계 10대 선진국에 살고 있는 것이 과연 사실인가 하는 자괴감을 갖게 한다. 그간 한국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던 세계도 놀라긴 마찬가지다. 참사 당일부터 이태원 상황을 전 세계에 속보로 내보낸 CNN은 한국이 실시간 군중 통제를 하지 못한 데 대해 당국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한국에서 발생한 이번 참사에서 행정부의 신뢰 회복이 새 정부의 주요 화두가 되고 있다는 가디언의 지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