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사령부가 주한미군에 소속되어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오는 4월1일부로 무급휴직을 시행할 수 있다고 통보했다. 올해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일찍 마무리되지 않으면 이런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은 무급휴직 시 60일 전에 통보하는 절차를 밟는 것뿐이라고 했지만, ‘보도자료’를 통해 이런 방침을 알린 것은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압박하려는 의도임이 분명하다. 한국인 노동자들을 볼모로 잡아서라도 더 많은 방위비를 받아내겠다는 미국의 발상이 참으로 치졸하다. 미국은 협상 초기 한국에 종전보다 5배나 많은 50억달러(약 5조8000억원)를 요구한 이래 한국을 줄곧 압박하고 있다. 양국 대표단이 그동안 협상을 통해 이견을 꽤 좁혔다고 하지만 미국은 지금도 분담금 증액의 기본 논리를 고집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비상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29일 중국 내 신종 코로나 확진자는 6000여명으로 2003년 중국인 사스 환자 수를 넘어섰다. 가파른 사망자 증가세 역시 꺾일 기미가 없다. 독일·일본·베트남 등에서는 중국 체류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신종 코로나 증상이 확인돼 2차 감염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지난 27일 4번째 환자 발생 이후 더 이상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2차 감염자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 없다. 확진자들과 접촉한 사람들이 추가로 확인되면서 유증상자들에 대한 검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는 국내에서 2차 감염자 발생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30일과 31일 중국 우한에 전세기를 투입해 교민..
지난해 설 연휴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과로사 소식이 알려진 것이 꼭 1년 전이다. 연휴기간 고향에 가기로 했지만, 밀려드는 업무에 퇴근도 못하고 집무실 책상 앞에 앉은 채 발견된 그의 죽음에 온 국민이 망연자실했다. 올 설 연휴 직전엔 전국 17곳 권역외상센터와 닥터헬기 도입의 산파역을 했던 이국종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아주대병원 교수)이 사의를 표명했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이 교수는 지난 21일 라디오 방송에서 “이번 생은 망했다. 완전히”라며 “죽어도 한국에서 다시 이것(외상센터 일) 안 한다”고 했다. 깊은 절망이 느껴졌다. 두 사람은 우리의 의료현실에선 보기 드물게, 명예와 출세도, 가족과의 시간도 포기한 채 험한 일이 기다리는 응급의료 개선에 인생을 걸겠다고 다짐한 의사들이었..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전염병은 ‘스페인 독감’이다. 1918년 창궐해 2년 만에 당시 세계 인구 16억명 중 6억명 이상이 감염되었고, 5000만~1억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1차 세계대전 참전국에서는 언론을 엄격히 통제하고 검열하던 상황이어서 중립국 스페인 언론만이 사태를 상세히 보도했다. 스페인 언론 덕분에 세계는 이 병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래서 ‘스페인 독감’으로 명명됐다. 진실 보도의 대가치고는 고약한 결과다.스페인 독감은 예외적인 사례다. 대개 유행성 질병은 첫 발생 지역의 이름을 따서 불렸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유행한 최초의 사례로 꼽히는 1833년 중앙아시아 독감을 필두로 1888년 중국 독감, 1957년 아시아 독감, 1968년 홍콩 독감, ..
명절이나 무슨 대소사에 기웃거리는 일에서 자유로워졌다. 세상에 남은 인연이 있다면 잔정을 느끼는 사이, 잔정을 나누는 사이뿐. 가령 물을 한 컵 달라고 하면 컵받침에 건네주는 손길이라든지, 어디 멀리 떠나는 여행길에 여비를 쥐여주는 거친 손의 친구에게 마음이 스민다. 그 친구를 위해 선물을 고를 때 가슴이 뛴다. 잔핏줄에 잔정이 돌아야 세상 살맛이 생겨난다. 중국도 시골로 갈수록 정이 많고 눈물이 많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도 술을 권하고 담배를 권한다. 어떤 할머니는 백세쯤 되어 보였는데, 길에서 쪼그려 담배를 권하는 이들을 보고 나무랐다. “어이 젊은이들. 담배가 무엇이 좋다고 여태 피우나. 나도 작년에 끊었다네.” 건너편 담벼락엔 정이 무척 많은 할아버지가 서 계셨다. 마침 정거장 곁이어서 담벼..
구기종목 가운데는 ‘민주적인’ 스포츠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야구는 타석에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3개의 스트라이크만 허용된다. 때로 판정시비는 따르지만 삼진아웃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뒤끝이 깔끔한 편이다.사실 삼진아웃은 생활 곳곳에서 통용돼왔다. 음주운전이 일례다. 이전 도로교통법은 면허정지 수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05% 이상~0.1% 미만으로 음주운전을 하다 3차례 적발되면 운전면허를 취소했다. 그러나 이 기준이 너무 관대하다는 비판이 많았다. 고 윤창호씨 사건을 계기로 음주운전 2차례만으로도 면허를 취소하는 ‘투 스트라이크 아웃’으로 규정이 바뀌었다.허위·미끼 매물이 판을 치는 중고자동차 시장도 그렇다. 2016년 정부는 중고차 매매업체가 허위매물 등으로 3차례 적발되면 면허를 빼앗는..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법은 국가의 정체성을 밝혀 나아갈 방향을 큰 틀에서 제시하기도 하고,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기도 한다. 우리 모두가 따라야 할 당위의 가치가 담긴, 사람이 만든 법칙이 바로 우리가 얘기하는 ‘법’이다. 약하고 강한 징벌을 받을 수 있지만, 어쨌든 어기는 것이 가능은 하다. 어기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면 우리는 법을 만들지 않는다. 자동차의 공중 비행을 규제하는 법을 만들 이유가 없다. 법이 필요한 이유는 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이 따르는 법칙은 다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어길 수는 없다. 손에서 가만히 놓은 물체가 땅을 향해 아래로 떨어진다는 자연법칙은 당위가 아닌 사실의 법칙이다. 내가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생각만으로 돌을 위로 띄울 수는 없다. 사람이 만든 당위..
본가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유튜브를 배회했다. 김해까지 5시간 여정을 하다보면 스마트폰에 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개별 영상들은 5분, 10분 정도의 짧은 길이이지만 영상과 영상을 넘나들면 금방 시간이 사라진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주로 나의 관심사인 동물, 게임, 만화, 소설, 가요 등의 영상을 보여주는데 가끔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요즘 인기있는 영상이라며 관심사 바깥의 영상들을 추천할 때가 있다. 그사이에서 가장 빈도가 많은 것은 소위 ‘사이다’로 불리는 영상이다.‘사이다’는 ‘고구마’를 잔뜩 먹어 목이 메이고 답답한 상황을 청량하게 풀어주는 속 시원한 서사를 통칭해 이야기한다. 사이다 서사의 예시는 이렇다. 마음이 유약하고 순진해 월급도 제대로 못 받고, 선후배들의 등쌀에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