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법이 통과되었다. 기다렸다는 듯 진보와 보수가 다시 격렬하게 다투기 시작했다. 진보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움켜쥐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왔던 검찰을 시민사회의 통제 아래 둘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다고 환영한다. 검찰과 공수처가 서로 견제하며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제도의 틀을 마련했다며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감격한다. 반면 보수는 청와대와 정부·여당이 개혁을 빌미로 시민사회의 통제 아래 있는 검찰을 권력의 도구로 전락시킬 거라며 비판한다. 검찰과 경찰이 범죄를 인지한 단계부터 공수처에 보고해야 할 의무를 규정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이상인 견제와 균형을 무너뜨렸다고 비판한다. 언뜻 진보와 보수가 다른 주장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둘 다 검찰에 대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검찰은 보편적 연..
2020년은 새로운 십년대가 시작되는 해이자, 100년 단위로 끊자면 ‘대한민국 시즌 2’가 시작되는 첫해이다. 그만큼 새해에 큰 의미를 두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작년 내내 온갖 우여곡절을 겪었던 선거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 등이 해가 바뀌기 직전에 국회를 통과했다. 두 법안 모두 20, 30년을 넘긴 해묵은 개혁 과제였지만, 번번이 기득권의 저항 앞에 좌절되거나 왜곡되곤 했다. ‘촛불혁명’으로 큰 전기가 마련된 셈이다. 그러므로 개정 선거법이 애초의 구상보다 후퇴했다고 실망할 이유가 없다. 또 공수처법에 우려할 점이 있더라도 군사정권 종식 이후 막강한 권력으로 변질된 정치검찰의 폐해에 비할 수는 없다. 새 제도를 운용하다가 발견되는 허점이나 미흡함은 사회적 논의..
추미애 전 민주당 대표가 2일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다. 인사청문회가 끝난 지 사흘, 국회 재송부 기한 종료 7시간 만에 나온 문재인 대통령의 새해 첫 인사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현충원 참배에 추 장관을 참석시켰고, 오후엔 임명장을 수여했다. 그야말로 ‘속전속결’이다. ‘조국사태’에 마침표를 찍고,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명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검찰 스스로 개혁의 주체가 돼야 한다. 수사 관행이나 방식, 조직문화까지 혁신적으로 바꿔내는 개혁이 안착될 수 있도록 잘 챙겨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신년인사회에서도 “새해에는 확실한 변화를 만들어내겠다. 권력기관 개혁, 공정사회 개혁이 그 시작”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발언은 추 장관을 향한 엄중한 주문이다. 추 장관 앞에 ..
북한이 지난 1일 공개한 노동당 중앙위 제7기 5차 전원회의 결정서에는 ‘북남(남북)관계’ 용어가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았다. 지난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북남관계를 10차례 언급한 것과 대조적이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존재감 약화와 한·미 공조의 틀에 갇혀 재량권을 발휘하지 못하는 한국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반영됐을 것이다. 향후 정세 변화에 따라 대남정책의 조정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 일부러 넣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지만, 북한이 현시점에서 남북관계를 주요 변수로 간주하지 않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2일 정부 신년합동인사회 인사말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민의 열망으로 반드시 ‘상생 번영의 평화공동체’를 이뤄낼 것”이라고 했다. 문..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여야 의원 등 총 37명을 재판에 넘겼다. 수사를 시작한 지 8개월 만이다. 박근혜 국정농단 같은 대형 수사도 3개월 만에 마무리했던 것에 비하면 눈에 띄게 지체된 수사였다. 검찰은 수사 규모가 방대해서 시일이 걸렸다고 하지만, 군색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비록 ‘늑장 수사’란 비판을 받았지만, 검찰이 ‘동물 국회’를 연출한 의원 등 관련자들을 무더기 기소한 것은 고질적인 국회폭력에 철퇴를 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당시 폭력사태를 총지휘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나경원 전 원내대표를 기소 대상에 포함시킨 판단은 평가할 만하다. 국회 선진화법 위반은 유죄가 확정되면 5~10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되는 중대한 범죄다. 4월 총선 공천 과정을 앞두고 ..
이젠 2020년이 왔고, 신춘문예 심사를 마친 선생님들은 심사평을 송고한 후 쉬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몇 년 사이에 가득했던 사고들과 대체 매체들의 확장으로 문학이 왜소해진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신춘문예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문청들은 문학의 자장 안에서 여전히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으니까요. 올해 키워드가 퀴어와 SF, 비인간 캐릭터 등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옵니다. 오늘 이렇게 지면을 빌려 펜을 든 것은 기사를 보고 든 한 가지 우려 때문입니다. 선생님. 장르의 코드를 비평할 때 게으르게 비평해 놓으신 건 아니겠지요. 다른 문학을 비평하듯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치열하게 고민해주셨겠지요. 제발 그러셨으면 합니다. 저는 대학에서 장르를 가르칩니다. 이것은 20살, ..
1977년 미국에서 발사한 보이저 1호는 지금도 저 먼 우주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1990년 명왕성 정도의 거리를 지날 때, 보이저 1호는 카메라를 돌려 우리 지구가 담긴 사진을 찍어 지구로 보냈다. 사진 속 지구는 정말 작아 보인다. 의 저자 칼 세이건은 이 사진에서 얻은 영감과 통찰을 담아 을 출판하기도 했다. 눈에 잘 띄지도 않을 저 작은 푸른 점 위에서, 때로는 복작복작 싸우고 미워하고, 때로는 서로 돕고 사랑하며, 우리 모두는 짧은 삶을 산다. 태양과 지구 사이의 평균거리를 1천문단위(AU)라 한다. 보이저 1호는 인류가 우주로 보낸 모든 것 중 현재 가장 멀리 있어, 약 150천문단위의 거리에 있다. 지구에서 명왕성까지 거리의 3배가 훌쩍 넘는 거리다. 이 정도로..
우주정거장에서 본 1월1일의 지구는 역동적이다. 날짜변경선 바로 앞 뉴질랜드 북섬의 기즈번에서 시작된 ‘카운트다운-불꽃놀이-해맞이’는 서쪽으로 새해 첫날을 한바퀴 돈다. 그 앞뒤로 릴레이처럼 이어지는 게 또 있다. 국가·조직의 리더들이 내놓는 신년사(新年辭)이다. 세계 이목을 붙잡는 신년사는 근래 북한의 몫이었다. 국정의 축과 방향을 유달리 신년사에 담고, 대외 메시지의 지속성(사이클)이 긴 까닭이다. 2018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창 올림픽 참가” 의사를 비치며 한반도 해빙을 연 것도 신년사였다. 지난해엔 7~8개 마이크가 세워진 딱딱한 단상을 벗어나 양복 입고 집무실 소파에 앉아 새해 메시지를 30분간 낭독했다. ‘정상국가’ 이미지를 한껏 과시한 해였다. 그렇게 2013년부터 1월1일 오전 9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