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이에서 가지가 갈라지고 위로 오르면서 촘촘하지만 더 가는 줄기를 가진 느티나무를 보며 나는 뿌리에서 물관을 거쳐 비상하는 물을 상상한다. 물이 줄기의 가장 높은 곳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위로 오를수록 점점 더 커지는 물관의 저항을 무너뜨려야 한다. 나무는 줄기와 물관의 표면적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이 난제를 해결했다. 본줄기의 단면적과 거기서 갈린 두 줄기 단면의 면적이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일찍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이런 사실을 파악하고 그림으로 기록을 남겼다. 아직 잎이 나지 않은 느티나무 형상을 머릿속에서 거꾸로 뒤집어 보면 목 아래 기관에서 갈라지는 기관지 모습이 떠오른다. 기관은 지름이 약 1.5㎝이며 후두 아래로 10㎝ 정도를 내려간 다음 좌우 기관지로 갈라진다. 그 기관지는 15~23차례..
“내가 저 약들이랑 있으면 하루가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는데… 저것들이 없으면 내가 아파서 잘 수가 없다고….” 최은미의 장편소설 (문학동네, 2017)에서 보건소 약무주사보인 송인화는 방문 복약 상담을 위해 독거노인의 방을 찾아다닌다. 방에 홀로 있던 작고 마른 노인이 내놓은 약상자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약과 부작용이 심해서 판매 금지된 치료제가 수두룩하다. 아픈 노인은 자신의 유일한 위안인 약을 빼앗길까봐 송인화에 대한 경계의 태세를 늦추지 않는다. 혈압약의 경우에는 꼭 하루에 한 번만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아시냐는 송인화의 말에 노인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런 거 몰라. 그냥 아플 때마다 먹어.”는 동해안의 ‘척주’라는 가상 도시를 배경으로 핵발전소 유치, 석회광산과 시멘트회사, ‘사이비’ 종교집단 약..
3월의 바람 속에 1 어디선지 몰래 들어 온 근심 걱정 때문에겨우내 몸살이 심했습니다흰 눈이 채 녹지 않은 내 마음의 산기슭에도꽃 한 송이 피워내려고바람은 이토록 오래 부는 것입니까 3월의 바람 속에 보이지 않게 꽃을 피우는 당신이 계시기에아직은 시린 햇빛으로 희망을 짜는 나의 오늘 당신을 만나는 길엔늘상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살아있기에 바람이 좋고 바람이 좋아 살아있는 세상혼자서 길을 가다 보면 보이지 않게 나를 흔드는 당신이 계시기에 나는 먼 데서도 잠들 수 없는 3월의 바람어둠의 벼랑 끝에서도 노래로 일어서는 3월의 바람입니다 - 시집 에서 3월의 바람 속에 2 필까 말까아직도 망설이는 꽃의 문을 열고 싶어바람이 부네열까 말까 망설이며굳게 닫힌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싶어바람이 부네쌀쌀하고도 어여쁜 ..
바닷가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그런지 답답한 일이 생기면 바다에 성큼 가고 싶다. 무엇보다 나는 바닷소리가 좋더라. 음반더미 속에 파묻혀 살며 지내지만, 미안하게도 내 영혼을 씻겨주는 바닷소리만 못하다. “만일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을 불러 모아 목재를 가져오게 하거나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눠주는 등의 일부터 하려들 것이 아니다. 대신 그들에게 저 넓고 끝없는 바다를 보여주어라.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주면 기꺼이 배를 만드는 데 손을 거들 것이다.” 생텍쥐페리의 잠언이다. 바다를 깊이 만난 사람과 만나보지 않은 사람의 차이란 무엇일까. 말꼬리 잡길 좋아하고 비뚤어진 사람은 무슨 말을 해도 배배 꼬여서 동의하지 않고 어깃장을 놓을 게다. 바다를 모르는 사람에게 바다를 소개하는 말은 이처럼 설..
대구에서 가장 큰 시장인 서문시장은 조선 중기부터 형성됐는데 옛 이름은 대구장이다. 조선시대 평양장, 강경장과 함께 전국 3대 장터였다. 대구읍성 북문 밖에 있던 장터가 1920년대 대구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서남쪽의 현재 위치로 이동해 서문시장으로 불리게 됐다. 약 2만7000㎡ 대지에 점포 4000여개가 들어서 있다. 원단시장이 유명하지만 한복, 의류, 그릇, 청과, 건어물 등 없는 게 없다. 시장골목 한복판에 있는 먹거리 좌판은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칼국수와 ‘납짝만두’(납작만두·토박이들은 ‘납딱만두’라고도 부른다)는 추천 메뉴다. 2016년 여름부터는 야시장을 개장해 밤마다 시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서문시장은 대선, 총선 때마다 대구 민심을 얻으려는 정치인들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사무실 환경은 그야말로 미세먼지가 가득하다고 보면 된다. 그 안에서 끊이지 않는 콜을 받으면 금세 목이 건조해져서 따갑다.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를 보장받지 못할 만큼 옆 사람과 거리는 턱없이 좁아서 한 명이 감기에 걸리면 전염되기 쉽다. 독감에 걸려 며칠 고생하다가 겨우 나았는데 주위 직원들이 그대로 옮아 굉장히 미안했던 적이 있다. 어디 그뿐인가, 계속 앉아 있다 보니 허리 통증에 시달리는 상담원이 많다. 통화하는 동료들을 보면 다들 거북목이라 조금 웃기면서도 슬프다. 늘 모니터를 쳐다보느라 안구건조증은 말할 것도 없고, 점심을 먹고 바로 앉아 있으니 소화불량을 달고 산다. 몸보다 더 아픈 게 마음이다. 우울과 불안 증세로 퇴사하는 동료를 종종 본다. 친한 선배는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데, 전화를 받다가..
코로나19 국내 신규 확진자는 18일 0시 기준으로 93명 늘어나 나흘 연속 두 자릿수를 유지했다. 대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이날 추가로 대규모 집단감염이 발생했지만 뚜렷한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대신 조금씩 늘어나는 해외 유입 확진자를 눈여겨봐야 한다. 이날 0시 현재 해외 유입 추정 확진자는 65명이다. 하루 전보다 2명 늘어났다. 그중 유럽발 확진자(32명)가 중국(16명)보다 두 배 많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유럽이 중국을 넘어 새로운 코로나19의 주무대로 떠오르고 있는 데 따른 현상이다. 유럽발 입국자를 철저히 관리하지 못할 경우 국내에서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될 수 있음을 뜻한다. 정부가 코로나19 역유입 차단에 각별히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이유다. 정부가 중국과 이탈리아, 이란 등을 대상으로 ..
정부가 18일 11조7000억원에 달하는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다. 남은 것은 신속하고 효율적인 집행이다. 이번 추경은 감염병 대응 인프라 확충과 재난지역의 소상공인 부담경감, 저소득·취약계층 지원이 골자다. 국회 심사 과정에서 재정지출을 늘렸다고 하지만, 코로나19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예산은 3조여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저소득·노인층 지원이 대부분으로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자영업자·비정규직 등에 대한 직접지원은 빠졌다. 추경 규모는 턱없이 적고, 지원 대상은 포괄적이지 못하다. 눈에 띄는 것은 재난 취약계층에 대한 지자체들의 발빠른 지원대책이다. 지난주 전주시가 맨 먼저 취약계층 5만명에게 52만원씩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기로 하자 강원도가 도내 소상공인 등 30만명에게 40만원씩 생활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