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0일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타난 이후 정부는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움직였고, 효과는 곧 나타났다. 예전 메르스 때와 같은 혼란은 없었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벗기 시작했고, 지난 2월13일 대통령은 국민들의 불안심리를 진정시키고자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다”라고 서둘러 선언했다. 대통령의 말은 현실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월18일, 31번 환자가 ‘슈퍼 전파’로 등장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그 뒤 대구와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신천지 교인들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대통령은 2월23일 위기경보를 ‘경계’에서 ‘심각’으로 격상했다. 3월2일 오전 현재 확진자는 4200명을 넘어섰다. 코로나19 사태로 일상은 심각하게 위축되었거나 정지되기까지 했다. 입원하거나..
“코로나 때문에 이번에 교육부 지침이 내려왔다면서 학원이 휴원했다. 휴원하면서 원장이 따로 불러 해당 기간 무급휴직 합의서를 써달라고 해서 썼는데, 써놓고 보니 억울하다. 나는 한 달 겨우 벌어 먹고사는데, 휴원이 연장될지도 모르고 불안하다.” 대형 사립어학원 운전기사로 일하는 70대 남성이 하소연했다. 코로나19 위기경보가 심각으로 격상된 이후, 관련 노동상담도 잇따른다.이분은 그래도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어제 온 60대 남성의 전화는 더 간절했다. “일용직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산다. 코로나 때문에 공사판이 다 쉬고 인력사무소에 나가봤자 허탕이다. 벌써 1주일째 아무 일도 못 하고 있다. 노동자 코로나 대응요령을 이 센터에서 알려준다는데, 혹시 일자리 좀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없나?”첫 상담은 ..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폐쇄하라.”‘코로나19’로 인하여 다시금 주목을 받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는 이렇게 갑자기 반전한다. 오랑시에 갑자기 들이닥친 페스트. 초기에는 다소 주춤하여 도시는 “저녁마다 변함없이 인파로 가득 찼고 극장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지만, 갑자기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도시를 폐쇄하라는 공문이 도착한 것이다. 그런 정도의 위기는 아니지만, 지금 우리 사회도 전대미문의 사태를 겪고 있다. 시즌 막바지의 혈전이 벌어져야 할 경기장도 텅 비었다. 아니, 물론 그곳이 직장이요 삶의 터전인 선수들은 여느 때처럼 그들의 요람이자 무덤을 지키고는 있다. 겨울 시즌 경기들이 무관중으로 치러지는 중이다. 누구는 조금 고약한 말도 한다. 무관중으로 경기를 해보니 이제야 관중 귀한 줄 알..
새 학년을 맞아 설레는 아이들로 분주했을 학교가 텅 비었다. 웃음소리와 재잘대는 이야기가 가득해야 할 교실이 고요하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빈 책상을 바라보자니 아이들은 어떻게 이 시기를 지나고 있을까 걱정된다. 개학이 더 미뤄질 수 있지만 결국 코로나19 확산은 잦아들 것이고 학교생활도 시작될 것이다. 재난을 뚫고 다시 만나면 한동안 이 사태를 화제로 삼을 것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재난을 이야기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이 일어났다. 그 당시 진상이 밝혀지고 사망자가 늘어날 때마다 분노와 허탈감에 빠졌다. 집에서 뉴스를 보고 다음날 학교 가서 몇몇 친구들과 이야기할수록 불안이 더 증폭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모두 충격을 받았지만 공적인 ..
온갖 기행으로 유명한 허경영씨는 매주 토요일 대중강연을 연다. 위치는 서울 종로3가, 서울지하철 1·3·5호선이 교차하는 주요 환승역이자 노인들의 모임터로 알려진 탑골공원이 있는 곳이다. 허씨는 2009년 7월 이후 지금까지 줄곧 이 강연회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그가 이번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정당을 하나 만들었다. 이름은 국가혁명배당금당. 그가 만든 당답게 주요 공약들이 허무맹랑하다. 온갖 명목의 현금 지급 공약과 유엔본부를 판문점으로 이전하자는 공약, ‘내수경제를 위축시키는’ 김영란법을 폐지하자는 공약 등이 있다. ‘시장경제’를 원칙으로 하는데 ‘복지국가’도 건설하겠다는 해괴한 지향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다수의 공약들이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분류된 수혜대상과 수혜조건을 강조하고 있어 현혹되기 좋다..
3월이면 문득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3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면…”으로 시작하는 ‘유관순 노래’다. 초등학교 때 배운 노래를 40년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흥얼거린다.1902년에 태어났으니 우리 나이로 치면 119세인데, 여전히 ‘누나’로 불리는 이름 유관순. ‘누나’는 의사(義士)가 아니라 열사(烈士)다. 국가보훈처는 일제강점기의 순국선열(殉國先烈) 가운데 총 등을 사용해 무력으로 싸우다 돌아가신 분을 ‘의사’로, 비폭력 저항을 하다 숨진 분을 ‘열사’로 구분한다. 광복 후에 돌아가신 분이나, 광복 전에 돌아가신 분이라도 사망원인이 병이나 노환이었다면 애국지사(愛國志士), 즉 ‘지사’로 부른다.‘누나’의 이름을 두고 ‘유관순’과 ‘류관순’ 중 무엇이 바른 표기인지 옥신각신하는 일이 많은데, 국립국어원..
2020년 어느 날. 바이러스가 도시로 스며들었다. 일본과 달리 우리는 방역에 성공했다는 낙관론이 고개를 들 즈음 바이러스가 반격을 시작했다.마스크와 손소독제가 동이 났다. 공포는 바이러스보다 더 빨리 퍼졌다. 자고 일어나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숫자를 보며 공포는 더욱 커진다. 바이러스 세상에서 감염을 피하고, 전파자가 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힘겹다. 일상은 무너지고, 갈 데라곤 집뿐이다. 지난 주말 대한의사협회는 대국민 권고안에서 3월 첫주 ‘외출 자제’를 제안했다. 이른바 ‘사회적 거리 두기’다.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에 이어 2015년 메르스가 창궐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에 대처할 별다른 방법은 없다. 개인 방역은 손 씻기, 마스크 착용, 기침 예절 준수가 전부이다. 바..
회사 1층 로비에 열감지 카메라가 설치됐다. 재택근무나 가족돌봄휴가를 택한 직원들이 적지 않다. 출근한 이들도 상당수가 마스크를 쓴 채 일한다. 나는 수시로 손을 씻고, 알코올솜으로 휴대전화와 컴퓨터 키보드를 닦는다. 호흡기가 약한 어머니에겐 자주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답답해도 외출하지 마시라’는 내용이다.코로나19 사태로 내 일상이 바뀌었다. 하지만 생계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월급은 지난달 25일 나왔고, 이달 25일에도 나올 것이다. 정규직 임금노동자의 ‘특권’을 일깨워준 이는 한 사회학자다. “한국에는 2주 공백만으로도 ‘흔들’거릴 사람이 너무나 많다.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 사람’과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은 오십보백보가 아니다. 오십보만보다. 임금노동자가 아니라서 두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