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다. 그런데 코로나19로 벌써 두 달째 홍역을 치르고 있고, ‘성착취 n번방 사건’으로 세상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요즘 3년 전의 일을 기억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가 맞는 최대의 위기인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고,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올해 안에 종식되지 않을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이런 매우 위중한 상황임에도 3년 전의 오늘, 그러니까 2017년 3월31일의 일을 기억해보려고 한다.봄날이 가까워오면 잠 못 들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다. 벚꽃이 활짝 피던 봄날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을 실었던 세월호는 3년 뒤 금요일에 돌아왔다.3년 전 오늘 새벽에 안산에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버스를 타..
최근 텔레그램 ‘n번방’에서 ‘박사방’을 운영하며 미성년자 다수를 포함한 피해자를 대상으로 성착취물을 촬영, 공유하고 부를 취득한 20대 운영자 조주빈이 적발되었다. 그는 성착취 행위를 노골화하기 위해 고액의 모델 알바나 온라인 데이트 같은 감언이설로 피해자가 신상노출을 하게 한 다음 협박은 물론 노예나 다름없는 관계를 설정하는 등 치밀한 전략을 이용했다.조주빈의 신상을 공개하라는 국민청원이 불같이 일어났던 것을 보면 이번 사건에 대한 일반 시민의 분노가 얼마나 큰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n번방의 최초 운영자는 아직 검거되지 않았으며, 만약 계속해서 불법행위를 계속하고 있다면 고통받을 피해자의 인권과 삶은 어떨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하루빨리 최초 운영자를 검거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특히 이번 ..
프랑스의 사상가 장 보드리야르는 에서, 강인한 신체에 몰두하는 미국 사회의 욕망을 읽었다. 이유 없이 뛰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프랑스의 사상가가 보기에 ‘뉴욕 마라톤은 물신주의적이며 공허한 승리의 망상’이었다. 레이건의 애국주의가 지배하던 때였다. 그래서 보드리야르는 ‘나는 해냈다’고 외치는 1만여명의 마라토너에게서 강력한 물신주의를, 그리고 피트니스센터에서 뛰는 사람들에게서 ‘창백한 고독’을 읽었다.글쎄, 우연히도 나는 1995년 11월, 센트럴파크에 있었다. 뉴욕 마라톤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대회가 시작된 지 예닐곱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내가 본 주자들은 매우 느린 편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노인도 있었고 휠체어 장애인도 있었고 엄마 손을 잡고 걸어오는 아이도 있었다. 그들의 환한 표정에서 ‘물신..
“가만히 있어. 뛰면 안된다고 했지. 요즘은 더 조용히 있어야 해.”오늘도 사자후 같은 아내의 잔소리가 집 안을 뒤흔든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집사람 목소리가 저렇게 큰 줄 몰랐다. 예전에는 한없이 애교가 넘쳤는데 두 아들의 엄마가 된 지금은 논산훈련소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목청이 커졌다. 딸만 있는 집에서 곱게 자란 사람이 아들 둘을 키우려니 얼마나 힘들까. 아이들도 수시로 들려오는 엄마의 잔소리에 입이 잔뜩 나왔다. 기운 넘치는 나이에 집 안에 갇혀 있으려니 얼마나 좀이 쑤실까. 그래서 잠시만 방심해도 소란을 피우고 이를 놓칠세라 엄마의 잔소리가 날아든다. 코로나19로 집 안에 갇힌 우리 아이들 모습이다.아파트 생활이 대중화되며 층간소음 피해를 토로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특히 아이들이 집에 있는 요즘..
“Every vote counts.” 영어권 국가에서 투표 참여를 독려할 때 주로 쓰는 말이다. ‘모든 투표는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 말은 반드시 투표에 참여하자는 독려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모든 투표는 중요하므로 “나 하나쯤이야” 하지 말라는 얘기다.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표현을 들자면 ‘투표는 신성한 권리’라는 말이 있겠다. 선거가 가까워지면 여지없이 들려오는 말들이다.그런데 ‘중요하다’는 의미의 ‘count’에는 ‘계산하다’라는 의미도 있다. 두 번째 의미로 말을 약간 변형하면, ‘모든 투표는 계산된다’이다. 이렇게 말할 때 ‘투표’는 행위가 아니라 일종의 데이터다. 당선자의 득표수와 투표율뿐만 아니라 낙선자 득표수와 무효표 수, 기권율도 기록에 남는다. 이러한 데이터에 해석이 더해지면 여론이..
우리말에는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 참 많다. ‘쏘다’와 ‘쓰다’가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다.많은 사람이 “야, 오늘은 내가 쏜다”라거나 “야, 오늘은 네가 쏴라”라는 말을 자주 쓴다. 하지만 이때의 ‘쏘다’는 참 이상한 표현이다.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쏘다’를 찾아보면 “활이나 총·대포 따위를 일정한 목표를 향하여 발사하다” “말이나 시선으로 상대편을 매섭게 공격하다” “벌레가 침과 같은 것으로 살을 찌르다” “매운맛이나 강한 냄새가 사람의 입안이나 코를 강하게 자극하다” 등의 뜻밖에 없기 때문이다. “돈을 내다”라는 뜻은 전혀 없다는 소리다.‘한턱 쏘다’는 ‘한턱 쓰다’로 써야 하는 말이다. ‘쓰다’가 “(흔히 ‘한턱’이나 ‘턱’ 따위와 함께 쓰여) 다른 사람에게 베풀거나 내..
물리적 거리 두기가 한창이다. 여러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 물리적 접촉을 줄이는 것이 전염병 확산을 막는 최선의 방법이라 하기에 모두들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지난 27일 저녁(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도 텅 빈 바티칸 베드로 광장에서 전 세계를 위해 홀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적막이 가득한 광장 사진을 본 모든 사람들은 코로나19가 가져온 심각함을 다시 한번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그보다 앞선 3월22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 스페인 언론인과 인터뷰하면서 “각국은 각자의 상황에 맞는 구체적 해법을 찾아야 하지만, ‘각자도생’은 절대 해법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물리적 거리 두기가 서로를 배려하며 전염병을 차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홀로 이 모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님..
출근 시간, 급한 걸음을 옮기는데 손바닥만 한 사무실 화단에 탁 걸리는 게 있다. 하늘에서 추락한 구름일 리는 없겠고 웬 눈뭉치인가 싶었다. 우수 경칩을 지난 지가 언제인가. 눈에게 눈이 깜빡 속았다. 마스크를 고쳐 쓰고 다시 보니 하얀 꽃이다. 그간 내 몰랐을 뿐 오늘 갑자기 핀 건 아니었다. 벌써 뭉개지는 것도 있으니 세상 구경한 지 여러 날 되는 미선나무의 꽃송이들. 대견한 미선나무 꽃잎에 무작스럽게 코를 들이대니 작년 이맘때가 떠올랐다.이름에서 벌써 우람한 느티나무를 품고 있는 괴산은 과연 나무의 고장다웠다. 모텔의 어두컴컴한 복도는 물론 식당의 자투리땅마다 미선나무가 있어 은은한 향을 풍겼다. 중학교 어느 교과서에서 배운 이래 조금 특별하게 생각했던 미선나무. 열매가 부채 모양을 닮아서 유래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