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만은 며칠째 자취방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빈둥거리며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해보았는데, 그러다가 뭐 미래만 아니면 나쁠 것도 없겠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언제나 미래가 문제였지, 미래라는 것들 때문에 열 받았지. 망할 미래 같으니라고.곰곰이 따져보니, 진만은 ‘미래’라는 이름 자체와도 좋지 않은 기억뿐이었다. 그것이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마찬가지였다.실제로 진만의 고등학교 동창 중엔 ‘미래’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도 있었다. 진만이 살던 도시에서 꽤 유명했던 ‘미래내과의원’ 원장의 첫째아들인 ‘최미래’. 나중에 병원을 물려줄 생각으로 아버지가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는데, 그 덕분이었는지 몰라도 미래는 공부를 꽤 잘했다. 선생님들 앞에서도 스스럼없이 “뭐 나중에 병원을 물려받으려면 어쩔 수 있나요..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총선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코로나19의 급작스러운 확산이 모든 이슈를 삼켜버리고 있지만,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바이러스 대응에서부터 한국 사회의 현안들과 미래의 구체적 대안을 모색하고 결정하는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이슈와 쟁점이 무엇인지, 각 당과 후보자들이 추구하는 비전과 정책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왜 사회문제들을 해결할 정책이 서로 경쟁하며 논의되어 결정되는 정책선거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가.우선 선거를 바로 앞둔 시점에서의 정당 간 합종연횡은 추구하는 비전과 정책이 무엇인가를 논의하기보다, 누가 의석을 더 차지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게 한다. 이러한 구조적 제약 속에 선거라는 링 위에 오르는 선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결정이 늦..
경북 칠곡의 한 중증장애인시설에서 입소자 20명 이상이 코로나19에 집단으로 감염됐다고 한다. 명절을 맞이하여 대구에 있는 집에 다녀온 뒤 확진 판정을 받은 40대 입소자에게 감염된 것으로 보인다.중증장애인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질병에 매우 취약하다. 비좁고 열악한 시설에서 24시간 집단생활을 하다보면 개인위생 수준이 가정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에 비해 취약할 수밖에 없다. 집에서 생활하는 장애인은 사스나 메르스, 코로나19 등 바이러스로 인해 생명을 위협받는 일이 발생할 경우 가족이나 활동보조인들이 있어서 빠른 발견과 대처가 가능하다. 한국의 복지제도가 날로 발전하고 있지만,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은 이런 혜택을 못 받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따라서 관계기관에서는 더욱 특별한..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가 그림을 그린 의 첫 장을 펼치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모든 사물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뭉뚱그려 무시하지 말고 저마다 그 이름으로 불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일은 바로 동화를 통해서 할 수 있는 거지요.”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자리에 앉아 동화책을 읽는다. 지금처럼 불안 속에 일상을 지탱하면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시기에는 상당히 위안이 된다. 한꺼번에 잠적해버린 것 같은 세계의 활력이 어딘가에는 남아있으리라는 든든한 기분이 든다. 동화책에는 고양이와 노루와 공주의 분투가 나온다. 가혹하지만 부딪쳐볼 만한 시련이 있고 우연의 부드러운 도움이 있고 필연적인 보상이 있다. 절망은 침착한 노력으로 채워지고 책 속의 친구들은 바닥에서 벗어난다. 무엇보다 거기에는..
“순무, 무와 상추/ 푸른 미나리, 흰 토란에 붉은 차조기/ 생강·마늘·파·여뀌로 오미를 갖추어/ 잘 데쳐서는 국 끓이고 담그기는 김치(菹)라네.” 조선 문인 서거정(1420~1488)이 노래한 채마밭 풍경이 그저 소담하다. 평화로운 일상이란 이런 법이지 하며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가운데 미나리는 새봄의 맛을 대표하는, 한국인 누구에게나 친숙한 채소다. 워낙 한반도 어디서나 잘 자라 일찍이 텃밭이며 습지에 심어졌고, 상하귀천 모두의 국·나물·김치가 되어주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도 미나리는 도시 근교 농업과 맞아떨어졌다. 박지원(1737~1805)은 오늘날 왕십리의 무, 석관동의 순무, 서소문 밖의 가지·오이·수박·호박, 연희동의 고추·마늘·부추·파·염교, 청파동의 미나리, 이태원의 토란을 가장 ..
날마다 살얼음판이다. 이 전쟁의 주범은 누구인가? 박쥐인가 우한인가 신천지인가.과거 전 세계를 떨게 했던 에볼라 바이러스, 탄저병 그리고 코로나19 등등 각종 전염병엔 공통점이 있다. 2007년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고 폴 엡스타인 박사는 2011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 에서 지금 우리를 떨게 하는 코로나19 같은 역병의 주범이 무엇인가를 방대한 연구와 사례로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소두증을 유발하는 지카 바이러스는 아프리카와 동남아의 풍토병인데 주로 모기를 통해 전파된다. 지구가 더워지면서 모기가 급증했고 결국 남미 지역까지 확산되었다. 인간에게 1도 차..
1974년 8월15일. 국내에 지하철·전철이 처음 생겼다. 서울역~청량리역 간 서울지하철 1호선, 서울에서 인천과 수원을 잇는 수도권 전철이 함께 개통했다. 기본요금 30원. 전기로 움직이고 지하로도 달리는 ‘전동차’를 마주한 시민들은 마냥 신기해했다. 자동문은 문화충격이었다. 전동차 문이 자동으로 30초 동안만 열렸다 닫히니 어물대다가는 승차도 못하겠다고 걱정이 많았다. 당일자 경향신문은 “수도권 교통혁명 발차”라는 제목 아래 수도권 반경 45㎞ 지역이 1시간 생활권에 들었다고 대서특필했다. 서울 교통망의 주축으로 시민들을 교통지옥에서 해방하는 역할을 하게 됐다고도 전했다. 서울 북쪽으로 의정부·동두천까지, 남쪽으로 평택·아산까지 이어진 이 노선은 2000년부터 수도권·국철이라는 말 대신 ‘1호선’이라..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가 새로운 질병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벌써 많은 분이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었습니다. 고인과 유가족 여러분께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질병과 싸우시는 분들과 그 주변 분들도 용기를 잃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 힘든 싸움에서 앞장서고 계신 질병관리본부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와 의사, 간호사, 응급구조사, 소방대원 등 사회 안녕을 책임지는 모든 분께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마스크를 나누는 이웃, 힘들어도 힘을 모으는 국민 여러분의 모습을 볼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에서 보여주시는 용기와 헌신에 저 또한 큰 힘을 얻습니다. 곧 총선이 다가옵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자 정치적 의지를 표현하는 기회입니다. 꼭 선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