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를 해야 할까?” 질문을 가끔 받는다. “해야 할 것 같다”고 나는 대답한다. 유튜버로 대박날 꿈을 꾸는 건 아니다. 지금 시작해도 늦었고, 한국어 시장에서 여러 해 안정적으로 돈을 벌기도 어렵다. “그럼 왜 하나?” 질문을 받으면 “명함처럼 유튜브 채널을 이용하는 시대가 온다”고 나는 답한다. 말만 이렇게 할 뿐 나도 아직 유튜브에 내 작업 영상을 올리지 않았다. 이게 나의 문제다.‘명함처럼’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명함은 공짜로 뿌리는 것이다. “제 명함입니다”라고 드리고 “오십원입니다”라고 돈을 받으면 좋겠으나, 그런 꿈같은 일은 없다. 명함을 건네며 명함값을 받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럼 왜 돈 들여 명함을 찍나? 명함을 뿌려 자기를 알리고 그래서 돈을 벌 기회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내가 고통의 계산법이라고 부르는 게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해 결정내릴 때 여자들은 보통 비슷한 선택을 한다. 한 집단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것이 고통을 수반한다고 할 때, 자신의 고통이 최소화되는 선택을 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대다수 여자는 그 결정이 가져올 모든 종류의 고통을 다 따져본다. 그런 다음에 자신의 고통이 아닌 고통의 총합을 줄일 수 있는 결정에 따른다. 주로 어머니의 희생이라는 말로 포장돼온 선택들이 그런 예다. “여자인 네가 이해하고 참아라”라는 말을 평생 듣고 살아오면 나의 고통뿐만 아니라 남의 고통에도 민감해진다. 여자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여자로 길러진다. 남의 고통에 민감해지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지만 본인의 고통에 무감해지는 건 문제다. 무감해진다..
얼마 전 배우 이시언씨가 코로나19 피해 이웃을 위해 100만원을 기부하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인증을 했다가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연예인치고 너무 적은 액수를 기부했다는 것이 이유였다.해프닝이라고 보기엔 씁쓸하다. ‘기부는 부자나 하는 것’ ‘많은 돈을 기부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기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단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일상적으로 기부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많다. 2017년 기준 개인기부자는 약 560만명으로, 한국 인구의 약 11%다. 집계되지 않은 기부나 자원봉사를 고려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연예인의 선행이 의미 있는 이유는 본인의 영향력으로 더 많은 시민들이 나눔에 참여하도록 독려하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서 나눔을 접하도록 하는 것..
언어의 개념은 임의적, 임시적이다. 특히 성별(性別) 이슈를 다루는 이 글은 작은따옴표가 점철되거나 생략된 비문(非文)이다. 어떤 여성이 여자대학에 합격했으나 여성의 반대로 입학이 좌절되었다. 전자는 트랜스젠더 여성이고, 후자는 비(非)트랜스젠더 여성이다. 일부 비트랜스젠더 여성은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성이 아니라며 그녀에 대한 혐오 발언을 쏟아냈고, 대학 당국은 방관했다. 심지어 성별 정정을 허가해 준 법원을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하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묻고 싶다. 당신은 여성이고 그녀는 여성이 아닌지. 그 기준은 누가 정한 것인지. 해부학? ‘여성·남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일시적 구호이다. 생물학‘적’ 이유로 차별당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생물학조차 과학..
최근 강원도 선거구 획정과 관련돼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중앙정부와 국회가 강원도를 얼마나 무시하고 있는지 뼈저리게 느낀다. 서울 면적의 11배가 넘는 5개 시·군을 하나로 묶어 1석을 주겠다는 것, 문화적 특성이 확연히 다른 영동과 영서를 섞는다는 발상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특히 강원 남부 광산지역은 광업의 흥망과 함께 고통과 기쁨을 공유하며 폐광지 특유의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음에도 영월을 정선, 태백에서 떼어놓았다. 단일 선거구는 단일 생활권과 문화권이어야 함은 상식이다.이런 일들은 인구 중심, 수도권 중심 사고에 기인한다고 본다. 서울 등 수도권의 집값과 임대료는 치솟은 반면, 강원도 농촌에는 빈집과 폐교, 잡초밭만 늘고 있다. 강원도는 정부와 국회의 무관심 속에서 인구절벽을 만나 황무지로 변해가고..
햇볕 받으며 걷다 보니 땀이 차오른다. 얼굴을 덮은 마스크 때문인가 싶었는데, 여전히 겨울 외투를 입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신경이 온통 코로나19에 가 있어서일까. 3월이 벌써 중순으로 넘어간 것도 잊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학생들로 가득 차서 시끌벅적했을 대학 교정에 덩그러니 홀로 서 있는 매화나무가 문득 눈에 들어온다. 거무튀튀하고 딱딱해 보이는 나무둥치 여기저기에 거짓말처럼 화사하게 꽃잎이 맺혀 있다. 봄이다.퇴계 이황은 임종하던 날에도 매화 화분에 물을 주라는 말을 할 정도로 매화를 사랑한 것으로 유명하다. 매화시만 해도 100여 수를 남긴 퇴계에게, 매화는 그리움을 멈출 수 없어 아침저녁으로 찾아가곤 하는 벗이었고,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정신적 가치를 함께하는 동지이기도 했다. “뜨락을..
지난해 12월 말 중국 우한시에서 첫 환자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감염병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중국 언론은 ‘원인 불명 폐렴’이나 ‘우한 중증 폐렴’으로 보도했다. 외국에서는 ‘우한 폐렴’이라 불렀다. 감염병이 이름을 얻기까지에는 한 달 넘게 걸렸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가 지난달 8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폐렴’으로 명명하자 사흘 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2019(Corona Virus Disease 2019,COVID19)’로 확정했다.COVID19는 ‘2019년에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 질병’이라는 뜻이다. 중국어 공식 명칭은 ‘신형관상병독폐렴(新型冠狀病毒肺炎·신형폐렴)’이다. ‘관상병독’은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뜻. 한국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약칭 ‘코로나..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난 지 어제로 50일이 지났다. 국내 확진자의 증가세가 꺾이고 있는 건 다행스럽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에서 확진자가 늘어가는 상황은 결국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으로 갈 거라는 우려를 갖게 한다. 전염병의 발생과 방역은 전문가의 식견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비전문가인 내가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전염병이 의학적 현상이자 사회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다섯 가지의 사회적 코드로 지난 50일을 돌아보고자 한다.첫째, 코로나19 사태의 위험사회학. 코로나19 사태는 ‘글로벌 위험사회’를 살아가고 있음을 생생히 증거한다. 바이러스 전문가 네이션 울프는 도시화, 동물과의 교류 증가, 세계화 등으로 인해 우리 인류가 ‘바이러스 폭풍’ 시대에 들어서 있다고 분석한다. 21세기를 돌아봐도 2003년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