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세 번째이다. 보수 정부에서 위험이 핵심적인 사회현상으로 등장하는 것 말이다. 박정희, 노태우, 김영삼 정부 때에도 위험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지만 지금과는 양상이 달랐다. 노동현장에서 일어나던 수많은 사고는 회유 혹은 탄압의 대상이 되었고, 취약한 사회 인프라로 인한 일상의 위험은 숙명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명박 정부 때의 광우병 사태와 4대강 사업, 박근혜 정부 때의 세월호 참사, 그리고 윤석열 정부 들어 일어난 이태원 참사는 이제 고질화해가는 보수 정부의 패턴처럼 느껴져서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이명박 정부는 위험의 사회화와 그 반작용으로서의 위험의 정치화를 최초로 경험했다. 이익을 보는 집단은 분명한데 그에 따르는 위험은 불특정 다수에게로 분산시켜버릴 때,..
종이에 펜(27.5×35㎝) 빽빽하게 가득 차 있는 언덕 위의 집들과 아파트를 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너와 나 사이의 거리는 어느 정도면 적당할까요? 서로 웃음 지으며 인사하고 때론 부딪치고 짜증 내며 살아가던 이웃들이 갑자기 가깝게 다가오면 왠지 모르게 부담스럽습니다. 서로 적당히 알고 적당히 모른 척하며 그렇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는 것이 서로 편한 관계로 오래갈 거 같습니다. 답답한 골목길에서, 답답한 만원 지하철에서, 답답한 엘리베이터에서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당신들 사상은 잘못됐어. 반대하는 의견들을 무시하잖아!” 며칠 전 지역 행사에서 들었던 분노에 찬 발언이다. 토론회가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참석자가 느닷없이 소리를 질렀다. 그는 이 분노를 표출하기 전까지 자신을 보라는 듯 손을 높이 들고 있었다. 당시 토론회는 혐오와 차별 없는 사회를 위한 연대와 인권교육을 주제로 여러 논의를 이어가고 있었다. 발제자와 토론자의 발언이 끝난 뒤 이어지는 질문 시간에 그는 당신들이 반대 의견을 무시한다고 울분을 터트리며 격앙을 이어갔다. 끝을 예상할 수 없는 뜨겁고 거친 발언이 이어질수록, 청중과 참석자는 얼어붙고 초조해졌다. 그는 줄곧 동성애 반대를 주창하며 말을 이어갔다. 토론회 주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자신의 이야기들이었다. 얼마 전 열린 ..
올해는 1972년 국토종합개발계획이 처음 시행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나라가 경제개발을 계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시작한 지 10년 후인 1972년, 우리 국토의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개발을 위하여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1972~1981)이 시행되었다. 국토종합개발계획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승인하는 법정 계획으로 국토와 지역, 도시 분야 최상위 계획의 위상을 갖는다. 이 계획에 의거하여 경제개발과 국민의 생활환경 개선을 뒷받침하는 도로, 철도, 공항, 항만, 댐, 산업단지, 관광단지 등 각종 사회간접자본이 건설되었다. 경제개발이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바뀌면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국민의 삶의 터전인 국토에 대한..
현대인들에게 판단력과 분별력은 개개인의 행복 지수, 건강(수명), 경제 상황 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사회 전체의 안녕과 발전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는 흔히 “한국 사람들은 뛰어나다”라고 한다.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인 방법으로 일을 되게 하는 능력, 가시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또는 승부에서 이기는) 능력, 뛰어난 예술적 창의성 등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약점이 있다. 그것은 아주 기초적인 것에 대해서조차도 합리적인 판단이나 분별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판단과 분별은 의미가 살짝 다르다. 분별은 어떤 것들의 차이를 인지하거나,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것을 뜻한다. 좋은 판단력을 갖기 위해서는 당연히 논리적인 사고력이 ..
과잉이라고 비판받을지 몰라도, 반복적 붕괴를 경험하는 사회에서 탈출하려면 ‘안전의 여유분’부터 만들어 놓아야 한다 따라서 이태원의 좁은 공간에 수백 명이 운집할 수 있다는 신호를 받았다면, 그곳에 ‘안전의 여유분’을 만들었어야 했다 안전의 여유분 없는 사회에서 고통스럽게 희생된 청년들과 그 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 외국 생활에서 당혹스러웠던 경험을 말해보라고 하면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있다. 그중 하나가 화재경보기다. 부엌에서 생선이나 고기를 굽기만 하면 그렇게 요란하게 울릴 수가 없다. 처음에는 경보기가 붙어 있는 천장까지 다가가 연신 부채질을 해서 경고음을 멈추게 하는 식으로 처리한다. 물론 재빠르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네 사람들을 짜증나게 할 수 있다. 혹시라도 아파트의 어느 ..
그래픽 | 김상민 기자 1989년 4월15일, 영국 프로축구팀 리버풀 FC와 노팅엄 포레스트의 경기가 열린 힐즈버러 경기장에서 94명이 압사하고 700명 넘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리버풀 팬들의 전세버스가 도로정체로 연착해 한꺼번에 몰린 게 시작이었다. 검표소에서 극심한 병목현상이 벌어진 상황에서 ‘누군가’가 출입문을 열었다. 몰려드는 관중은 통제되지 않았다. 양측면에는 다소 여유 공간이 있었지만, 인파는 이미 초만원이던 중앙구역으로 몰렸다. 경기 시작 5분 만에 보호철망이 무너지며 아비규환이 빚어졌다. 경찰은 술에 취한 훌리건들이 표도 없이 경기장에 난입해 벌어진 단순사고라고 발표했다. 황색언론들은 리버풀 팬이 출입문을 열었다는 등 경찰이 흘린 정보를 그대로 받아썼다. 유족들은 경찰로부터 사망자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