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기 좋은 11월11일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한겨레 칼럼에서 꽂힌 ‘숫자 20’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강 교수는 “불평등의 담론을 1 대 99에서 20 대 80으로 옮겨야 한다”며 진보의 사고·행동 틀을 혁명적으로, 정교한 정책으로 바꿀 때가 됐다고 했다. 진보를 향해 “거대담론에 능하고 민생과 각론에 약하다”고 되짚고, 불평등 문제의 핵심은 “내 몫을 줄일 뜻 없는 상위 20%”라고 지목했다. 대기업 정규직도 상당수가 그 속에 들어간다. ‘자본 대 노동’으로 가르는 1980년대식 이분법이 민주화 이후의 정치와 민생에 맞지 않고, 99% 내부에 파여가는 불평등에도 눈을 돌리자고 한 것이다. 다시 꺼내든 담론은 타이밍이 절묘했다. 이른 송년모임에서 대학 친구가 ‘20’을 불러내고, 회사를 떠..
영화 을 보면 삼전도 굴욕을 견디는 인조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치욕은 잠시였고 인조는 평안하게 여생을 보냈습니다. 수많은 민중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공포와 고통 속에 죽어갔죠. 집과 가족을 잃었습니다. 중국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니 조선 지도자들의 죄는 가볍지 않았습니다. 당시 중국은 명과 청이 교체되던 시기였죠. 중국의 사소한 정치적 변화에도 민감했던 조선에 큰 위기였습니다. 게다가 한족 왕조와 만주족의 대결이니 보통 일이 아니었죠. 싸움을 주시하면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균형외교가 절실했습니다. 이기는 쪽에 나라와 백성의 명운을 걸어야 하는 처지였으니까요. 하지만 인조의 조정은 균형외교는커녕, 공공연하게 명나라를 지원하고 나섰죠. 결국 청나라의 침략을 자초했습니다. 정묘호란에..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행위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이 “방송심의규정의 공정성, 객관성, 명예훼손 조항을 위반했다”며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이를 다룬 방송사와 관계자에게 내린 징계는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시민방송 RTV가 방통위의 제재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한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6년3개월 만에 원심의 잘못을 바로잡은 대법원 판결의 의미는 각별하다. 무엇보다 국가권력에 의해 침해당할 뻔했던 표현의 자유가 이번 판결로 바로 서게 됐다. 역사논쟁과 같은 이해관계가 첨예한 저작물이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국민들과 만날 수 있는 길이 넓어진 것이다. 대법원이 처음으로 방송 심의 기준을 명확히 한 점도 큰 의의다. 은 을 펴낸 민족문..
서울시교육청이 21일 ‘인헌고 사태’에 대한 특별장학 결과를 통해 “특정 정치사상 주입이나 강제, 정치편향 교육활동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또 “학생 지도 차원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결론지었다. 교육청은 이와 함께 인헌고 문제는 징계 대상이 아니라면서 행정처분이나 특별감사를 의뢰하지 않기로 했다. 교육청이 인헌고 사태에 대해 교육적 판단을 내린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다. 교사 발언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종식되길 기대한다. ‘인헌고 사태’는 일부 학생이 ‘교사들이 교육활동 중 정치편향적 발언과 지도를 했다’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촉발됐다. 해당 학생들은 SNS나 유튜브 등을 통해 교사가 수업시간에 ‘NO 일본, NO 저팬’ 구호를 적게 했으며 “조국 뉴스는 가짜다” “너 일베냐” 등의 발언..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이 22일 자정(23일 0시)을 기해 종료된다. 청와대는 21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연 뒤 “주요 관계국과의 긴밀한 협의를 지속해 나가기로 했으며, 이와 관련한 다양한 상황에 대비할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참석해 “일본의 태도 변화가 있지 않는 한 GSOMIA가 내일 종료된다”고 말했다. 한·미·일이 물밑 접촉을 통해 막판에 극적인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만 남은 상황이다. 한·미, 한·일 관계를 전반적으로 고려할 때 당장 GSOMIA를 종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GSOMIA 연장에 대한 미국의 의지가 강한 데다 한·미·일 3국 간 정보 교류에 부정적인 영..
두 개의 한·미 현안, 한·일 정보보호협정(GSOMIA)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가 굴러가고 있다. 극적 반전이 없을 경우 오늘 자정 종료되는 GSOMIA에는 미국의 동북아 안보 구상이 결부돼 있다. 방위비 분담금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익 우선’ 동맹관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 두 사안이 고약하게 얽히고 있다.우선 이번 한·미 당국 간 방위비 분담금 협상 상황은 유례가 없다. 미국이 1년 만에 5배인 50억달러(약 5조8000억원)를 늘려달라는데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비용의 40~50%를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0억달러는 주한미군이 다 쓰지도 못할 비용이다. 미국의 태도는 맡겨놓은 돈 찾아가겠다는 듯 고압적이고 무례하다.‘50억달러’ 요구의 시작은 트럼프 대통령으로 보인다. 그는 지..
여성복업계 상품기획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한다. 기후변화로 과거 데이터가 안 통하기 때문이란다. 최근 2년간 기존 틀과 전년 인기상품 데이터에 의지하는 기획이 시장에서 더 이상 안 먹혀 난리란다. 연간 사업계획대로 움직이기엔 변수도 많고 시즌 구분도 불분명해져서 지금 당장 필요한 아이템을 발굴하느라 매월 분주하다고 한다. 비단 여성복 업계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2006년도 겨울 무렵 공영방송 9시 뉴스 기자와 인터뷰를 했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지구가 더워져 물에 잠기고 태풍 같은 재난도 많아진다는데, 과연 사실인지를 묻는 내용이었다. 지난 20세기 동안 4배 증가한 인구가 20세기 100년 동안 사용한 에너지의 총량은 그 이전 1000년 동안 사용했던 에너지의 10배나 증가했다. 문명은 에너..
1년 전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사립유치원 비리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그 정도인지는 몰랐다’는 전 사회적 공분 속에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3개의 법안, 즉 ‘유치원 3법’이 박용진 의원에 의해 2018년 10월23일 발의됐다. 그 후 1년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유치원 3법’은 아직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아이들의 인권과 교육보다는 자신들의 이권을 우선시하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원장들 편에서 사실과는 다른 억측으로 이 법안의 통과를 저지했기 때문이다. ‘유치원 3법’은 정부 지원금 부정 사용을 금지하기 위해 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유아교육법 개정 내용은 정부의 회계관리 시스템인 에듀파인의 의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