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오보를 낸 언론사 기자의 검찰 출입을 제한하는 내용의 훈령을 만들었다. 어떤 기사를 오보로 판단할지, 기준이나 출입 제한 기간은 검찰이 정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전문공보관을 제외한 검사나 수사관은 맡고 있는 형사사건과 관련해 기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지 못하도록 했다. 수사 중에는 피의자의 공개소환이나 수사 내용을 언론에 알리는 것도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수사를 지휘하는 차장검사의 구두 브리핑인 ‘티타임’도 금지된다. 한마디로 기자는 검찰이 불러주는 것만 받아 쓰라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검찰이 납득할 수 없는 수사를 벌인다 하더라도 어디 물어볼 데도, 물어볼 방법도 없다. 5공화국 독재정권은 보도하지 말아야 할 ‘보도지침’을 매일 내려보내 언론을 통제했다. 그때도 기자들의 취재 자체는 막지 않았..
자유한국당이 31일 1차 영입인사를 발표하고 총선기획단을 발족하는 등 내년 총선을 치를 채비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런데 이 영입인사에 공관병들에게 갑질해 전역조치된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을 포함했다가 당내 반발과 여론의 비판에 급히 제외하는 촌극을 벌였다. 일가족이 공관병 갑질로 온 국민을 분노케 한 박 전 대장을 최우선 영입 대상으로 내세우려 했다는 데 말문이 막힌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수사 피해자라는 점만 볼 뿐 특권층의 반칙에 분노한 젊은이들의 ‘공정’ 가치는 외면하고 있다. 더구나 이 영입을 주도한 황교안 대표와 박맹우 사무총장은 “박 전 대장은 다음에 모실 예정”이라며 박 전 대장의 영입을 계속 추진할 뜻까지 밝혔다. 잠시 비난 여론의 소나기만 피하자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유권자는 안중에도 없..
도서관은 누구나 쉽게 책을 보고 자료를 찾는 곳이다. 때론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모임 공간이다. 국가와 도시별로 차이가 있지만 지역사회의 다양한 문제해결 공간 역할도 한다. 이런 이유로 외국 도서관에는 직업상담사나 사회복지사가 배치된 곳도 있다. 도서관 사서 업무는 매우 다양하다. 대출 수납이 주 업무가 아니라 도서관 기획·운영 전반이 핵심 역할이다. 암호 같은 분류기호를 외워 이용자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재분류하는 일도 그중 하나다. 견학, 독서의달, 체험행사, 북스터디 등 다양한 프로그램까지 맡고 있다. 사실 도서관 사서의 핵심업무 중 하나는 장서점검이다. 대출반납 소장자료 목록과 실제 도서관 자료 간의 일치 여부, 자료 폐기, 장서 재배치 등의 업무가 장서점검인데, 어떤 곳은 이조차 수행 인력이..
석 달 전 경향신문 편집국에는 소통 에디터 직책이 새로 생겼다. 지면과 관련해서는 오피니언팀, 토요판팀 구성원들과 콘텐츠 내용과 편집을 두고 의견을 나누며 돕는 역할을 한다.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그간 해온 일이니 더 어려움이랄 것은 없다. 그런데 직책명에서 알 수 있듯 ‘소통’이 문제다. 안으로는 편집국 구성원들 간에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히 되도록 돕고, 밖으로는 독자들과 소통의 길을 열어야 한다. 독자들도, 편집국 구성원들도 연령대가 다양하고 각자의 상황에 따라 관심사가 다르니 희망 사항과 불만 또한 천차만별일 것이다. 독자들의 가려운 곳, 아픈 곳을 잘 파악해 반영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지만 막상 쉽지 않다. 최우선의 과제이므로 연구 중이다. (경향신문이 독자와 만나 의견을 ..
2년 전 이 지면에 “어떤 ‘에너지 미래’를 만들 것인가”란 주제로 글을 썼다. 이정문 화백이 1965년에 그린 ‘서기 2000년대 생활의 이모저모’란 그림에서 35년 뒤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생활의 변화를 통찰력 있게 그려낸 걸 보고 우리의 에너지 미래를 상상해 보자고 했다. 기후변화와 관련해 흔히 언급하는 2050년은 앞으로 30년 정도밖에 안 남았다. 앞의 그림에서 내다본 기간보다 5년이 더 짧다. 이 화백이 1965년에 상상한 재생에너지 이용은 기후위기를 주된 동인으로 더 강력하고도 빠르게 일어날 것이다. 에너지 전환은 이제 불가피하고도 비가역적인 세계적 흐름이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있기 어렵다. 오늘은 그런 에너지 전환으로 우리의 일자리가 어떻게 달라질지 상상해 보자고 말하고 싶다. 내가 어릴 ..
10년 전, 충남에서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카페의 운영자로 일했다. 사회적기업 창업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을 때였고 우수사례로 남으려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아무리 뜻이 좋아도 엄연히 냉혹한 장사의 세계였다. 사회적기업도 수익은 못 내더라도 적자는 벗어나야 생존이 가능하다. 그때 심사와 인증 주체인 지자체에서 잘해보라며 컨설턴트 한 명을 파견해 주었다. 엄연히 세금 들어가는 일인 데다 자부담 비용도 들어가는 과정이었다. 무엇보다 경영개선이 절실했기 때문에 컨설턴트의 말을 하나라도 놓칠까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꼼꼼하게 적어 해보라는 건 다 해보았다. 돌이켜보니 서울에서 내려온 그가 한 상권 분석이란 고작 카페 주변을 몇 번 걸어다니며 산책을 한 수준이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컨설팅대로 장사는 되지 않았지만 그..
이재명의 경기도지사직을 박탈하려는 항소심 재판에 이의를 단다. 1심과 전혀 다른 법률해석과 대법원의 선례를 깬 근거를 묻고 싶다.뜻밖의 항소심 결과이지만, 법률심 위주의 대법원 상고심 속성상 ‘이재명은 끝났다’는 비관과 체념의 분위기도 있다. 선거재판에 있어서 대법원이 정무적 판단의 기준과 철학을 확립해줄 때이다. 이재명 지사에 대한 대법원 심판이 단계적·기계적 최종심판이 아니라, 선거재판의 기존 관행에 대해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대법원 최후의 심판’이 되기를 바란다.미국 연방대법원은 선거 및 정치 문제에 관한 한 최대한의 자제를 견지하는 것을 전통으로 하고 있고, 이는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지 않으려는 노력인 셈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네거티브 선거캠페인이 주효한 경우가 제법 되는데, 이 또..
“모든 악업은 내가 지고 갑니다. 주상은 성군이 되세요.” 상왕으로 물러난 지 4년째, 태종 이방원이 생의 마지막 힘을 모아 기우제를 지내다 아들 세종에게 한 말이다. 태종은 “무엇 때문에 흘린 피였습니까. 죄는 저를 탓하시고 비를…”이라며 울부짖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형제들, 공신들, 처남들, 세종의 외척까지 쳐내려간 피바람을 그는 왕권 정지작업이라 했다.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 사극 마지막 회를 찾아본 것은 3년 전 이맘때 타오른 촛불이 생각나서다. 태종의 눈물과 그 겨울의 촛불은 공명(共鳴)했다. 벽을 싹 걷어주고 새 역사를 열어준 마중물이었다.‘촛불대통령’이라 불렸다. 취임 첫달 국정지지율이 81%. 세대·지역·남녀·계층을 불문했다. 그해 6·10 기념식에서 지선 스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