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0월10일, 서해 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페리호가 침몰했다. 이 사고로 362명의 승객 중 292명이 사망했다. 70명만 구조되었다. 이틀 뒤인 10월12일, 유가족 500여 명은 군산공설운동장 앞 4차선 도로를 점거하고 “당국의 안일한 사태 수습 태도로 사체인양 작업이 늦어지고 있다”며 밤늦게까지 항의농성을 벌였고, 경찰은 전경 4개 중대를 현장에 배치해 유가족들의 시내 진출을 막았다. 유가족의 시위를 막는 데 동원된 의경 중에 임종호씨가 있었다. 그는 가족을 살려내라며 울부짖는 유가족들을 정면으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울면서 그들의 시위를 저지해야 했다.21년 뒤, 그의 딸 세희는 18살, 단원고 2학년이 되어 세월호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다 참변을 당했다. 그는 유가족이..
박찬주 전 육군대장은 11월4일 기자회견 자리에서 자신의 ‘공관병 갑질’ 등 비행을 폭로한 바 있는 군인권센터 소장을 비난하면서 “삼청교육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박 전 대장의 망언은 일파만파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급기야 황교안 대표가 “정말 귀한 분”이라고 극찬하며 자유한국당 ‘인재영입 1호’로 정했던 박 전 대장의 영입 기도는 급전직하 낭떠러지에 추락한 형국이 되었다. 삼청교육대는 신군부가 저지른 미증유의 인권유린이며 학살극이다. 이는 이미 삼청교육진상규명전국투쟁위원회의 투쟁을 통해 결성된 국회 5공비리 제3소위 활동과 피해자들의 증언으로 만천하에 드러났다. 또 2006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도 ‘삼청교육대사건 진상보고서’를 통해 삼청교육대의 설치가 불법이며 인권유..
MBC 예능 프로그램 를 봤다. 트로트 가수로 데뷔하게 된 ‘유산슬’ 유재석씨가 ‘합정역 5번 출구’를 녹음하는 과정을 담았다. 그 ‘업계’의 고수들, 이른바 ‘세션맨’들이 거의 ‘원샷 원킬’로 연주하는 모습은 흐뭇했다. 과연 ‘인생도처 유상수’라, 세상의 모든 분야에는 마땅히 고개를 숙일 만한 고수들이 있다고 했던가. 한편 예능 프로라서 맘껏 웃기도 했지만 또한 그 고수들이 살아냈을 세월을 짐작하니 조금은 숙연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어느 분야든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어디 음악계만 그러하랴.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일하는 분야에서는 그와 같은 고수들, 장인들, 누군가를 빛내는 세션의 자리, 묵묵히 그 분야를 오랫동안 떠받치고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머리’로 일하는 사람들은,..
지난해 한 여학생을 만났습니다.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고 공부에도 정말 최선을 다했던 학생인데 안타깝게도 지난해 입시에서 고배를 마시고 재수를 선택했습니다. 올 1월부터 시작한 재수생활은 집 근처 서울 중계동 재수학원에서 시작하여 대치동의 재수종합반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환경 좋은 강가에 위치한 재수종합학원에서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스스로 독하게 마음먹고 집에는 거의 다녀가지 않았고, 부모님이 생필품을 공수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큰 비용이 드는 것도 모두 감내할 정도로 온 가족이 혼연일체로 재수생활을 버텨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무척 힘들어 한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이 높아져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졌답니다. 뻔한 살림살이에 ..
숲 우거진 깊은 산길을 무리 지어 넘어가는데 왠지 으스스합니다. 개중에 한 사람이 그럽니다. “으~ 이러다 뭐 나오는 거 아냐?” 다른 일행이 면박을 줍니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가뜩이나 무서워 죽겠는데.” 말 꺼내기 무섭게 저 수풀에서 호랑이 눈이 으르릉 노려보고 있습니다. 오금이 얼어붙었다 이내 봇짐이고 뭐고 팽개치고 걸음아 날 살려라, 정신 놓고 사방으로 죽도록 뜁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말한 대로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 함부로 말을 꺼내지 말라는 뜻입니다. 말이 씨가 되는 경우는 참 많습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재수 없는 소리입니다.말이 씨가 되는 경우는 두 가지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는 아무도 구체적인 생각을 한 적 없는데 누군가 생각의 단초가 될 말을 꺼내 그 말..
40대인 모 선배가 10년 전 어느 날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당시 선배는 서쪽바다 안면도에서 가족과 함께 소박한 펜션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간간이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여가 시간에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괜찮은 ‘제2의 인생’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림에 빠진 그는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하겠다며 어느 날 말도 통하지 않는 프랑스로 용감하게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고생 끝에 올가을 파리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하얀 캔버스 위에 정연하면서도 변칙적으로 이어지는 검은 선들을 그린 한 작품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보면서 생각했다. 10년은 어른도 멋지게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구나. 그의 용기가 진심으로 부러웠다. ‘나이 들면 뭐 하지.’ 40~50대 직장인들을 만나면 약방의 감초처럼 나오..
1111을 빗댄 11월11일. 지릅대기 모양을 빙자한 국적도 없는 고약한 놀이가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노린 지 여러 해다. 이른바 빼빼로 데이. 빼빼 마른 몸매에 대한 집착인가. 어느새 젊은이들까지 이 개념 없는 풍속에 선뜻 지갑을 열었다. 통속적인 과자 하나에 이날의 의미를 줘버리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경박한 일이다. 하루를 일생에 치환해보자. 1111, 1111은 11월11일 11시11분. 이 시간은 어디쯤에 해당할까. 빼빼로에 눈이 멀어 아차 하는 순간 오전은 훌쩍 지나가고 청춘은 다시 돌이킬 수 없게 된다.출근해서 컴퓨터를 켰더니 11월11일을 맞아 곳곳에서 가래떡의 날을 진행한다는 뉴스가 많다. 빼빼로 데이를 물리치고 우리 전통이 깃든 가래떡으로 간식을 즐기자는 취지의 행사를 농협에서 많..
프랑스어 ‘벨 에포크(Belle Epoque)’를 단순 번역하면 ‘아름다운 시절’이란 뜻이지만, 이 단어에는 그 이상의 함의가 있다. 프랑스혁명에서 나폴레옹 제정, 보불전쟁에 이르기까지 유럽은 전쟁의 불꽃이 그치지 않는 격동의 시대였다. 거듭된 혼란 끝에 프랑스 국민들은 국민 선거에서 75%의 지지로 나폴레옹 3세를 대통령에 선출했다. 나폴레옹 3세는 영광스러운 프랑스의 재건, 특히 파리의 도시재개발을 추진했다. 시위대가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기 좋았던 좁은 골목과 오래되고 낡은 건물들이 철거되고, 새로운 대로와 공공건물들이 세워졌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파리는 이 시절에 만들어졌고, 새로운 파리는 전 유럽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그는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카를 마르크스는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가던 이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