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기일이 닷새 정도의 간격을 두고 가을 한가운데에 있어 몇 년 전부터 내게 가을은 애도의 계절이다. 살아계실 때는 그 정도의 차이를 두고 생신이었는데, 역시 가을이었다. 태어난 날과 떠나신 날이 비슷하다. 모든 잎 하염없이 떨어지는 계절은 아니고, 단풍 환하게 꽃처럼 물드는 가을이다. 그래서 나는 이 계절에는 ‘작별’에 대한 글은 잘 읽지 못한다. 작별한 사람에 대한 글은 물론이고 작별하는 과정에 이르는 책은 더욱 견디지 못하는 편이다. 모든 사람에게 그렇겠지만 내게는 여러 의미에서 쉽지 않은 이별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이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비슷한 주제라면 주제인 책을 한 권 읽었다. 얼마 전 출간된 (헤르츠나인)라는 책이다. 번역가 출신 요양보호사 이은주씨가 쓴 이 책..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저녁 ‘국민과의 대화’를 열었다. 방청객 300명이 국정 현안에 대해 질문하고, 대통령이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100분간의 대화는 TV 생방송을 통해 온 국민이 지켜봤다. 문 대통령이 국민과 직접 소통한 건 2017년 8월 출범 100일을 맞아 대국민보고대회를 한 이후 실로 오랜만이다. 역시 시민들의 관심은 첫째도, 둘째도 민생경제였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올해는 국민 삶 속에서 정부 경제정책이 옳은 방향이라는 것을 확실히 체감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일자리가 줄고 빈부격차는 커지고 유일한 성장동력이었던 수출도 크게 감소하고 있다. 되레 ‘마이너스 경제’를 체감하고 있는 격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도 “부동산 가격, 전·월세 시장 모두 안정돼 ..
전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지난달 30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오바마재단 모임에서 19세 배우 야라 샤히디와 대담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순수에 대한 관념, 당신은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고 정치적으로 항상 각성해 있다는 인식. 여러분은 이런 인식을 빨리 극복해야 합니다. 전 젊은이들이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셜미디어는 이런 인식을 증폭시킵니다. 세상은 혼란스럽습니다. 모호함으로 가득합니다. 좋은 사람들에게도 결점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적들도 자기 아이들을 사랑할 겁니다. 타인에 대해 가치판단을 하면 할수록 많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이 젊은이들 사이에 퍼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액티비즘이 아닙니다. 변화를 가져오지도 않습니다. 타인에게 돌 던지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
지난 4월30일 핀란드 주재 문덕호 대사가 급성 백혈병으로 입원한 지 1주일 만에 사망했다. 100세 시대에 한국의 외교관이 환갑도 안된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작년 11월 건강하게 부임했는데 입원 1주일 만에 사망이라니. 상당히 진행되도록 진단을 못했다는 건데, 두 차례 현지 병원을 방문했으나 ‘축농증’으로 진단해 치료 시기를 놓쳤다는 설명이다. 업무로 인한 과로와 핀란드의 특수한 겨울철 기후환경으로 백혈병이 발생했다고 한다. 국정감사 때 원혜영 의원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한 질의에서 확인됐다.외교부는 병을 조기에 발견하지 못하고 적절히 치료받지 못한 핀란드 의료체계 특수성을 사망원인으로 들었다. 성인에게 생긴 급성 백혈병이라도 본국으로 이송해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더라면 살릴..
95%나 된다. 퓨리서치(Pew Research)에 따르면 2019년 무려 95%의 한국인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보급률 88%로 조사 대상국 중 2위를 차지한 이스라엘을 큰 폭으로 앞지른 압도적 1위 기록이다. 연령별로도 큰 차이 없이 고르게 스마트폰이 보급되어 있다. 18~34세 한국인 99%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데 50세 이상에서도 91%나 스마트폰을 소유하고 있다. 당연히 SNS도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조사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한국인은 하루에 평균 1시간을 SNS와 함께한다. 문자를 발명한 토트신이 어느 날 이집트의 왕 타무스를 찾아왔다. 토트는 인간에게 문자라는 미디어를 선물하고 싶다면서, 문자의 장점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설명을 듣고 난 후 왕 타무스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토트신의 제안..
지난달 25일 라오스에서 개최된 2019년 한·아세안 정보통신장관회의에 다녀왔다. 그 회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 중 하나는 5세대(G)에 대한 아세안 각국의 뜨거운 관심이었다. 이에 한·아세안 5G 대화협의체(5G Dialogue)를 제안해 아세안과 5G의 정책적 논의를 통한 향후 협력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5G 대화협의체가 활성화되면 5G 관련 기업의 아세안 진출 기반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아세안은 우리에게 매력적인 지역이다. 6억5000만명이 넘는 인구, 절반이 넘는 30세 이하 인구 비율, 중국에 이은 두 번째 교역·투자 대상이다. 경제성장률도 5%가 넘는다. 또한 업무, 여름휴가나 신혼여행 등으로 우리 국민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아세안이 가진 이런 매력과 가치 때문에 ..
국립서울현충원의 장군 묘역 대신 병사 묘역을 선택한 ‘유일한 장군’이 있다. “전우들과 함께 묻히는 게 소원”이라는 그를 위해 정부는 기꺼이 규정을 바꿨다. 갓 임관한 소위부터 위세를 뽐내며 귀족처럼 행세하던 시절 장교 숙소 대신 사병 내무반에서 기거하며 함께 식사하고 화장실 청소도 마다하지 않았다. 바로 채명신 장군(2013년 작고)이다. 5·16 쿠데타 동참, 유신반대, 강제전역 등 굴곡 많은 군생활이었지만 골육지정, 솔선수범의 리더십으로 명장 반열에 오르기 충분하다.다른 장군은 공관에 미니 골프장을 만들어 즐기면서 공관병들에게 공을 줍게 했다. 사령관 공관의 감은 “공관병이 따야 한다”는 철학을 어김없이 실천했다. 곶감을 만드는 것도 공관병이 할 일이었다. 자신의 빨래 역시 공관병에게 맡겼다. 그의..
당 고조는 스물두 명의 아들을 두었다. 그중 둘째 아들인 이세민이 피비린내 나는 냉혹한 권력 다툼 끝에 고조를 무력화시키고 왕위에 오른 일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 이세민도 열네 번째 아우인 이원궤만큼은 유독 총애하였다. 이원궤는 깊은 학식과 바른 행실로 당대에 높이 인정받았다. 자신의 형제 가운데 누가 가장 훌륭한지를 묻는 태종 이세민의 질문에 재상 위징은 “오왕(이원궤)과 대화를 나눌 때면 늘 저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라고 답했다.이원궤는 선비 유현평과 격의 없이 지냈다. 어떤 이가 유현평에게 이원궤의 장점이 무엇인지 묻자 그는 “장점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의아해하는 상대에게 유현평은 이렇게 덧붙였다. “사람에게 단점이 있어야 장점이 드러나는 법이지요. 그분은 모든 것을 다 갖추었는데 제가 무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