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평등해질 때까지는 우리 중 누구도 평등하지 않다.”세계적인 밴드 U2가 지난 8일 밤 내한공연을 하면서 이런 메시지를 발표했다.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인 오늘 U2의 이 메시지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마음에 와닿는다.71년 전, 인류는 제2차 세계대전의 참극을 겪은 뒤 역사적인 반성문을 썼다. “인권에 대한 무시와 경멸은 인류의 양심을 짓밟는 야만적 행위”를 낳았고, 따라서 앞으로 인류는 “언론의 자유, 신념의 자유, 공포와 궁핍으로부터의 자유를 향유”하는 세계를 만들 것을 약속했다. 이 반성문 이후 인권은 현대국가들이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가 되었다. 인권을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일은 곧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한다.그렇지만 이런 약속은 과연 지켜지고 있을까? 71년 전의 저 약속이 지켜졌다면 우..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오늘날과 같은 정보와 지식의 홍수 시대에 적용해보면,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 하더라도 사용자의 접근과 이용이 편리하지 않다면 쓸모가 없다는 게 아닐까. 디지털 시대에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우리 삶의 전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우리가 누리는 정보의 양과 질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 하지만 이러한 디지털 혁명의 혜택을 모든 사람이 골고루 누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모든 정보 전달과 공유의 플랫폼이 비장애인들 위주로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자립적이고 주체적으로 활동하고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정보와 지식에 대한 접근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기술적 진보에 발 빠르게 따라갈 수 없는 장애인들은..
다시, 유럽의 축구장이 인종차별로 혼란스럽다. 수년 전부터 국제축구연맹(FIFA)과 유럽축구연맹(UEFA)이 축구장 안팎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 행위를 근절하려 막대한 비용을 들여 다양한 캠페인을 벌여왔으나, 이 끔찍한 악행이 근절될 수 없는 역병처럼 번지고 있다.최근의 사례를 보면, 지난 8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미드필더 프레드는 지역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와의 원정경기에서 연거푸 모욕을 당했다. 코너킥을 차려는 그에게 맨시티 팬은 원숭이 소리를 내며 조롱했고 어디선가 라이터까지 날아왔다. 성난 얼굴을 한 동료 린가드가 프레드는 감싸안으며 위로했지만 프레드의 고통은 단지 라이터에 맞은 외상만은 아니었다. 안정을 되찾은 프레드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는 아직 어두운 면이 있다. 지금..
장준환 감독의 영화 (2017)에서 시국 사건으로 조사를 받던 대학생이 고문 중 사망하자 경찰은 은폐를 목적으로 시신 화장을 검찰에 요청한다. 그런데 사망 당일 당직이었던 공안부장 최 검사(하정우)는 이를 거부한다. 그가 부검을 요구한 건 법질서를 확립하려는 신념이나 망자에 대한 연민도 있었지만 검찰이 매번 안기부나 경찰, 군인들에게 밀리는 꼴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는 후배를 시켜 다음날 가장 일찍 출근한 기자에게 대학생 한 명이 고문받다 죽었다는 사실을 슬쩍 흘린다. 이 사실이 기사화되자 전국이 들썩이고 그는 곧 옷을 벗는다. 짐을 챙겨 사무실을 나오던 최 검사는 사건의 경위를 따져 물으며 쫓아오는 기자를 보자 자신의 차 옆에 부검 감정서 등의 문건이 담긴 상자를 남겨두고 떠난다. 기자는 이를 ..
어느 독장수가 지게에 독을 산더미처럼 짊어지고 팔러 나섭니다. 그러다 어느 곳에서 무거운 지게 내려놓고 지겟다리로 받친 뒤 잠깐 쉰다는 게 깜박 잠이 듭니다. 꿈에서 그는 지고 나간 독마다 모두 팔아 빈 지게와 두둑한 주머니로 돌아옵니다. 그 돈으로 가축을 사서 기르고 또 내다 팔아 더 많은 돈을 벌게 됩니다. 그렇게 집도 마련하고 꿈에 그리던 장가도 갑니다. 떨리는 첫날밤 새신부의 옷고름을 푸는 장면에서 독장수는 너무 좋아서 잠결에 활개를 칩니다. 그러다 지겟다리를 탁 쳤고 지게가 엎어지면서 장사 밑천이 와장창 깨집니다. 이것이 인터넷과 어린이 속담책에 나오는 ‘독장수구구는 독만 깨트린다’의 엉터리 유래입니다. 근거 없이 지어낸 이야기라서 ‘구구’는 설명치 못하거든요.옛날에는 구구단이 없어 5단 이하는..
1934년 대중잡지 ‘삼천리’에 재밌는 설문조사가 하나 실렸다. “내가 서울 여시장이 된다면?”일제강점기 서울시장(경성부윤)은 당연히 일본인이 맡아 했다. 그러니 조선인, 더구나 여성은 시장이 절대 될 리 없는 애당초 불가능한 일을 가정한 질문이었다. 당대 유명 여성 대부분은 이 질문에 “모든 서울시민에게 영양주사를 한 대씩 놓고…” “허영심을 근절하기 위해 화장품 세금을 100배 인상하겠다”는 식의 진지하지 않은 ‘공약’을 남발했다. “제가 서울 여시장이라니 천지개벽을 하게요”라며 상상 자체를 부정한 답변도 있다. 하지만 이들과는 달리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은 여성들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화가 나혜석이다. 나혜석은 전차 요금 구역제 폐지를 서울시정의 첫 번째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전차 서대문선과 마..
“이 글에선 당신의 이름 석 자는커녕 이니셜조차 언급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 사건이 ‘최○○ 동영상 협박 의혹 사건’으로 명명돼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리벤지포르노범들 강력 징역해주세요’라는 청원엔 21만8000여명(2018년 10월8일 현재)이 동참했습니다.”지난해 10월 ‘최종범 사건’이 터졌을 때 쓴 글입니다. 제가 틀렸습니다.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지지한 수십만명은 미약했습니다. 악의를 품고 집요하게 공격하는 이들, 세상의 질서를 바꿔놓을 ‘권위’를 가진 이들을 이기지 못했습니다.구하라. 당신이 떠난 지 보름이 지났습니다. 그사이 외주 스태프 여성 2명을 성폭행·추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배우 강지환씨가 집행유예로 풀려..
‘조산(造山)의 요충지 녹둔도(鹿屯島)에 농민들이 흩어져 사는데, 골간(骨看·여진족) 등이 배를 타고 몰래 들어와 약탈할까 염려된다. 진장이나 만호에게 단단히 방어할 수 있도록 하라.’()세조는 함길도 도절제사로 부임하는 양정(楊汀)을 경복궁 사정전으로 불러 이렇게 당부했다. 세종이 6진을 개척해 영토를 두만강까지 넓혔다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확장보다 더 어려운 게 수비였다. 6진의 행정체계가 완성된 뒤에도 여진족의 약탈은 계속됐다. 두만강 하구의 녹둔도가 특히 심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이는 녹둔도 기록은 대부분 여진족의 침략 이야기다. 이순신은 부친 삼년상을 마친 1586년 경흥의 조산 만호로 관직에 복귀한다. 이듬해 조산에서 십리 떨어진 녹둔도의 둔전 경영 임무까지 겸했다. 국경과 인접한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