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과는 ‘농활’이라는 인연이 있다. 도시 학생들에게 농촌에 대한 경험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문제의식을 깊게 하는 데에는 농활이 큰 역할을 했다. 나도 그랬다. 지금도 뉴스에 익산 소식이 들리면 귀를 쫑긋 세웠다. 최근 몇 년간 들려온 익산의 소식은 ‘장점마을’이었다. 지난달 14일 환경부는 익산 장점마을 주민들의 집단 암 발병이 ‘금강농산’의 비료공장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공식 인정했다. 비료는 크게 유기질비료와 무기질비료로 나누는데 유기질비료에는 기름을 짜고 남은 ‘유박’이나 생선을 가공하고 남은 ‘어박’ 등이 들어간다. 금강농산에서 생산하는 비료는 담배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인 ‘연초박’을 원료로 쓰던 유기질비료였다. 퇴비로만 허용된 연초박을 불법으로 태우는 과정에서 온 동네에 유해가스를 내뿜었고..
지난주 개인 휴가차 가족과 아이슬란드 여행을 다녀왔다. ‘골든 서클’ 일일투어를 도와주는 현지 남성이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하자, 곧바로 이렇게 응답했다. “제가 며칠 전 BBC 뉴스에서 여성 K팝 가수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구하라였다. 자신은 K팝을 들어 본적도 없는 사람이지만, 기사를 보니 이 여성 가수가 스캔들에 휘말리고 사건을 공론화하고 재판을 하는 과정에서 많이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나는 이분에게 또 다른 K팝 여성 가수인 설리의 안타까운 죽음 사건도 설명하면서 한국에서 여성에 대한 악성댓글과 불법 동영상 촬영이 얼마나 만연해 있고, 가해자 처벌이 얼마나 미약한지를 알려주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BBC 기사를 찾아 읽어보았다. 제목은 “구하라와 남한의 불..
흔히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보편적 이론도 특별한 상황에서는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역사를 되짚는 것은 어려운 상황일수록 과거에서 참고해 취할 덕목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역사학자 한명기가 최근 평전(, 보리출판사)을 통해 ‘주화파 최명길’을 불러낸 뜻에 공감한다. 병자호란 당시 치욕적인 삼전도 항복 협상을 주도한 외교관, 후손들에게 ‘매국노의 후예’라는 굴레가 씌워질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길을 굳건히 걸었던 최명길. 미국과 중국 간 패권경쟁이 한반도를 엄습하는 이때 명·청 교체기 조선의 형세와 그 난국을 타개하고자 고군분투한 최명길을 떠올린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최명길은 단순히 실리만을 추구하여 청나라와의 화친을 주장한 외교관이 아니었다. ..
여야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오른 선거법과 검찰개혁 법안 처리를 두고 또다시 극한대치에 들어갔다. 더불어민주당은 ‘13일 국회 본회의 패스트트랙 법안 일괄 상정 방침’을 12일 공식화했다. 자유한국당은 결사 저지를 외치며 국회 로텐더홀에서 농성 중이다. 민주당은 “이제 우리의 길을 가겠다”고 하고, 한국당은 “우리를 밟고 가라”고 한다.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마주 보며 돌진하는 형국이다. 이러다간 지난 4월에 이어 제2의 패스트트랙 대충돌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최악의 국회’란 오명을 뒤집어쓴 20대 국회가 마지막까지 추태를 보이는 데 대해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건 패스트트랙 법안 저지를 내걸고 장외투쟁, 삭발, 단식을 반복하며 국회를 무력화..
영국의 콜린스 사전과 옥스퍼드 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각각 ‘기후파업’과 ‘기후비상’을 선정했다. 올해 이 두 단어의 사용 빈도가 이전에 비해 100배 정도 늘었다는 선정 이유는 세계적으로 기후에 관한 위기의식이 그만큼 높아졌고 기후 관련 담론도 많아졌음을 보여준다. 지난 9월 유엔 총회에서 열린 ‘기후행동정상회의’도 이런 변화의 반영일 것이다. 그러나 세계 정상들로부터 기후비상에 걸맞은 말과 행동을 찾아보기는 여전히 힘들다. 2년 전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를 공식 선언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다 치자.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천명한 문재인 대통령은 기후행동정상회의 연설에서 노후석탄화력발전소 4기 감축과 2022년까지 6기 감축 계획을 한국의 기후위기 대응책의 일환으로 발표했지만, 신규 석탄화력발전..
간판을 바꾼 지 4년 남짓 된 더불어민주당은 1955년 9월18일을 공식 생일로 삼는다. 올해도 9월18일 창당 64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사사오입 개헌’ 사건을 계기로 민주국민당의 보수파와 자유당 탈당파, 흥사단 등 반이승만 세력이 모여 1955년 9월18일 창당한 민주당을 ‘뿌리’로 삼는 것이다. 민주당-민중당-신민당-신한민주당-통일민주당-평화민주당-신민주연합당-민주당-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통합민주당-민주통합당-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간단없는 이합집산 속에서 뼈대를 이뤄온 정당만 나열해도 숨가쁠 지경이다. 현란한 당명의 변주에도 새정치국민회의와 열린우리당을 제외하면, ‘민주’만은 지키고 있다. ‘민주당’ 계열로 한국 정당사의 한 축이 정리된다.다른 축인 보수정당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