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보았다. 예능 프로그램인 만큼 몇 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꽤 흥미로웠다. 시작하기 전에 먼저 스태프들에게 성선설과 성악설 중 어느 쪽을 지지하는지 알아낸 다음(성선설 쪽이 좀 더 많았다) 토론 후에 생각을 바꾸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일종의 룰이었다. 그런데 토론이 끝난 후에는 처음과는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출연자들의 개인적 재치와 말솜씨에도 영향을 받았지만 스태프들은 마음을 바꿔 성악설을 주장한 쪽의 손을 들어주었던 것이다.인간 본성의 선악에 관한 논쟁은 인류의 역사와 맥을 같이해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정신의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인간은 이중적인 존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것은 마치 저 하늘에 해와..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10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이른바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에서 마련한 내년도 예산안 수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야 교섭단체 3당이 예산안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민주당은 ‘4+1 협의체’가 마련한 수정안을 본회의에 상정, 처리에 나섰다. 한국당은 ‘예산안 날치기’라며 반발했다. 최악의 20대 국회가 마지막 정기국회까지 변칙으로 얼룩진 꼴이다. 다만 이날 오전 본회의에서 민식이법 등 비쟁점 법안 16건을 처리한 게 그나마 소득이다. 여하튼 예산안이 제1야당을 배제한 채 강행 처리되는 유감스러운 사태가 빚어졌다. 예산안의 법정시한(2일)을 지키지 못한 국회가 예산결산특위를 패스해 ‘4+1 협의체’의 심사로 예산안을 확정한 건 정상적이..
법무부 산하 제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개혁위)가 대통령, 국회의원, 판검사 등이 연루된 중요 사건의 불기소 결정문을 공개하라고 권고했다. 불기소 결정문에는 검사가 사건을 수사하고 기소하지 않은 이유가 담겨 있다. 검찰은 지금까지 수사기밀 유출 우려, 사생활 보호 등을 앞세워 이의 공개를 거부해왔다. 그로 인해 봐주기 수사 의혹이 제기돼도 국민은 물론 사건 관계인조차 ‘왜 죄가 안되는지’를 알 수 없는 일이 반복됐다. 검찰이 공소권을 독점하고 있어 따로 범죄 혐의자의 죄를 물을 방법도 없는 것이 우리의 사법체계다. 개혁위의 권고는 이런 불합리한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개혁위는 누구든지 검찰청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 중요 사건의 불기소 결정문을 열람·검색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을 제·개정하라고 권..
“이 끝없는 전쟁은 결국은 무의미한 장난이며 이 세계도 마침내 무의미한 곳인가. 내 몸의 깊은 곳에서, 징징징, 칼이 울어대는 울음이 들리는 듯했다. 나는 등판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김훈 작가의 초반부 일부를 퍼온 것이다. 임란을 일으킨 왜적은 무술년(1598) 노량 앞바다에서 칼의 울음소리가 밴 허무한 노랫말을 남기고 그렇게 물러났다.무술년 다음이라 그런지 기해년인 올해도 사나운 칼의 노래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이런 힘겨운 시절에 민초들은 지치고 힘든 여정을 칼의 노래를 들으면서 한풀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일 수 있다. 그러고는 노랫말만 가지고 섣부른 평가를 내리기도 하는 것을 본다. 국정농단에서 출발하여 사법농단, 조국 일가를 거쳐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수사로 이어진 서초동발 칼의 노래가 여전히..
시내버스를 타고 익숙한 길을 달리다 몇 년 전 그날이 생각났다. 그날 버스 안에는 승객이 몇 되지 않아 들고나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기도 하고, 목소리 낮춰 통화하는 소리가 슬쩍슬쩍 들리기도 했다. 버스는 빈 정류장을 여러 번 지나치다 한 아파트 단지 앞 정류장에 정차했다. 버스에 오른 이들은 아이 둘과 어른 하나였다. 엄마로 보이는 이는 아이 둘을 먼저 앉히고 그들 뒷자리에 앉았다. 평범한 외출처럼 보였는데, 곧 전화를 받은 여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택시가 안 잡혀서 버스를 탔다는, 지하에서 공사하던 중에 불이 났다는, 무슨 기계가 터졌다는, 많이 다쳤다고 하는데 모르겠다는. 그 다급한 통화 뒤에 여자는 자신을 돌아보는 남매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아빠 괜찮을 거야. 진짜 괜찮을 거야.”아이들은 엄마 말..
학교 교육만 받아서는 세상을 잘 살 수 없다. ‘어려운 남을 도와주라’는 구절을 보고 친구에게 돈을 빌려준다면 돈은 물론이고 우정까지 잃게 마련이다. ‘늘 정직하라’는 말에 꽂혀 자신을 평가해 달라는 부장님에게 “능력도 없으신데 그 자리까지 올라가신 게 신기하다”고 한다면, 더는 회사에 다니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학교 교육은 대학입시를 위한 용도로 치부하되, 삶에서 필요한 지식은 경험을 통해, 또는 다른 이들의 말을 경청하면서 배워야 한다. 후자의 지식이 어려운 것은 시대가 바뀌면 얼마든지 변할 수 있어서, 수시로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지난 정권까지 우리나라 최고의 권력자가 누구냐고 물으면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대통령’이라고 답했다. 검사는 대통령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이..
충남 딸기연구소에서 개발한 ‘설향’ 품종은 중앙과 지역 농업 간 연구·개발(R&D) 협업의 중요성을 일깨운 성공사례다. 2005년 9.2%에 불과했던 국산 딸기 품종의 점유율은 2018년 94.5%로 높아졌다. 수출액도 2005년 440만달러에서 2018년 4800만달러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농촌진흥청을 주축으로 지방 농촌진흥기관과 대학이 협력해 고품질 재배기술을 개발하고 재배환경과 재배법을 표준화한 덕분이다. 저장 및 유통 방법 개선도 주효했다.농촌진흥청이 지역특화작목을 육성한 것은 1991년부터다. 지역거점별로 농업 인구 인프라를 구축해 연계기술을 확보하고 산학연 협력으로 개발한 기술을 농업 경영체에 보급했다. 그 결과 사업 참여 농가의 소득 증가율이 2017년 21.8%를 기록했다. 일반 농가의..
자유한국당은 안보 정당을 자부한다. 그런데 그 ‘안보’의 대상이 수상하다. 나경원 전 한국당 원내대표의 지난달 27일 입장문을 보자. “2018년 지방선거를 하루 앞두고 열린 1차 정상회담이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3차 회담마저 총선 직전에 열릴 경우 대한민국 안보를 크게 위협할 수 있다. 금년 방한한 미 당국자(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에게 그러한 우려를 전달한 바 있다.” 이 입장문은 ‘총선 전 북·미 정상회담 개최 미국에 자제 요청’ 파문이 번지자 ‘우려’했을 뿐 ‘요청’하지 않았다고 해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요청한 것이 사실임을 확인해준 셈이다.입장문의 맥락은 선거에 눈이 멀어 북핵 해결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회담마저 반대한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한국당이 일본에 총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