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발간한 ‘2018 아동학대 주요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로 인해 사망한 아동은 총 28명, 사망 사건 학대 행위자의 83.3%는 아동의 부모였다. 아동이 최우선으로 보호받아야 할 가정에서 아동학대가 가장 많이 일어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수치다. 최근에도 안타까운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있었다. 인천에서 20대 계부가 5살 아들을 때려 사망케 한 것이다. 보육원에서 지내고 있던 아이를 집으로 데려온 지 한 달 만에 발생한 일이라, 더욱 공분을 샀다.지난해 아동 재학대 건수는 총 2543건으로 2년 사이 59.8%나 증가했다. 재학대는 아동학대가 상습적으로 발생한다는 뜻으로,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위험한 신호다. 재학대를 예방할 수 있는 핵심 방안 중 하나는 ‘사..
지난해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자전거 축제에 참가했다. 강남 법원 앞까지 도로를 달리고 돌아와 잠수교 남단에서 끝이 났다. 그리고 광화문까지는 혼자 알아서 돌아왔다. 한강을 끼고 오다가 마포에서 인도 옆 자전거길로 가는데 문득 도로에 분명히 찍힌 표지글이 눈에 들어왔다. ‘자전거 우선통행.’내심 불안했지만 그래도 가쪽 차선에 버젓이 그어진 교통표지를 믿고 차도로 내려가봤다. 마포사거리를 앞두고 한 화물차가 거의 왼쪽 핸들이 닿을 듯 바짝 밀어붙였다. 머리카락이 쭈뼛 설 만큼 아찔했다. 위협운전이다. 운전자는 ‘왜 자전거가 도로에 내려와 교통흐름을 방해하냐’고 생각했겠지만. 그러나 도로교통법상 자전거는 엄연히 인도가 아닌 도로를 달려야 하는 차다. ‘자전차.’겁은 났지만 좀 더 가보기로 한다. 아현삼거리를 ..
자작나무가 타는 소리는 자작자작. 눈밭에 선 자작나무가 보고 싶은 겨울이야. 올해는 말이 늦터진 아이처럼 눈다운 눈이 안 내리니 속이 다 답답해라. 자작나무를 바라보면서 뜨거운 술을 자작하고 싶구나. 혼밥 혼술을 하는 것도 자작이라 한다. 만화가이자 수필가인 쇼지 사다오는 혼밥 혼술의 대가. 그의 ‘자작 감행’이라는 수필 한편을 읽었다. “자작할 때는 병맥주보다 도쿠리(목이 잘록한 술병) 쪽이 좋다. 도쿠리를 집어 든다. 적당량을 술잔에 따르고 원래 있던 곳에 도쿠리를 내려놓는다. 엄지와 검지로 술잔을 쥔다. 흘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술잔을 입 쪽으로 가져간다. 그와 동시에 입술도 술잔을 마중 나간다. 쭉 들이켠다. 일련의 이 느긋한 동작들이 좋다. 약간 적적한 부분이 좋다. 고독이 느껴지는 부분이 좋다...
조선 시대 중국에서 사신이 올 때 조정에서는 시인이나 문장가를 국경까지 보내 영접했다. 평안도 의주에서 만난 두 나라 사신들은 한양에 이르는 동안 한시(漢詩)를 통해 대화했다. 시재(詩才)를 겨루며 우의를 다지는 한편, 틈틈이 상대국의 상황을 탐색했다. ‘한시 외교’였다. 1450년부터 1633년까지 조선과 명나라 사신들이 주고받은 한시들은 으로 간행돼 전한다.고전 는 ‘시를 통해 자신의 뜻을 말한다’(詩言其志也)고 적었다. 는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다’(不學詩 無以言)고 했다. 특히 공자는 “시 300편을 줄줄 외면서 외교에 능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시가 외교적인 수사로 활용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후 동양사회에서는 외교 무대에서 시를 주고받는 전통이 만들어졌다.중국 지..
대학에 들어갈 때만 해도 세상이 불의하고, 알 수 없는 음모로 가득 찬 곳으로 보였다. 그런 세상에 속아 넘어가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었다. 세상에 속지 않는데 도움이 되리란 판단으로 전공도 정치학으로 선택했다. 기자를 한 이유의 하나도 속지 않을 직업이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이었다. 세상의 한가운데 뛰어들어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면 속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이런 기대는 정당을 처음 취재하기 시작하자마자 난관에 부닥쳤다. 세상 전부에 대한 의심과 부정의 정신으로 충만했던 그 시절 정당의 주장은 모두 당리당략에 따른 거짓말 같았다. 거짓말을 모아서 어떻게 기사를 쓰지? 진실은 어디에 꼭꼭 숨어 있는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고, 찾을 방법도 몰랐다.그래도 그때는 준거가 될 만한 이념이 있었고, 모두..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들이 없다면 한국 민주주의는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일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는 고통에 처한 약자들을 돕고 권력과 자본을 감시하며, 더 큰 ‘우리들’을 위해 일하고 싸운다.그런데 그 단체들은 거의 대부분 영세한 규모로 네댓 사람(심지어 한두 사람) 정도의 실무자와 활동가들에 의해 유지된다. ‘총무, 사무(국·차)장, 간사’라 불리는 그들의 신념·열정·희생으로 이 조직들이 굴러가지 않는다면? 이 사회는 한갓 각자도생과 생존투쟁의 지옥, 또는 수구 냉전 기득권 동맹과 위선가들의 게임장에 불과할 것이다. 총무, 사무장, 간사들은 함께 사는 ‘우리’의 ‘공통적인 것’(commons)과 후대에도 이어져야 할 진리와 가치를 지킨다. 그리고 많은 시민들을 대신해서 민주주의의 여러 전선에서 싸운다. 우..
여러 해 전 겨울, 아직 서울에 살고 있을 때의 일이다. 어스레한 이른 시각에 성당 가려고 택시를 탔다. 행선지를 밝혔더니 택시기사 할아버지께서 물끄러미 뒷좌석을 돌아보셨다. 이윽고 “내 부모가 이북서 내려왔으니 내 나이가 얼마나 많을지 짐작이 가지요?”라며 이야기보따리를 끌렀다.할아버지의 모친은 해방 이전 10대 때 수녀원에 들어가셨단다. 그런데 수련기간 도중 갑자기 들이닥친 친정오빠들이 어머니를 억지로 데리고 나와서 가두어 두었다가 혼인을 시켰다고 했다. 결혼 이후로는 남편 집안의 반대 때문에 성당에 안 다녔지만, 돌아가시기 직전 어머니는 아들 손을 꼭 붙들며 “사람이 살다보면 항상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힘들 때면 주의기도를 외워라”라는 유언을 남기셨단다. 그래서 이제껏 자신은 교회든 성당..
월성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조기 폐쇄가 확정됐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24일 ‘월성 1호기 운영변경허가(영구정지)’ 안건을 출석위원 7명 중 5명의 찬성으로 의결했다. 원안위는 앞서 두 차례 논의에도 결론을 내지 못하자 이날 표결로 영구정지를 확정했다. 노후 원전의 영구정지는 2017년 6월 고리 1호기에 이어 두번째다. 그러나 완벽한 마무리는 아니다. 월성 1호기의 안전성과 경제성 평가를 두고 감사원의 감사, 검찰 수사와 재판이 남아있다. 월성 1호기는 1983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국내 최초의 가압중수로형 원전이다. 당초 설계수명(30년)에 따라 2012년 11월 운행이 종료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전 정부에서 노후설비 등을 교체해 2022년까지 가동하기로 했었다. 안전성만 보완하면 운영을 지속하는 것이 ..